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몸값 올리기 비법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7.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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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수난 시대, 경력 관리·가치 올리기 기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설 노동경제연구원 부원장 양병무 박사(42). 임금 관리 전문가로서 그는 자기 일과 관련해 늘 신중한 편이지만, 적어도 자기가 왜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하게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다. “내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죠.”

솔직한 대답이다. 그렇지만 대체 직장인의 몸값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 양박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몸값은 현재 자기가 받는 봉급이 아니다. 그보다는 현재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 가면 받을 수 있는 급여다. 전문 용어로 말하면 기회 임금(opportunity wage)이다.

물론 이런 개념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고용 불안 시대에 걸맞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한 직장에서 평생 근무하는 것이 정상적인 직장인이었다. 이런 처지에서라면 자기가 받는 봉급이 자기 몸값이고, 정년까지 남은 기간에 예상되는 봉급을 합친 것이 총수입이다. 직장인들은 이 평생 임금을 고려해 남은 인생을 설계하면 되었다.

몸값 산정 선도하는 ‘헤드 헌팅’ 업계

그러나 93년부터 각 기업이 연봉제를 본격 도입해온 데다가, 지난해의 명예퇴직제 열풍과 정리해고제 도입은 이런 낡은 생각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회사는 믿을 것이 못되며, 언제 직장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새로운 몸값 개념이 가장 잘 적용되는 현장으로는 헤드 헌팅(인재 중개) 업계를 꼽을 수 있다. 현재 주로 국내 기업에 근무하는 인재를 외국계 기업에 연결해 주는 이 신종 업체들은 그 어떤 기업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상품(전직 희망자) 값을 매긴다고 정평이 나 있다. 다음은 설립된 지 얼마 안되었지만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고객 관리로 정평이 난 서울서치 김진희 사장의 말. “일단 자기가 받는 연봉에 플러스 알파를 해주게 됩니다. 알파는 대개 회사를 옮기는 데 따르는 위험을 보상하는 성격이 크나, 학력이나 자격증 혹은 경험과 실적 같은 요소가 고려됩니다.”
그러나 이 중개 과정은 막연한 자료에 의존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헤드 헌팅 업체는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평균 급여에 관한 자료를 중요한 기준치로 삼는다. 그 다음 인재를 요구하는 외국 업체는 구직자가 바라는 연봉에 대해 그렇게 산정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요구한다. 외국계 회사들은 자기네가 원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돈을 거의 제한 없이 쓸 각오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통상적으로 고급 헤드 헌팅 업계를 통해 이직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연봉보다 20% 정도를 더 받는다), 결과에 대해서는 지극히 까다롭다.

구직자가 연봉을 요구하면서 제출한 참고 자료들은 훗날 이 사람이 입사한 뒤의 실적과 면밀히 비교되고, 이를 토대로 연봉이 재조정된다. 프로 야구 선수의 연봉 협상과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런 연봉 협상이 아직 보편화한 것은 아니다. 93년까지만 해도 연봉제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회사 일부에서만 실시했으며, 93년 말 두산그룹이 과장급 이상 관리자에게 실시하면서 비로소 논의가 본격화했다. 94년 초 조사 결과이기는 하지만,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 조사 대상 기업의 4% 가량밖에 안된다(포스코경영연구소와 경총 임금연구센터 공동 조사. 향후 도입할 계획이라는 회사는 70%). 임금 전문가들에 따르면, 연봉제 정착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평가 방법이다. 여전히 학연·혈연·지연에 얽매인 평가 때문에 직장인들이 연봉제를 수용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봉제는 기존 인사고과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경우에만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더욱이 국내 기업들이 도입한 연봉제는 프로 야구 선수들의 연봉과 같은 순수한 연봉제와는 거리가 멀다. 기존 연공 서열에 따른 임금을 뒤흔들지 않는 한도에서 능력주의를 가미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이런 한국적 연봉제에서는 낮은 직급의 직장인이 높은 직급보다 봉급을 더 받는, 직급과 임금이 역전되는 현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기회 임금이 제로인 명예 퇴직자의 비애

예를 들어 연봉제가 잘 실시되고 있는 미원그룹에서도 기본급에 능력급을 추가해 주는 방식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이 방식에서는 직원 각자에 대한 평가에 따라 능력급의 상하한(pay band)이 정해진다. 그야말로 한국적인 연봉제인 셈이다. 그러나 서울서치 김진희 사장은 외국계 기업과 동일한 방식으로 인재를 구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어, 연봉제 실시가 시간 문제라고 확신한다.

