파탄 지경 공무원 연금, 구조 개혁 암중 모색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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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조4천억 적자, 저부담·고급여 구조 가 주범… 수십 차례 ‘제도 개악’도 한몫
공무원연금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자치부가 ‘불난 호떡집’ 같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2000년에 연금 기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는 부랴부랴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팀(연구 책임자 문형표 연구위원)에 연금 개선안을 마련해 달라고 의뢰했다.

행정자치부는 왜 직접 개선안을 내지 않고 연구기관의 힘을 빌리려고 했을까. 먼저 이해 당사자인 공무원들의 격렬한 저항을 회피하려는 전략이다. 또 연금 수혜 당사자가 아닌 전문가가 개선안을 만든다면 ‘생선 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겼다’는 식의 공정성 시비에도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노림수는 더 있다. 기금 고갈이라는 화급한 불을 끄자면 국고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재경부 산하 연구기관의 안을 놓고 예산 당국과 씨름을 벌여야 ‘말발’이 먹힌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이 이런 화급한 지경에 휘말린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부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주장처럼 정부 구조 조정 및 정년 단축으로 퇴직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96∼97년 3만4천명(3.5%) 수준이던 공무원 퇴직자는 98년 5만4천9백명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7만5천명(8.2%)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올해 공무원 연금 기금은 3조4천억원 적자(수지차)가 불가피하다. 거두어들인 돈(기여금+부담금)에 비해 내줄 돈(연금 급여)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인력 감축이라는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았다면 공무원연금은 재정 안전성에 별 문제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공무원 구조 조정이 기금 고갈 시점을 몇 년 앞당기는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지만, 이미 연금 재정에는 도처에 인화 물질이 널려 있었다. 만원 넣고 11만원 받는 기막힌 구조

공무원연금은 93년부터 위태로운 조짐을 드러냈다. 93년에 사상 처음으로 적자가 발생하자 이에 당황한 총무처는 이듬해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를 의뢰해 연금 제도를 손질하려고 했다. 문제의 핵심은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구조적 부실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연구자들이 지적한 태생적 부실을 거의 도려내지 않은 채 기여율과 부담금률을 각각 1% 포인트 올리고 96년 이후 임용자부터 60세에 연금을 준다는 따위 미봉책으로 얼버무렸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공무원들의 거센 저항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 덕분에 기금 고갈 시점이 15년 정도 연장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이 호언은 5년이 못가 무너졌다.

낸 돈에 비해 받을 돈이 지나치게 많게 설계된 것은 공무원연금이 안고 있는 대표적인 태생적 부실이다. 97년 말 퇴직자를 기준으로 분석하면 연금 수급자들은 퇴직한 후 자기가 낸 돈의 무려 7∼11.3배(일시금은 1.4∼1.8배)를 받는다. 물론 이것은 60∼70년대 가입자의 경우이며, 80년대 이후 공무원이 된 사람들은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그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시비를 낳는다.

이처럼 저부담·고급여 구조는 연금 재정을 뿌리째 뒤흔들 뿐 아니라 공적 연금의 취지도 크게 훼손한다. 공적 연금은 의식주에 필요한 기본 소득을 책임지는 데 그치고, ‘윤택한 노후’는 개인 연금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국제노동기구(ILO)나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같은 관련 단체들도 공적 연금 지급 수준을 국민 평균 소득의 50% 정도로 하라고 권고한다.

이런 취지와 달리 공무원연금이 얼마나 헤픈지는 임금 대체율과 상대적 급여 수준을 보면 잘 드러난다. 임금대체율은 연금이 재직할 때 보수의 몇 %인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현재 임금 대체율은 50%(20년 재직)∼76%(33년 이상). 그런데 재직자 보수에는 세금과 연금 기여금 같은 비용이 들어 있으므로 이것을 감안하면 연금의 실질 임금 대체율은 95∼102%나 된다. 퇴직 전후의 실질 소득이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후 생활비가 뚝 떨어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현역 때보다 넉넉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부조리·무원칙 난무하는 부실덩어리

다음으로 현역 공무원의 평균 보수와 연금 수급자의 연금액을 비교한 상대적 급여 수준도 연금이 재직자 보수보다 훨씬 많다. 일본의 국가공무원공제연금이 연금 수준을 현역 보수의 69% 이하에서 결정하고 있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사회 보장 수준이 한국보다 훨씬 높은 미국·프랑스·독일 등도 한국보다 높지 않다. 한마디로 ‘OB’가 ‘YB’의 등골을 빼먹고 있는 형국이다. 95년 법 개정 당시에는 공무원이 아니었던 96년 임용자부터 60년에 만든 연금 수혜 연령 제한(60세 이상) 규정을 부활시켜 적용했지만, 95년까지의 가입자들이 퇴직 직후 연금을 받는다는 사실도 연금 제도의 목적과 맞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20년 재직하면 연금 수급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이 된 사람은 30대에 연금 생활자가 된다. 실제로 50세 이전에 연금을 받기 시작한 공무원 퇴직자가 14%나 된다.

이 사람들은 대개 재취업한다. 직장 소득과 연금을 이중으로 받는 것이다(물론 국가가 녹을 주는 공공 부문에 취업할 경우는 연금 지급 정지 장치가 있지만, 민간 기업의 경우는 아예 없다). 나이 많은 현역이 자발적으로 퇴직한 젊은 퇴역을 부양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현역에게 기여금을 인상하라고 요구할 명분도 잃는다. 임용 연도가 96년 이전이냐 이후냐에 따라 엄청난 불공평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말썽거리다.

이밖에도 장기 재직자가 단기 재직자보다 불리하고, 연금 재정에 얼마나 기여했느냐와 관계없이 최종 보수에 의해 퇴직 급여가 산정되는 등 공무원연금은 온갖 불합리와 무원칙으로 점철되어 있다.

공무원연금이 이렇게 ‘불량 보험 상품’이 된 것은 옛 총무처 전신인 국무원 사무국이 60년 설계 당시 비교적 멀쩡했던 구조를 수십 차례 ‘개악’했기 때문이다. 기준이 무엇인지 모호하지만, 민간 기업보다 봉급을 적게 받는다는 공무원들의 불우함을 당장 돈이 들지 않는 연금이라는 당근으로 달래려 했기 때문이다.

62년 이후 최근까지 공무원연금법 개정 내용을 보면, 정부가 재원 마련 방안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식솔들에게 얼마나 ‘후한’ 인심을 써왔는지 한눈에 드러난다. 공무원연금이 지금에서야 파탄 지경에 내몰린 것이 도리어 이상할 지경이다.

장밋빛 약속을 뒤집게 된 정부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장 4월 말께 한국개발연구원이 중간 보고서를 내놓고 공개 설명회를 열 즈음에 거대한 저항 전선이 형성될 것이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정부는 더 이상 자충수를 두지 말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공무원 스스로가 고통을 분담하지 않으면 바가지를 통째로 깰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 구조 개혁이라는 획기적인 처방이 나오지 않는 한 국민의 이해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98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연금에 대한 국고 지원액은 전액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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