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몰락시킨 '보이는 손'
  • 런던·김용기 편집위원 ()
  • 승인 200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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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북 사업 추진·구조조정 압박 '이중성' 보여…
취약한 금융시장도 '한몫'


지난 1년간 한국 경제와 금융 시장을 짓눌러온 현대 사태가 6월이면 마무리된다. 국내 금융권은 지난 3월 말 이후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반도체(옛 현대전자)에 9조원 상당을 지원했고, 하이닉스 반도체와 현대 금융 계열사(현대투신·현대투신운용·현대증권)에 대한 외자 유치도 6월 말이면 판가름 난다. 외자 유치가 성사될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현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현대그룹 후계자 MH(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 몽헌씨)가 급속히 몰락했다는 점이다. MH 계열의 대표적 3대 기업 중 하이닉스 반도체와 현대건설의 경영권이 이미 채권단으로 넘어갔고, 마지막 남은 현대상선의 경영권 또한 위협받고 있다. MH가 이렇듯 급속히 몰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 대북사업·LG 반도체 인수에 5조원 투입




이 질문에 대한 전형적인 답변은 재벌 구조의 문제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근대적 경영 전략에 따른 그룹의 문어발식 확장이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고, 얽히고 설킨 계열사 사이의 상호 보증 및 채무 관계가 위기를 그룹 전체로 확산시켰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MH가 몰락한 과정을 살펴보면 현대그룹 바깥의 문제점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금융 시장의 취약성과 정부 정책의 이중성이다.


지난해 3월 '왕자의 난'을 통해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후계자로 등장한 MH는 등극 직후부터 몰락의 길을 달려왔다. 처음 위기가 표면화한 것은 왕자의 난 직후 멀쩡해 보이던 현대상선이 주거래 은행인 외환은행과 산업은행에 대출 한도 증액을 요청하면서부터였다. 현대상선은 포항제철·한국전력·현대정유 등 굵직한 회사와 장기 수송 계약을 맺고 있었던 터라 본래부터 현금 유동성이 좋기로 소문 난 회사였다. 그런 현대상선이 은행에 손을 내민 것은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이 현대상선이 발행한 기업어음 2천20억원을 예기치 않게 회수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삼성 계열사들이 자금 회수의 방아쇠를 당긴 이유는 현대상선이 대북 금강산관광 사업의 선두에 선 현대아산에 9백40억원 자본 참여를 했고, 그 외에도 선박 대여 등을 통해 대북 사업을 지원하면서 현금 유동성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대북 사업이 시작된 1998년 이래 2000년 상반기까지 현대그룹 계열사를 통해 북한에 투입된 자금 규모는 2조5천억원 이상이었다.




정부는 1998년 이래 당시까지 현대의 대북 사업과 기업 확장에 대해 이중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외환 위기 이후 정부내 구조조정론자들은 빅딜과 부채 비율(BIS) 200%라는 정책을 통해 재벌의 확장 경영에 압박을 가했지만 그 압박이 현대그룹에는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북 사업 때문에 지나치게 현대그룹을 편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정부의 대북 사업 추진론자들이 정치적으로 현대를 옹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의 대북 사업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현대는 현대증권과 현대투신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고, 이 때문에 확장 경영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우 사태 이후 현대가 급속히 유동성 위기에 빠졌을 때도 정부의 대북 사업 추진론자들은 현대의 대북 사업을 경제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


현대의 대표적인 확장 경영 사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가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한 것이고, 둘째가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것, 셋째가 금강산 사업이다. 이 중 첫째와 셋째가 바로 MH 그룹에 의해 추진되었다. LG반도체를 인수하는 데 소요된 돈은 무려 2조5천억원. 이미 언급했듯이 금강산 사업에도 비슷한 규모의 자금이 들어갔다.


