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도망자' 김우중, 제 발로 돌아올까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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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귀국설 나돌아…측근들 사이엔 재기설도 분분
최근 증권가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국내에 들어와 김대중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아무개 수석 비서관을 만났다는 것이다. 김씨가 귀국을 앞두고 현정권과 협상하고 있다는 그럴듯한 해석도 곁들여졌다. 재계의 몇몇 정보통이 이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으나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해 일과성 소문으로 결론이 나는 분위기이다.




이처럼 요즘 재계에는 김우중씨와 관련한 얘기가 부쩍 많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주변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조짐으로 보인다. 특히 10월24일자 〈한국경제신문〉이 '김우중씨가 곧 귀국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보도해 그의 행보에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김씨는 1999년 말 베트남에 있는 대우자동차 공장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한 뒤 3년째 해외에서 떠돌고 있다. 그는 과연 귀국할까.


김우중씨는 현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사기 등)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배되어 있는 상태이다. 2000년 9월16일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41조원 분식 회계를 한 혐의 등으로, 지난 4월2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위장 계열사 6개를 운영한 혐의로 검찰에 그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해외 1백78개국 인터폴의 협조를 받아 김씨의 소재를 추적해 온 검찰은 지난 5월10일자로 기소 중지 조처를 취했다.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추호석 전 대우중공업 사장 등 대우그룹 분식 회계와 불법 대출 사건에 연루된 전 대우그룹 고위 임원 7명은 7월24일 26조원대 추징금과 함께 3∼7년형을 선고받았다. 때문에 이들의 우두머리 격인 김씨는 최하 십수 년 옥살이를 각오해야 할 형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김씨의 한 측근 인사는 대우 전·현직 임원들의 2심 공판이 마무리되는 연말이나 내년 초쯤 김씨가 해외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건강도 좋지 않고, 한때 자기가 거느렸던 임원들이 줄줄이 사법 처리되고 있는 상황을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우중씨 측근들, 비판·충성 '감정 싸움'


그러나 대우그룹이 해체될 때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김우중 연내 귀국'이라고 언론에 보도된 것은 김씨에게 충성하는 일부가 울분을 참지 못해 '일'을 벌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우일 전 대우그룹 상무가 〈월간 조선〉 11월호에 '무책임한 경영으로 이윤 창출에 실패한 용서받을 수 없는 경영인'이라고 공개 비판하는 등 측근들 사이에서도 김씨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데 격분해 '연내 귀국설'을 언론에 흘렸다는 것이다. 그는 김우중씨를 비판하는 쪽이나 옹호하는 쪽 모두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황을 볼 때 김씨 귀국을 둘러싸고 측근들은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쪽과 어떻게든 재기해야 한다고 보는 쪽으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며 재기를 모색하는 쪽이 점차 강해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김우중씨가 최근 귀국하려고 공항에 나타났는데 현지 공관원들이 말려서 다시 돌아갔다' '김씨가 우즈베키스탄의 면화 단지를 상당 부분 소유하고 있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 합병·매수 회사를 차려 대우 관련 회사를 인수하려고 국제 소송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대우 주변에 나돌기 시작한 것이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씨의 측근인 ㄱ씨와 ㅂ씨가 재기 작업을 막후에서 진두 지휘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귀국설'에 대해 김씨의 법률대리인인 석진강 변호사는 "본인이 마음먹으면 언제라도 들어올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 아니냐"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우중씨의 재기를 반대하는 대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씨가 다시 기업을 경영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며 관련 기관에 투서하는 등 정반대 기류도 나타나고 있다.


재계에서는 김우중씨가 귀국하기를 고대하는 곳은 수출보험공사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서울지방법원은 지난 7월31일, 수출보험공사가 김우중씨를 상대로 낸 어음금 청구 소송에서 '김우중씨는 수출보험공사에 2천5백20여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김씨를 보증인으로 백지 약속어음을 발행한 (주)대우 등이 1998년 11월부터 1999년 6월 사이에 수출보험공사로부터 대출을 받았는데 대우측이 한푼도 못 갚는 바람에 수출보험공사가 대신 갚았기 때문이다. 소송을 위해 인지대만 8억원이 넘는 돈을 쓴 수출보험공사측은 소송에는 이겼지만 실제로 돈을 받아내지는 못했다.


예금보험공사나 검찰도 김씨가 귀국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국내외에 있는 그의 은닉 재산을 찾고 있는 예금보험공사는 그가 귀국해야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검찰 또한 기소 중지 상태인 김씨에 대한 수사를 진전시키려면 그가 반드시 귀국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김우중씨는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그는 그간 수단·홍콩·베트남·프랑스·루마니아에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부인 정희자씨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말이 측근들 사이에 퍼져 있다. 위장병 등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씨는 회고록을 집필하며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현정권, 김씨 귀국 원치 않는다"


김우중씨는 1999년 말 해외 방문에 나서기 직전 주변 사람들에게 "2000년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희망 섞인 관측은 엇나갔다. 그를 보좌했던 한 재계 관계자는 내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 전에 그가 귀국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얽혀 있는 것이 너무 많아 현정권이 김씨가 귀국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귀국한다면 김씨-무기중개상 조풍언씨-현정권으로 연결되는 커넥션, 김씨가 현정권에 제공한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져 정국에 큰 파란이 일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런 정치적 문맥을 감안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그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의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석진강 변호사는 이른바 '김우중 리스트'는 없다며 그런 해석은 억측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최근 김씨와 관련해 여러 가지 논란이 불거지자 '김씨가 귀국할 경우 조사를 거쳐 원칙대로 사법 처리할 것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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