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흡혈귀'' 모기 대탐구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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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생활사 정밀 탐구/질병 옮기는 종류 극소수…이상 번식은 인간의 잘못 탓
밤마다 전쟁이다. 피아의 전투는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에 시작해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7~8월께 절정을 이루다가 소슬바람이 이는 10월이 되어서야 겨우 진정된다. 전투는 끝날 수 있어도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휴전 상태를 맞을 뿐, 이듬해 여름이 오면 전쟁은 재발한다.

최근 들어 이 지루한 전쟁은 한층 더 격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보고서는 1979년 적의 한 무리가 완전히 궤멸했다고 판단했다. 아군의 승리였다. 그런데 1993년부터 적군 일부가 다시 준동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인해 전술’을 구사하며 아군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아군은 인간이고, 새로 부활한 적군의 이름은 ‘중국얼룩모기’. 정확한 소속 부대 이름은 ‘파리목(目) 모기과(科) 학질모기아과 얼룩날개모기속(屬)’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이 북한에서 넘어와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는 ‘게릴라 부대’라고 추측하지만, 침투 경로는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암모기, 종족 번식 위해 흡혈한다

인간에게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모기속 모기의 화력은 강력하다. 전세계에서 매년 3억 명을 공격하여 이 중 1백50만~2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물론 한반도에 다시 출몰한 중국얼룩날개모기는 다른 병력에 비해 비교적 화력이 떨어진다. 이 모기가 말라리아를 퍼뜨리며 사용하는 무기(삼일열원충: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병원충의 일종)는 인간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지는 않기 때문이다. 열대 지방에서 연중 내내 전투를 수행하는 다른 얼룩날개모기의 무기(열대열원충)는 훨씬 더 치명적이다. 이 무기는 어린이와 면역성 없는 성인에게 말라리아를 일으켜 이들 중 10%를 죽음으로 내몬다.

모기와의 전쟁은 인간이 모기 전체를 ‘적’으로 규정하면서 시작되었다. 100여 년 전 일이다. 그 이전까지 인간은 모기를 단지 웽웽거리는 소리로 단잠을 설치게 하고, 따끔한 ‘침맛’으로 가렵게 하는 성가신 존재로만 여겼다. 그런데 19세기 말 모기가 말라리아를 매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가 달라졌다.1877년, 맨슨이라는 학자는 집모기속(Genus Culex)의 일부 모기가 각종 뇌염을 옮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900년에는 숲모기의 일종인 ‘이집트숲모기’가 황열병(Yellow fever)을 퍼뜨린다는 것도 밝혀냈다. 학자들의 노력으로 모기의 정체는 점점 더 명확해졌다. 모두 2천5백 종이 넘는 모기 중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몇몇 모기가 말라리아나 뇌염 외에 다른 질병도 매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침내 인간은 모기 전체를 ‘해충’(의학적으로는 ‘위생 곤충’이라고 부른다)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퇴치하기 위해 선전 포고를 했다.

현재 국내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모기는 50여 종. 이 가운데 인간의 주된 적은 중국얼룩날개모기와 작은빨간집모기이다. 최근에 열린 말라리아 관련 심포지엄 자료에 따르면, 중국얼룩날개모기는 1993년 비무장지대에서 출현한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남한에서 군인(제대 군인 포함) 6천6백 여명과 민간인 3천1백여명에게 피해를 안겼다.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빨간집모기는 인간이 효과적으로 대응해 갈수록 전투력을 상실하고 있지만, 여전히 매년 여름 보건 당국으로 하여금 ‘비상’을 걸게 하고 있다.
모기는 종족 번식, 즉 생존을 위해 인간에게 싸움을 건다. 특히 암컷이 그렇다. 교미를 끝낸 암컷은 산란하기 전까지 일단 난소에서 알을 키우는데, 이 때 알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사람의 피(동물성 단백질)를 빨아먹는다. 동물성 단백질을 알에 공급하는 작업은 ‘야간 기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낮에는 그늘이나 물가에서 쉬다가 밤에 활동하는 습성이 있는 이들은, 밤이 으슥해지면 이윽고 날개를 펴고 ‘보급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이한일 교수(연세대의대 기생충학교실)는 “말라리아 모기는 밤 10시께 나와 새벽 2~3시에 활동이 절정에 이르므로 초저녁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사람 피보다 돼지나 소의 피를 더 좋아하는 뇌염 모기는 밤 8∼10시에 극성을 부린다. 일부 섬 지방에서 사상충을 옮기는 토고숲모기 역시 밤에 활동하는데, 가축 피보다 사람 피를 더 좋아한다.