기회 임금을 고려하면, 과거 연공주의 체계에서의 몸값 개념이 크게 뒤바뀌게 된다. 특히 명예 퇴직제 확산과 정리해고제 도입은 기회 임금을 훨씬 더 유용한 개념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지난해 경총 조사에 따르면, 국내 3백개 기업 가운데 9% 가량이 명예퇴직제를 도입했다. 비록 이 가운데 절반은 한시적으로 실시하지만, 명예퇴직제는 앞으로도 관리직과 전문직 직장인들에 대한 가장 유효한 감원 수단이 될 전망이다.

기회 임금으로 계산된 직장인의 몸값은 기존 급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런 개념에서는 당장은 높은 임금을 받고 있지만, 직장을 떠날 때는 기회 임금이 제로가 되는 사람도 생겨난다. 지난해 선경그룹에서 명예 퇴직한 ㄱ부장(40)이 좋은 예. 그는 회사에서 일찍부터 임원감으로 점찍혀 고속 승진을 거듭해 왔으나, 최근 몇년간 인사에서 좌절을 겪었다고 생각하고 지난해 명예 퇴직을 선택했으나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기회 임금이란 관점에서 내 임금은 제로에 가까웠던 셈’이라고 자평한다. 한 직장에서 기반을 잡는 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했던 그는 방향을 바꿔 현재 창업을 구상하고 있다.

명예 퇴직을 통해서건 아니면 다른 경로를 거쳐서 회사를 옮기건, 대개 사내(社內) 경쟁이 치열했던 곳에 몸담았던 직장인들이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재를 구하는 회사에서 선호하는 일부 대기업들과 외국계 회사의 공통점은 연봉제와 성과주의를 축으로 한 신인사제도가 발달한 직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금호그룹이‘움직이는 광고판’이라고 애지중지하는 윤생진 차장은 회사 내에 있으면서 기회 임금을 극적으로 높인 예에 속한다. 지방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해 금호타이어 공장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제안을 통해 성공의 길로 들어섰다. 각종 제안 관련 상을 휩쓴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초에는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 회장이 배려해 대리에서 일약 차장으로 발탁 승진했다. 지금은 한 달에 이틀 가량만 사무실에 출근하고 나머지는 자기 일정에 따라 강연을 나가거나 공부를 한다. 제안이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몸값을 극적으로 높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회 임금을 높여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양병무 박사는 노후를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라고 단언한다. 과거의 임금 체계가 45세까지 능력에 비해 봉급을 덜 받다가 그 이후 벌충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연봉제와 명예퇴직제(혹은 정리해고제)는 이를 전면 부정한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남은 생애 동안 받을 임금이 아니라 기회 임금이라는 개념으로 평생 임금(life time income)을 계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기 값어치 구체적 수치로 산출해야 유리

기회 임금을 높여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 한 가지. 황효진 공인회계사 겸 세무사가 제안하는 ‘직장인의 가치를 표시한 대차대조표’가 그것이다. 마치 프로 야구 선수가 계약을 갱신할 때 자신의 과거 성적을 가지고‘나의 가치는 이렇습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구체적인 근거를 가진 수치로 표시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발상은 헤드 헌팅 업체를 통해 외국계 기업이 인재를 구할 때 그들에게 자료를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자세한 방법은 왼쪽 상자 기사 참조). 이 제안은 우리와 비슷한 고용 불안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회사가 원하는 인재는 다른 어떤 직장으로 가더라도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직장인 스스로가 자기 몸값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에이, 이까짓 회사 다녀서 뭣해, 뛰쳐나가 삼계탕집이라도 열지!’하는 것보다는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제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회사가 나타나 떠나겠습니다’하는 것이 훨씬 보기 좋지 않은가. 그것은 당신을 놓친 회사가 뭐라고 하든 경제 전체로 보아서도 훨씬 유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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