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타임 손익 계산서 '적자'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7.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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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되지만 생체 리듬 파괴·노동 시간 연장 등 부작용 커…정부 추진안·반론 부딪힐듯
해뜨는 시간이 빨라지는 늦은 봄부터 일찍 아침을 열자는 발상은 새벽 공기처럼 신선하게 느껴진다. 비록 그것이 새벽녘 침실 커튼에 새어드는 햇살에 자극받아 기상하기보다 인공적으로 시계 바늘을 1시간 앞당긴 결과라고 할지라도 그 의미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함은 미덕 아닌가.

정부는 95년부터 2년여 뜸을 들인 끝에 최근 아침을 일찍 열자는 이 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 제도는 유럽에서는 일광시간 절약제, 미국에서는 서머타임제로 불린다. 서머타임은 낮이 길어지는 여름철(대개 4~10월)에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표준 시간을 1시간 앞당겨 조정하는 것으로, 세계 70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48년에 도입하여 10년간 실시하다가 61년에 폐지(52∼54년 중단)한 바 있고, 87, 88년 두 해 동안 올림픽을 위해 실시한 경험이 있다.

정부가 서머타임제 부활을 꾀하는 것은 에너지 절약이라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세계 여러 나라가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된 직접적 계기도 에너지 절약이었다. 효시 격인 미국 벤저민 프랭클린 대통령은 1784년 태양 시간을 파괴하면 양초를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 착상을 현실화한 영국의 윌리엄 월릿도 1907년에 펴낸 <일광의 낭비>에서 여름철의 햇빛을 잘 활용하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16년 독일로 하여금 가장 먼저 일광시간 절약제를 도입하도록 한 계기도 1차 세계대전이 부른 전력과 연료 부족 사태였다. 이후 2차 세계대전과 1, 2차 석유 위기는 많은 나라가 이 제도를 도입하게 만들었다. 에너지 위기가 태양 시간 파괴라는 서머타임제 도입을 정당화해 주었다.

시계 바늘을 1시간 앞당기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통상산업부 산하 국책 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서머타임 기간을 5~9월 5개월로 잡을 때 에너지 비용 절감액은 총전력 소비량의 0.275%인 5천만달러(4백45억원) 정도다. 에너지는 거의 수입에 의존(96년 해외 의존도 97.3%)하므로 이 절감액은 경상수지 적자를 1천6백만달러(1백42억원)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연구원의 이성인 선임연구원은 “이 추정치는 가정용 조명과 일반용(사무용·상업용) 냉방 에너지만을 잡은 것이어서 절감액이 과소 평가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이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통상산업부 유창무 자원정책심의관도 “직·간접 비용을 모두 합치면 1억달러 이상의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다. 총에너지 수입액(2백40억달러)에 견주어 절감액이 매우 적다고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이지만, 에너지 소비량이 세계 11위, 소비 증가율이 세계 5위인 우리 처지를 생각하면 이것이라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경제 활동에 국가 개입하는 일종의 규제”

그러나 절감액이 1억달러가 되더라도 이것을 아끼기 위해 서머타임제를 실시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유럽연합과 미국이 서머타임제를 시행하면서 특히 여가 선용과 관련된 효용성을 열심히 선전하고 있는 것도 더 이상 에너지 절약만 내세워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설명이 될 수 있다. 92년부터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이 이산화탄소 배출량 억제라는 환경 요인과 여가 선용을 앞세워 국민을 꾸준히 설득하고 있는 것도 부정적 견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 송파동에 사는 30대 샐러리맨 정웅진씨는 “일하는 시간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일은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국가가 개입해 전국민을 상대로 강요할 성질의 것이 못된다”라며, 서머타임제는 일종의 규제이므로 규제 혁파를 외치는 정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서머타임제로 인한 영향은 이런 심리적 저항에 그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국민의 일상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반대론자들이 서머타임 불가 이유로 주로 거론하는 것은, 생체 리듬 파괴와 근로 시간 연장에 대한 우려이다. 특히 생체 리듬을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은 90년대 초까지도 가능성만 얘기되었을 뿐 과학적인 근거를 갖지 못했으나, 수면 의학이 발달하면서 서머타임을 반대하는 진영에 힘을 실어주는 논리로 등장했다.

인간의 뇌에는 생체 시계라는 것이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생체 리듬을 관장하는 시계, 즉 중추는 눈에서 뇌로 정보를 전달하는 시신경 바로 위쪽인 시신경 교차상핵에 있다. 이것이 생체 시계라는 사실은, 이곳을 파괴했을 때 24시간 주기 리듬이 없어진다는 실험 결과에서 입증되었다.

