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복권 사업에 로비 의혹 뭉게뭉게
  • 李哲鉉 기자 ()
  • 승인 2000.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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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풀스코리아, 입찰 경쟁 독주… 로비 의혹 ‘뭉게 뭉게’
체육진흥투표권 수탁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물밑에서 진행된 업체간 다툼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문화관광부 체육정책과가 지난 2월10일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손질을 마치면서 수탁사업자 요건과 수익금 배분 원칙(아래 상자 기사 참조)이 뚜렷해진 것이다. 사업권을 따기 위해 경쟁하는 업체들은 청와대와 국회를 비롯해 문화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있는 자기 인맥을 이용해 정보를 얻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게임의 규칙이 마련됨에 따라 참가자들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뛰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관광부 손에서 떠난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은 20일 동안 입법 예고된 후 규제개혁위원회·법제처·당정회의 심의를 거쳐 3월 중순 최종 확정된다. 그 다음 벌어지는 것이 수탁사업자 선정 작업이다. 수탁사업자 선정 권한을 가진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완전 공개 입찰 방식으로 수탁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개인휴대통신 사업자(PCS) 선정 때처럼 나중에 잡음이 일어날 소지를 아예 없애겠다는 뜻이다. 하지만‘체육진흥투표권’이라고 불리는 축구 복표 사업 관계 법령이 지난해 8월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 이미 특정 업체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 사업 시행과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규정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8월 박세직 의원을 비롯해 국회의원 54명이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마련될 때 타이거풀스코리아는 국회 문광위 소위원회와 축구협회 자문에 응하면서 법안 작성을 주도했다고 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체육진흥투표권 사업부 이석호 부장은“타이거풀스코리아가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타이거풀스코리아는 1923년 세계 최초로 축구 복표 사업을 시작한 영국 리틀우즈 레저와 SST 인터내셔널스포츠베팅 사를 비롯해 스포츠베팅 전문 업체들이 설립한 시스템 개발 업체인 APMS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합작사이다. 타이거풀스코리아는 3년 전부터 축구 복표 사업을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 애써 왔다. 가장 먼저 복표 사업을 준비한 만큼 경쟁 업체들보다 앞서 달리고 있다. 자본금을 천억 원으로 불리기 위해 대형 컨소시엄을 구성할 복안을 갖고 국내외 업체와 접촉하고 있다. 타이거풀스 내부 관계자는“수탁사업권은 타이거풀스가 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사업 시행자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관계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타이거풀스코리아측과 다른 복안을 갖고 있었다. 축구 복표 사업이 사행심을 부추기고 그 수익금이 공익 기금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감안해 공공기관이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래서 지난해 8월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된 개정 법률 초안 제19조 4항에는‘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은 문화관광부 승인을 얻어 단체 또는 개인에게 체육진흥투표권발행사업을 위탁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사업 위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8월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률에서는‘…위탁해야 한다’라고 바뀌었다. 사업 시행자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민간 업체에 사업을 위탁하고 수익금 배분과 사업자 선정 권한만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다. 관리 감독 권한은 문화관광부가 가지게 된다. 사업자를 선정하고 나면 공단은 권한이 없고 책임만 떠안게 되는 것이다. 공단측은 타이거풀스코리아가 국회의원과 축구협회에 로비를 벌여 조항을 바꾸었다고 주장한다.

타이거풀스코리아 송재빈 부사장은“사업 시행에 공단이 배제된 것은 타당하다. 한국스포츠TV를 운영하면서 6백억 원이나 적자를 내고 이미 시행된 스포츠 복권 사업도 실패한 곳이 공단이다”라고 주장했다. 신원을 밝히기를 꺼리는 복표 사업 관계자는 다르게 주장한다.“타이거풀스코리아가 정치권에 로비해 사업 위탁 강제 규정을 관철했다는 것은 삼척 동자도 아는 일이다. 당시 경쟁 업체가 없어서 사업 위탁에 대한 강제 규정만 마련되면 타이거풀스코리아가 사업권을 따리라고 판단한 듯하다.”

업체 관계자들은 수탁사업자 자격 요건을 규정한 국민체육진흥법 제22조 3항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한다. 이 조항은‘국내외에서 허위 기타 부정한 체육진흥투표권 발행 사업 기타 유사한 사업의 수행으로 처벌받은 사실이 없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범법 행위를 저지른 업체가 수탁사업자로 선정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복표 사업자 자격 조항에 이 규정을 못박은 나라는 드물다. 업체 관계자들은 이 규정이 세계 복표 사업 시스템 시장 65%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지텍 사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라고 지적한다. 지텍 사는 1998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처벌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텍 사는 대우정보통신과 손잡고 제휴 업체를 사업 주체로 내세우려 한다. 시스템 납품으로 일찌감치 사업 전략을 바꾼 것이다.

타이거풀스코리아는 정치권으로부터 로비를 벌였다는 주장을 전면 부인한다. 한국과 영국 합작사인 이 회사 관계자들은 지난 3년 동안 군불을 때 밥(축구 복표 사업)을 지었더니 숟가락만 들고 와 먹겠다고 나선 업체들이 선두 업체를 음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송부사장은“사업에 필요한 내용을 설명한 적은 있지만 정치 자금이나 뇌물을 건넨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타이거풀스코리아 “선두 업체에 대한 음해”

타이거풀스코리아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로비 의혹 가운데 확인된 것은 없다. 하지만 타이거풀스코리아가 정치권과 줄이 닿는 인사나 중앙 일간지 기자 출신 인사를 잇달아 영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김재광 전 국회 부의장의 친동생인 은행장 출신 인사를 영입하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송부사장은“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을 영입하는 것은 로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들은 매출액이 1조원이나 되는 사업권을 따는 데 로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이름을 밝히기 꺼리는 업체 관계자는“미국 시스템 생산업체인 지텍 사는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미국인 로비스트 A씨를 내세워 정권 핵심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A씨는 1980년대 미국 상원을 상대로 김대중 대통령 구명 운동을 벌였을 정도로 김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인사로 알려져 있다. 뒤늦게 사업권 경쟁에 뛰어든 한 업체 사장은“기술력으로는 우리 업체가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막판까지 가면 평소 친분이 있는 정치 실세의 도움을 받을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사업권 입찰 경쟁은 선두 업체인 타이거풀스코리아를 지텍과 스포츠코를 비롯한 6∼7개 업체가 뒤쫓고 있는 모양이다. 타이거풀스코리아는 후발 업체들을 경쟁 상대로 보지 않는다. 그만큼 앞서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후발 업체들도 그것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코 정영조 사장은“스포츠코는 사업권을 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시장 조사를 하러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타이거풀스코리아가 구축한 것이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경쟁이 공정하게 진행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공익에 배정될 자금은 많아진다. 업체들이 경쟁 업체를 의식해 사업계획서에 복표 판매 수수료를 적게 기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은 최근 영국 복권 사업에 뛰어들면서 수수료 0%를 제시했다. 이 제안에 놀란 경쟁자들은 수수료를 대폭 내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사업권 입찰 경쟁에서 가장 앞선 타이거풀스코리아는 매출액 10%를 판매 수수료로 가져갈 심산이다.

축구계 인사들은 복표 사업이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를 준비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 미루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1년 전 축구 복표 운영회사를 선정하고 올해 가을 시험 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그 사업은 파행을 면치 못할 뿐만 아니라 공익 기금 조성에도 차질이 생긴다. 첫 단추인 수탁사업자 선정 작업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선정 권한을 가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정치 집단이나 외부 세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완전 공개 경쟁 방식에 따라 수탁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는 장치가 우선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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