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먹여살릴 혁신기술 현장을 가다 ④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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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전략가 마이클 포터 하버드 대학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경쟁론>에서 기업은 원가 우위와 차별화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시장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경쟁 기업들과 비교해 생산 원가 구조에서 우위를 차지하거나 경쟁 방식에 차별성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초기 설비투자 비중이 크고 경쟁이 치열한 철강산업에서 차별화 기술과 원가 우위 생산 구조는 기업의 경쟁 우위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다. 국내 최대 철강 생산 업체 포스코가 기존 용광로 공법을 대체할 용융환원제철 기술인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를 서두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파이넥스 공법은 가루 형태 철광석과 일반 유연탄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쇳물을 제조하는 획기적인 제철 기술이다. 원료를 사전에 가공하는 설비가 필요 없어 투자 규모가 용광로 설비의 92% 가량이고 제조 원가도 83%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포스코는 1992년 파이넥스 공법 개발에 착수해 지금까지 연구 개발(R&D) 비용으로 4천2백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6월 연산 60만t 규모 파이넥스 공법 공장을 준공해 성공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지난 8월17일에는 총공사비 1조3천억원이 소요될 연산 1백50만t 규모 파이넥스 설비를 착공했다. 2006년 말 완공 예정인 파이넥스 공장이 정상 가동되면 포스코는 단계적으로 기존 용광로를 파이넥스 설비로 대체할 계획이다. <시사저널>은 ‘혁신기술 현장을 가다’ 네 번째 편으로 세계 최첨단 제철 기술을 주도해 가는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 연구 현장을 찾았다.
‘환경+생산성’ 꿈의 철강 빚는다

‘파이넥스 공법’으로 최첨단 제철 기술 선도하는 포스코


포스코의 조업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생산성이 뛰어나 원가 구조가 경쟁 업체보다 우수하다. 포스코 철강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코는 세계 최고의 철강 회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포스코는 스스로 개발한 철강 제조 기술이 없다. 선진 업체들이 개발한 제철 기술을 벤치마킹하는 데 치중했다. 지금까지 상용화한 기술을 받아들여 빠른 시간 안에 조업을 안정시키고 생산성을 높이는 ‘캐치업(catch-up)’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포스코는 세계 철강산업 리더로 성장한 다음에야 자체 기술 개발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 전략을 바꾸었다. 그 야심작이 파이넥스 공법이다.

파이넥스 공법은 자원 고갈과 환경 규제 강화 추세라는 미래 경영 환경에 맞는 제철기술이다. 파이넥스 공법 원료는 지름 8mm 이하 가루 형태의 분철광석과 일반 유연탄이다. 분철광석은 세계 철광 생산량의 80%가 넘어 덩어리 형태의 괴철광석보다 20%이상 싸다. 또 화력발전용으로 흔히 사용되는 일반 유연탄은 용광로에서 사용하는 코크스용 고급 유연탄보다 20% 이상 싸다.

또 오염물질 발생량이 크게 줄어든다. 원료를 사전에 가공하는 공정을 생략하면서 환경오염 물질인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용광로 공법의 각각 8%, 4%에 불과하다. 비산 먼지도 크게 줄어든다. 파이넥스 공법이 환경친화적 제철기술로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용광로 공법은 14세기에 개발되어 상용화한 지 100년이나 되었다. 생산성과 에너지 효율이 높아 가장 경쟁력 있는 제철공법으로 평가받았으나, 철광석과 유연탄을 덩어리 모양으로 사전 가공해야 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철광석을 덩어리 형태로 가공하는 소결공장이나 유연탄을 코크스로 만드는 화성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해야 하는 추가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또 덩어리 모양으로 잘 뭉쳐지는 고점결성 유연탄은 세계 석탄 매장량의 15%에 불과해 원료 고갈 위협에 직면했다.

포스코는 용광로 공법이 안고 있는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1992년부터 오스트리아 푀스트알피네 사(VAI)와 손잡고 파이넥스 공법 개발에 착수했다. 포스코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 소지자를 끌어들이고 연구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을 투입했다. VAI는 세계 3대 엔지니어링 회사다. 공정 설계를 맡은 포스크 개발진이 설비의 모양과 크기를 결정하고 VAI 연구진은 고로와 배관을 설계에 맞게 만들어냈다. 계약 조건은 단순하다. 포스코는 아시아·북아메리카·호주 시장을, VAI는 유럽·남아메리카·아프리카 시장을 각각 나누어 가졌다. 파이넥스 공법으로 생산한 제품을 자기가 차지한 시장에 수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VAI는 생산 설비와 조업 경험이 없어 자기 몫의 시장에 진출할 때도 포스코와 제휴할 수밖에 없다. 포스코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계약 조건을 체결한 것이다.

1996년 포스코는 4년 동안 공동 연구 개발한 성과를 담은 1일 생산량 15t 규모의 모델 설비를 건설했다. 3년 동안 시험 조업을 거쳐 1999년 1일 생산량 1백50t인 파이넥스 파일럿 공장을 가동했고, 지난해 5월에는 상업화 규모에 필적하는 연간 6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데모 공장을 설립했다.

설비가 완공되면 연구개발진과 현장 직원들은 홍역을 치른다. 설비를 첫 가동할 때마다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설비를 안정화하는 데는 1년 가량이 소요된다.

1년 동안 휴가 한번 못간 연구팀 ‘땀의 결실’

연산 60만t 데모 공장이 첫 가동하자 파이넥스 연구진과 조업자 1백80명은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설비가 멈추어버리면 정비팀이 투입되어 설비 이상을 검진하고 기술자와 관리자는 공정을 샅샅이 살핀다. 이후근 포스코 파이넥스연구그룹장은 “세계 최초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 설비가 오작동하면 그 해답을 찾는 일이 어려웠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연구진·조업팀·관리팀 전문가들이 모여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3개월 동안 퇴근하지 않고 비상 대기해야 했다. 지금도 12시간씩 맞교대로 투입되고 있다. 연구팀원들은 지난 1년 동안 휴가 한번 가지 못했다. 추석과 신년 연휴는커녕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설비 보수에 매달려야 했다. 이후근 연구그룹장은 “지난 1년 동안 설비 정상화를 위해 악전고투하다 보니 연구진의 땀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설비 곳곳에 있는 용접 자국에도 추억이 서려 있다. 이제 (설비가) 자식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이 흘린 땀만큼 연구 성과는 컸다. 지난 8월 파이넥스 공법에 ‘상용화에 성공한 첫 용융환원제철법’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전까지는 호주 리오-틴토 사가 클로에크너와 손잡고 개발한 히스멜트 공법이 상용화에 근접했을 뿐이다. 리오-틴토 사는 연산 80만t 규모 히스멜트 설비를 갖추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사실상 연구 개발이 중단된 상태다. 그밖에 몇 업체가 연구하는 것은 연산 10만~30만 t 규모에 불과하다. 포스코는 파이넥스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철강산업 후발 주자에서 세계 철강산업 기술을 주도하는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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