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한인양자회 주최 입양아 캠프 참관기
  • 성우제 ()
  • 승인 200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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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정체성은 코리언”
지난 8월14일 오후 4시께 북미 동부 지역을 강타한 정전 사태는 그 이튿날까지 계속되었다. 캐나다 토론토 시민들의 불편은 이틀째 이어져, 아파트 고층도 걸어서 오르내렸고 자동차들은 ‘휘발유 찾아 삼만리’를 했다. 그러나 15일 토론토 북쪽 근교에 있는 레지나문디 수녀원에서 열린 한 행사는 정전 사태에 아랑곳없이 오전 9시부터 정상으로 진행되었다.

‘한인 입양아 캠프’.

캐나다한인양자회(회장 임태호)가 주최한 입양아 캠프에는 토론토뿐만 아니라 키치너·런던(온타리오 주에 있는 도시)은 물론 자동차로 다섯 시간 거리인 오타와에서까지 손수 차를 몰고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올해 처음 열린 이 캠프에는 서른다섯 가족이 참여했다. 어느 가족은 식구가 8명이나 왔고, 어느 젊은 부모는 갓난애 자매를 안고 오기도 했다. 참여 가족들이 지닌 공통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모가 모두 백인 캐나다인으로서 한국에서 자녀를 입양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익히려는 그들의 열의가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또 거의 예외 없이 무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모두 기록해 자녀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한국 역사 및 한국어 강의, 한국 전통 춤 공연, 한국 노래 듣고 따라하기, 한국 문화 비디오 관람 등 한국과 관련한 모든 것들이 이들에게는 자녀 교육을 위한 소중한 자료인 것이다.

두 아들(3세, 6개월)을 데리고 코버그라는 도시에서 온 다린 셔트 씨 부부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묻자 간단하게 답했다. “우리 아이들이 코리언·캐네이디언이니까.”

이 30대 부부는 아이들이 캐나다인이기에 앞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당연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고교생 한 명이 우리 집에 여섯 달째 머무르고 있다. 우리는 그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그 학생은 우리 큰아들 레비에게 한국말을 가르친다. 레비는 지금 ‘나비’ ‘꽃’ 같은 말을 할 줄 안다.”

북미 지역 한국 입양아 부모들은 십수년 전부터 서로 유대 관계를 맺고 정보를 교환해 왔다. 1999년 6월 임태호 회장이 캐나다한인양자회를 설립한 이유는 입양아 부모들의 자녀 교육을 돕기 위해서이다. 부모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한국 문화·한국어를 가르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심장병 어린이 돕기 같은 봉사활동을 해온 임회장은 1991년 온타리오 주 런던의 한 공원에서 열린 ‘CANADOPT’라는 프로그램에 토론토 한인사회 대표 자격으로 초청받은 적이 있다. 그를 부른 이들은 한국인 입양 자녀를 둔 캐나다 부모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한인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양부모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라고 임회장은 말했다. 입양아 부모들이 자주 만나 정보를 교환하는 이유는,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갖게 될 고민, 다시 말해 정체성 문제 같은 것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임회장에 따르면, 예전에 한국에서 온 입양아 가운데 길러준 부모를 배신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자기를 버린 친부모에 대한 원망이 피부 색깔이 다른 양부모에게까지 이어지고, 모국은 물론 자기가 자란 사회까지 증오하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던 노르웨이 입양아 출신 젊은이(26)는 ‘힘든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2년 전 목을 매 자살했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의 한인 입양아 출신 젊은이(29)가 미국인 3명을 살해하고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입양아 자살률은 친부모 슬하에서 자란 자녀들보다 4~5배 높고, 입양아 가운데 3분의 1 정도만 결혼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나 유럽 선진국 가정에 입양되었다고 해서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만은 아닌 셈이다.
지난해 8월 토론토 최대 일간지 <토론토 스타>는 몬트리올에 사는 입양아 네 자매의 모국 방문을 3면에 걸쳐 크게 보도한 적이 있다. 장손인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새 부인을 얻어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새 부인이 아들을 낳자 목을 매 자살했고, 아버지는 네 딸을 캐나다로 입양시켰다.

이후 성장해 30대부터 10대 후반에 이르는 네 자매는 모국을 찾아 아버지가 사망한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숙부 앞에서 절규했다.

“이렇게 잘사는 나라에서 왜 우리를 해외로 내보냈나요?”
그래도 네 자매가 한 가정에 입양되어 함께 자랐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입양 자녀를 한두 명씩 키우는 대부분의 다른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혹시 상처라도 입을까 봐 유리 다루듯 조심조심 대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해외 가정으로 입양되는 젖먹이의 숫자는 1년에 2천2백여명에 이른다. 미국으로 절반이 가고, 나머지는 캐나다·스웨덴 ·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프랑스 등지로 보내진다. 캐나다에는 해마다 100명씩 입양되어, 지금은 3천여명에 이른다.

캠프에 참여하려고 한국에서 온 김명우 대한사회복지회 회장에 따르면, 한국 내에서도 입양 가정이 꾸준히 늘어 지금은 한 해 1천8백여명이 국내에서 양부모를 찾는다고 한다.

이번 캠프에서 입양아 부모들을 대상으로 국사를 강의한 유영식 교수(토론토 대학·한국학)는 한인들이 입양아 가정을 도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한인 입양아 부모들은 우리 대학 한국학과 학생들보다 더 적극적인 친한파이다. 입양아들은 최소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그곳의 깊숙한 문화를 배우고 자란다. 그 자녀들까지 한국을 사랑하게 된다면 한국은 엄청난 힘을 얻게 되는 셈이다.” 만약 이들이 스스로를 모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겨 모국을 증오하게 된다면 물론 그 반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한국은 지금 해외 입양 1위 자리를 중국에 물려주고 4위로 ‘밀려난’ 상태이다. 한국전쟁 직후 시작된 본격적인 해외 입양으로 현재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입양아 출신 한인은 60만명을 헤아린다. 이 60만명이 모국과 모국 사람들이 하기에 따라 한국의 자식이 될 수도, 한국과 원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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