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하 X파일 캐는 ''한반도 프로젝트''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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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구진, 미 항공우주국과 공동 탐사 작업ㆍㆍㆍ지형 정보 분석ㆍ자연 재해 방지ㆍ광물 탐사에 폭넓게 응용
10㎞ 상공에서 최첨단 원격 탐사 장비로 한반도를 집중 관측하는 프로젝트가 오는 6월에 실시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와 서울대 문우일 교수 등 한국 연구진 17명이 인공 위성 10여 개의 능력과 맞먹는 ‘차세대 센서’를 이용해 이틀간 한반도의 지표면과 지하를 관측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PACRIM2 한반도 프로젝트’.

미국 항공우주국은 2년후 인공 위성 등에 활용할 차세대 원격 탐사 장비인 SAR의 성능을 시험하려고 항공기를 이용해 환태평양 지역을 탐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 일환으로 이틀에 걸쳐 한반도를 관측할 예정인데, 이 기간에 한국 연구진이 참여하는 것이다. 한국 연구진으로서는 국내 기술로 얻기 힘든 연구 자료를 얻고 최첨단 원격 탐사 기술을 배울 절호의 기회다. 그래서 환경ㆍ지질ㆍ해양ㆍ임업 및 농업ㆍ고고인류학ㆍ전자 및 전기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 학자가 참여한다. 한반도에서 관측할 지역은 서해안?남해안 일대와 경상 분지, 제주도 등이다.

지표면에 물 많아 지하 2m까지만 가능

이 프로젝트에 쓰일 장비는 미국 제트추진연구소가 개발한 에어사(AIRSAR:항공기용 극초단파 관측기)와 마스터(MASTER). 에어사는 구름?악천후?화산재 등 기상 조건에 관계없이 3∼4개의 극초단파를 이용해 지표면부터 지하까지 관측할 수 있는 최첨단 장비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관측이 가능하다. 알려진 것처럼 지하 10m까지 샅샅이 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막에서는 최대 지하 10m까지 관측할 수 있으나 한반도의 지표면에는 물과 유시물이 많은 편이어서 지하 2m 정도까지만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에어사를 이용한 원격 탐사는 사진처럼 눈에 보이는 물체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다. 에어사가 극초단파를 레이저처럼 지상으로 쏘면 그것이 지구 표면에서 분산되어 돌아올 때 지표의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해 온다. 컴퓨터를 이용해 이 데이터를 영상으로 처리하거나 분석해서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얻는 것이다.

마스터는 가시 광선에서 열적외선 영역까지 50개 분광 해상력 밴드를 갖는 최첨단 항공기 모사용 센서이다. 종래의 인공 위성이 1개의 극초단파와 광선의 일정 영역에서만 촬영할 수 있었던 데 비해, 마스터는 인공 위성 10여 개가 동시에 촬영한 것과 같은 수준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쓰이는 장비는 산 위에 있는 나무 높이를 재고, 5㎝의 이동 격차까지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데이터 수집 능력이 뛰어나다. 골목에 주차한 자동차를 5㎝만 이동해도 10㎞ 상공에서 그 변화를 알아낼 수 있을 정도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1990년대 중반 셔틀 실험의 일환으로 비슷한 원리의 원격 탐사 장비를 써서 사하라 사막을 관측하다가 땅 밑에 흐르는 강을 발견한 바 있다. 1996년에는 캄보디아 정글에 파묻혀 있던 옛 성토를 찾아내기도 했다.
경주ㆍ부여에서 ‘물건’ 나오기를 기대

따라서 에어사와 마스터를 이용한 원격 탐사는 지형도 제작에 필요한 자료뿐 아니라 산림 자원 감시, 농작물 작황 예보, 인공 구조물 탐지, 지하 자원 탐사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우리 연구진은 우선 에어사와 마스터로부터 얻은 자료를 활용해 정밀한 지질ㆍ지형 정보를 복원하는 방법을 찾아낼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지형도 데이터 베이스 제작을 위해 연간 5백억원 이상 투자해 왔다. 지형지물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에어사를 활용하면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지형 정보 데이터 베이스를 확보할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