문제는 이들 모기가 피만 빨아먹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충이나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옮긴다는 데 있다. 말라리아 병원충은 모기 위 속에서 기생하다가, 모기가 사람 피부에 ‘빨대’를 찔러넣는 동안 모기의 침에 섞여 사람 몸에 침투한다. 뇌염 바이러스 역시 모기가 피를 빨아먹을 때 인체에 옮겨진다.모기는 모두 피를 빨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또 흡혈 습성이 있는 모기라 하더라도 모두가 질병을 옮기는 것은 아니다. 모기 가운데에는 피만 빨아먹고 병원충이나 바이러스를 전염시키지 않는 비교적 안전한 종류도 있다. 이들은 모기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에 대해 ‘감수성’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토고숲모기의 일부는 아예 피를 빨아먹지 않고도 산란할 수 있다. 왕모기아과 모기들은 오히려 말라리아 매개 모기 등의 유충을 잡아먹고 살아 ‘아군’에 속한다.이처럼 사람에게 이롭거나, 최소한 사람에게 치명적 피해를 주지 않는 모기들이 생각 밖으로 많은데도, 인간은 모기 전체를 ‘인류의 적’으로 낙인 찍었다. 일부 모기가 인간에게 질병을 전염시킨다는 사실 외에도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나 나비와 달리 인간의 눈길을 전혀 끌지 못하는 ‘그저 그런’ 외모, 피부를 가렵게 하는 등 인간을 성가시게만 하는 고약한 식습관, 지저분하거나 음습한 곳을 즐겨 찾는 생활 습성이 오해를 낳았다.

다른 곤충들에게 흔히 있게 마련인 일종의 의사 전달 물질 ‘페로몬’(곤충이 분비하는 화학 물질, 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도 모기에게는 없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인간에게 뭔가 유용하게 사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 페로몬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페로몬에 곤충이 서로를 유인하는 구실을 하는 것도 있는데, 만약 인공으로 페로몬 제조가 가능해지면 익충을 불러들이는 데에 쓸 수 있다. 그런데 모기는 그조차 없다. 말 그대로 백해무익한 곤충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하지만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수집된 모기 정보는 상당하다. 신체 구조, 장단점, 생활사, 짝짓기, 새끼 양육, 서식지, 천적 관계 등 대부분 인간을 위한 ‘방제’에 초점을 두고 집중 연구된 것이다.

모기는 대개 물속에서 알→유충→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충으로 자란다. 알이 부화하는 기간은 대체로 1~2일. 숲모기속의 알은 건조한 상태에서도 몇 개월간 버틴다. 알에서 부화한 유충은 물속에서 생활하는데, 네 번에 걸쳐 껍데기를 벗고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 기간은 1~2일 정도. 우화(羽化) 시기가 되면 번데기는 수면에 떠서 구부러진 복부를 펴고 번데기 중앙을 T자형으로 갈라 세상으로 나온다. 환경 조건과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산란에서 성충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16일로 알려져 있다.

온대 지방에서 서식하는 모기의 평균 수명은 5~10일. 대체로 모기의 자연 수명을 10일로 잡을 경우, 암컷 모기는 3회 정도 산란한다. 모기는 20℃ 이상 고온에서 급속히 번식한다. 특히 비가 온 뒤 날씨가 더워지면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데 그 이유는 고온다습한 환경이 모기 알 부화에 좋은 조건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류에 따라 25℃ 이하일 때만 주로 나타나는 모기도 있으며, 날씨가 너무 더우면 물속에서 지내며 더위를 피하는 모기도 있다. 금빛숲모기가 대표적이다. 이 모기는 대체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5월 말~6월 초에 잠시 나타났다가 더위가 물러가는 9월 초~10월에 다시 등장한다.모기는 잠자리와 비교하면 ‘앞 못보는 장님’과 같을 정도로 시력이 나쁘다. 가축이나 인간 등 숙주를 찾아 나설 때 모기의 시정 거리는 1~2m가 고작이다. 잠자리의 시력은 뛰어나다. 한 실험 결과에 의하면 37m 가량 떨어진 곳의 움직임도 간파할 수 있다. 대신 모기는 청각과 후각이 발달해 있다. 청각은 주로 짝짓기하는 데 쓰인다. 후각은 동물이 발산하는 탄산가스·체취·체온 등 숙주의 위치를 탐지할 때 쓴다.
살충제 남용, 모기 내성 키우고 환경 파괴 우려