생활 리듬이 깨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부 등 찬성론자들도 일부 시인하지만, 해외 여행 중의 시차처럼 2∼3일 지나면 해소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가볍게 보고 있다. 반면 심리학자나 수면 의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심리학자 최창호씨(사이콜로지코리아 소장)는 “몸의 생체 시계가 갑작스런 물리적 시간 변화에 적응하려면 최소 7∼10일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며, 물리적 시간과 생리적 시간을 바탕으로 재구성되는 심리적 시간에 재적응하는 것은 그보다 더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 세 가지 시간 가운데 심리적 시간은 효율성·생산성·불량률·직무 만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간으로, 여기에 적응하기까지 적지않은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김 인 교수(고려대·정신과 전문의)는 설사 한두 주일 걸려 생활 리듬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지적한다. 김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잠이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국민 가운데 30% 가량이 잠 부족 등 어떤 형태로든 수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한국의 경우 미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일광 시간 차이 큰 유럽과는 사정 달라

고려대 의대 정신과팀이 90년 서울시민 1천49명을 대상으로 수면 양상에 대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자신이 자야 할 시간보다 항상 적게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었으며, 이 때문에 주간 졸림증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운전 중에, 혹은 서서 조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교수는 서머타임제가 가뜩이나 수면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더 힘들고 피곤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도언 교수(서울대·정신과 전문의)도 비슷한 의견이다. 정교수는 서머타임제가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 정밀도를 요구하는 직업인, 2∼3 교대 근무자는 물론 학생·어린이·주부에게도 상당히 좋지 않은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그는 서머타임제를 시간 취약 계층에게까지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은 이들의 건강을 해칠 소지가 크다고 경고한다.

이런 저항을 의식한 탓인지 정부는 서머타임제가 에너지 절약 못지 않게 여가 선용, 일의 능률 향상 같은 이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타당성은 과거 서머타임제가 국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서 검증될 수 있을 것이다. 서머타임제 시행 직후인 88년 11월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민들의 기상과 취침 시간이 시행 전보다 빨라졌지만, 기상 시간이 빨라진 정도보다 취침 시간은 덜 빨라져 잠이 줄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에 미친 영향에서도 10명 가운데 7명 가량이 관계 없었다고 답했으나, 나쁜 영향을 주었다는 응답률이 좋았다는 응답률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정부가 주장하듯 서머타임제가 여가 선용에 도움을 주느냐에 대해서도 이 조사는 부정적이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정도는 서머타임 실시가 여가 활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흥미로운 것은 여가 활용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에서 찾을 수 있다.‘일을 했다’와‘여가 시간이 오히려 짧아졌다’는 응답은 각각 좋은 영향을 미쳤다와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혔는데, 일이라는 똑같은 이유를 각각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이 응답은 또한 서머타임이 근로 시간을 연장시켰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고, 실제로 이것을 물었던 항목에서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실시 전에 비해 실시 후 일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응답률이 39.0%나 된 것이다. 짧아졌다는 응답률은 4.7%에 불과했다.
또 62.4%의 응답자들은 서머타임이 해제되자 생활하기에 더 좋다고 답했다. 시간의 여유가 생겼으며 생활 리듬을 되찾아 좋다는 응답률이 83.0%나 되었다. 이 조사에서 앞으로 서머타임을 계속 실시해야 하는가를 물은 질문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각각 20.4%, 62.0%로 나타난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서머타임제가 우리에게 그리 유용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은 지리적 조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서머타임제 활용에 열심인 독일이나 영국은 여름과 겨울의 일광 시간 차가 크다. 독일 함부르크와 영국 런던은 하지와 동지의 일광 시간 차가 각각 9시간 38분, 8시간 19분이나 된다. 반면 서울은 5시간 3분에 그친다. 게다가 한국의 표준시는 원래 동경 127.5도인데 한·일 양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위해 일본을 지나는 동경 135도에 맞추어졌기 때문에 30분이 빠르게 되어 있다. 여기에다 서머타임제를 시행하면 표준시보다 1시간30분이 빨라지는 셈이다.

정부 “내년부터 시행” 의지 굳어

이 모든 반박 논리에 대해 정부는 세계 70여 나라, 특히 선진국에서는 모두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반박한다. 실제로 부작용이 심각했으면 계속했겠느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수면 의학자들은, 우선 환경 조건이 달라 맞비교하기는 곤란하며, 무엇보다 생체 리듬에 대한 연구가 80년대까지 별 진척이 없었던 탓이 크다고 설명한다. 인공 시간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임상 보고가 부쩍 늘어난 것은 90년대 들어서이며, 이에 따라 선진국에서도 한창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작용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부작용을 잘 몰랐다는 것이 수면 의학자들의 주장이다.

서머타임제의 손익계산서가 별로 이익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는데도 정부는 강행할 기세다. 표준시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만드는 데 40여 일이 걸리고, 항공 일정 조정 같은 기술적 문제 때문에 올해는 하기 어렵겠지만, 내년부터는 꼭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서머타임제는 생체 리듬 혼란과 같은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돈으로 따질 수 있는 가치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와의 충돌은 아닐까. 에너지 절약을 다른 방법을 통해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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