대우 사태로 결정타 맞은 현대의 '확장 전략'


현대 계열 금융사들은 MH측 이익치 회장의 주도 아래 1998년과 1999년 주식 시장의 이상 과열을 부추기며 계열사 확장 비용을 조달했을 뿐 아니라 계열사의 부채 비율도 줄여갔다. 한 외국 은행 고위 간부의 표현에 따르면, 현대 계열사들은 분자 줄이기보다는 분모를 늘려, 다시 말해 부채의 절대량을 줄이기보다는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늘림으로써 부채 비율을 줄여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무리수도 동원되었다. LG반도체와의 빅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현대전자의 주가를 조작한 것이다. 따라서 금융 시장 활황과 금융 계열사라는 조달 창구가 없었더라면 MH 계열의 급속한 확장은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이렇게 돈을 끌어대며 확장해 가는 전략에 차질을 빚게 만든 것이 바로 대우 사태였다. 1999년 하반기 대우 사태로 투신사들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투신사에서 고객 예탁금이 엄청나게 이탈함으로써 현대투신은 자본 잠식 상태에 들어갔다. 투신사의 몰락은 자금 시장 경색으로 이어졌다. 전통적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의 최대 인수자였던 투신사가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고객의 예금이 몰린 은행들은 BIS 비율에 묶여 기업에 대한 대출이 극도로 위축된 상태였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친 이야기처럼 망해 버린 대우 김우중 회장이 혈기 왕성한 현대 정몽헌 회장의 뒷덜미를 잡아챈 것이다.


한국 금융 시장과 현대 계열사에 대한 탁월한 분석력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 투자 은행 샐러먼 스미스바니 분석가들의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대우 사태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애당초 기업의 확장 전략에 믿을 만한 구석이 없었더라면, 현대가 LG반도체를 인수하거나 과감하게 대북 사업을 추진하지는 않았으리라는 분석이다. 현대가 유동성 위기에 빠짐으로써 역설적으로 재벌 개혁을 위한 정부내 구조조정론자들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정부내 대북 사업 추진론자들의 현대 지원이 야당과 언론의 공격 때문에 가시화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시장 논리를 앞세운 경제 관료들의 영향력이 먹혀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현대 계열사들의 각개약진이 시작되었다. 현대상선은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현금 수입 덕분에 채권단의 지원을 받으며 연명할 수 있었지만 여타 MH 계열사까지 지원할 여력은 잃어버렸다. 예기치 못한 엔화 하락과 원화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 금액은 지난 한 해만도 수천억원에 달했다.


현대건설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애당초 건설 시장이 불황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금융권으로부터 집중적인 자금 회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현대건설은 대북 사업의 전위에 서 있는 현대아산에 20% 자본 출자를 한 상태였다. 지난해 5월의 경우 현대건설이 발행한 어음과 채권의 차환율(만기가 끝난 뒤에도 회수하지 않고 남겨두는 비율)은 23%에 불과했고, 6월의 경우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39%에 머물렀다. 외환 위기 직전인 1997년 10월 당시 한국계 은행에 대한 외국 은행들의 차환율이 80%를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대건설에 대한 채권 금융기관들의 회수율은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했다.


현대건설의 자구책이 여러 차례 진행되면서 정몽헌 회장의 현대건설 지배력은 채권단에 넘어가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대주주 완전 감자(減資) 결정을 통해 현대건설은 확실하게 MH 품을 벗어나게 되었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불운은 빅딜에서 출발했다. 이 회사는 LG반도체를 인수함으로써 2000년 5월에 2조5천억원의 신규 부담을 지게 되었다. 반도체 사업의 성격상 자본의 집중 투자가 필요했으나 한국 금융 시장의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자본 조달이 3년 이하 채권과 어음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보통신산업 침체에 따른 D램 수출 감소와 가격 하락은 설상가상이었다. 현대상선 및 MH 개인이 소유하던 하이닉스 반도체의 주식 지분이 채권단에 담보로 맡겨지게 되었고, 지금 이 지분은 해외 투자자가 인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MH가 몰락하는 데 걸린 기간은 겨우 1년여. 그 기간에 MH는 금융 시장과 정부 정책 등 세상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은 상황에 휩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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