우리 연구진은 또 이번 기회를 통해 발굴되지 않았던 역사 유적이나 유물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수백명이 몇 달 동안 해야 할 탐사 작업을 이틀 만에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 투시까지 가능하므로 숲에 덮여 있거나 땅속에 묻힌 옛 성터ㆍ집터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 것이다. 임효재 교수(서울대ㆍ고고학)는 “경주와 부여에는 밝혀지지 않은 유적지가 매우 많을 것이다. 이 지역을 관측하는 동안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옛 유적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차세대 원격 탐사 장비인 편광 현상을 이용한 SAR로 지구 시스템에 관한 연구와 응용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 연구진의 주요한 목표이다. SAR 연구는 수㎞ 상공에서 지상과 지하 지형물은 물론 이동 흔적까지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어 국가 안보에 관계된 응용 기술과 정보를 개발하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 미국ㆍ캐나다ㆍ일본은 이미 SAR 기술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위성이나 비행기를 이용한 독자적인 SAR 시스템을 제작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분야의 기술력을 갖지 못하면 훗날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SAR 자료를 처리하고 응용하는 기술을 가진 국내 연구자는 드물다. 특히 편광 현상을 이용한 SAR 연구와 응용 능력은 거의 없다. 한반도 프로젝트 국내 연구 책임자인 문우일 교수(서울대?지구시스템과학)는 “앞으로 미국은 물론 캐나다와 일본도 여러 개의 위성에 SAR 시스템을 탑재하고 발사할 계획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SAR 연구자와 기술을 육성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우리 연구진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자연 재해 방지에 관한 응용 연구도 수행할 예정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포함하여 산업 개발 지역의 환경을 관측하고 보존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규성 교수(인하대학교?지리정보공학과)는 산림 환경 변화를 관측하기 위한 다중 센서 영상 자료 활용 및 분석 기법을 개발하고자 한다. “눈으로 산림이 오염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이미 오염이 심각해진 수준에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에어사로 산림을 관측하면 오염 초기에도 그 변화를 관측할 수 있어 환경 오염의 피해를 최대한 줄일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라고 말한다. 또 농작물 생육 과정과 유형을 관측하고, 홍수나 병충해 피해의 영향까지도 관찰할 수 있어 농업에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마스터는 지질학적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준다. 예컨대 하천이나 토양이 오염될 때 나타나는 특정 원소 분포 등을 연구해 지하수 오염 문제를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검토할 수 있다. 국내 연구진은 마스터 센서가 수집하는 데이터 중에서 식별 가능한 원소의 종류를 파악해, 마스터의 자료를 지구 표면 환경과 광물 탐사에 이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이인성 교수(서울대ㆍ지구시스템과학과)는 “마스터는 원소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어 노출이 잘 된 지형에서는 광물 탐사 자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사막보다 조사 환경이 떨어지기 때문에 마스터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로 그 가능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라고 설명한다. 바다 오염 감시ㆍ유전 발굴에도 활용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해양학적 연구도 함께 진행된다. 한국해양연구소 김태림 박사는 에어사를 이용한 연안 연구를 계획했다. 해양은 육지와 달리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넓은 해역을 동시에 관측해야 한다. 수㎞ 상공에서 여러 센서를 활용해 넓은 해역을 동시에 관측하는 SAR는 해양 연구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다. 해수면의 거칠기 등을 감지함으로써 파랑 정보는 물론 해상풍, 잠수함 작전에 중요한 내부파, 유류 오염 감시 및 해상 유전 발견, 선박 감시 등에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에어사는 하나의 편광 방식만을 활용한 종래의 SAR보다 발전된 모델이어서 파랑이나 유류 오염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를 감지할 수 있어 해면 위 해류 속도를 사진 찍듯이 동시에 관측할 수도 있다.

한반도 프로젝트는 항공 원격 탐사 기술을 배울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독자적으로 항공 원격 탐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항공기를 보유하거나 임차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한국항공우주연구소 백홍렬 박사의 설명이다. 항공기를 보유하려면 항공기를 구입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뿐 아니라 인건비와 운영비 등 추가 비용이 필요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한번 빌리는 데도 3천만원 이상 든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를 미국과 함께 진행하면 자료 획득은 물론 국내에서 취약한 항공 원격 탐사에 필요한 기술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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