모기의 가장 특징적인 행동은 짝짓기 습성에서 찾을 수 있다. 짝짓기는 숫모기들이 모여 허공에서 군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때 숫모기가 내는 날갯짓 소리가 암컷에게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모기들의 날갯짓은 종마다 다른 음파장을 갖기 때문에 결코 다른 종과 헷갈리는 법이 없다.

날갯짓 소리로 짝짓기를 하는 모기의 습성은 모기 실험실에서 때때로 우스운 광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모기의 생식 행동을 연구한 루이스 로스는 매우 오래 전 황열병모기 수컷을 이용해 교미 행동을 연구했다. 황열병 모기 수컷은 다른 모기와 달리 상당한 범위의 주파수에 반응한다. 루이스 로스는, 망을 덮은 우리 바깥에서 소리굽쇠를 쳐 황열병모기 수컷의 성욕을 ‘자극’했다. 자극된 수컷은 즉각 반응해 소리굽쇠 쪽으로 날아가더니 망을 잡고 교미하려 했다. 말하자면 이 황열병모기는 ‘벽에다 대고’ 교미를 시도한 것이다. 짝짓기 자세는 모기마다 다르다. 황열병 모기의 경우 수컷이 암컷 밑으로 들어가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말라리아모기는 생식기관을 서로 붙인 채 등을 돌리고 교미한다. 루이스 로스에 따르면, 이같은 자세는 왕바퀴벌레 등 상당히 많은 곤충이 즐겨 이용하는 자세이다.

지금까지 모기를 퇴치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화학적 방제에 치중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천적을 이용해 모기를 퇴치하려는 연구, 즉 생물학적 방제법이 괄목할 성과를 얻고 있다. 고신대 이동규 교수는 미꾸라지를 이용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는데, 미꾸라지가 모기 방제에 특별한 효과를 거둔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는 하루 1천~2천 마리씩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를 잡아먹는다. 이교수의 연구 결과는 국제 학회에 공식 보고되어 큰 관심을 모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모기 방제를 위해 특별히 모기 천적의 명단을 작성해놓고 있다. 이 명단에서 1위로 기록된 갬부지아(일명 ‘모기고기’)의 경우, 하루 평균 3백50마리씩 모기를 잡아먹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미꾸라지는 이에 비해 최소 3배 이상 많이 잡아먹는다. 이교수가 개발한 ‘미꾸라지 방제’는 모기의 이상 번식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던 전남 신안군과 전남 여수(묘도) 등 국내 일부 지역에서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간은 모기와의 전쟁을 위해 가정에서 흔히 쓰는 모기약에서부터 모기의 접근을 막는 ‘기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학 무기’를 개발해 실전에 배치해 왔다. 살충제가 대표적이다. 이 중 독성이 강한 DDT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운다’는 옛 속담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쳐 사용이 금지되었다.

최근에는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다른 생물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모기 유충만 죽이는 이른바 ‘선택적 살충제’가 개발되어 실용화되었다. B. t·테모포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살충제조차 모기와의 전쟁에서 인간의 완전 승리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자칫하면 모기로 하여금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기르게 하여 전투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미국은 이같은 위험성을 고려해 이미 1995년부터 국가 예산을 투입해 살충제 저항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모기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대다수 ‘선량한’ 모기가 자연의 섭리에 맞게 살 수 있도록 생태계를 유지해 주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늘날 빈번하게 목격되는 모기의 이상 번식 현상은 인간이 저질러온 자연 파괴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엘니뇨와 지구 온난화는 모기 증가의 주범으로 꼽힌다.

수질 오염도 모기 증가를 부르는 원인이 된다. 송사리·왜몰개·미꾸라지 등 모기(또는 모기 유충)를 잡아먹고 사는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더러워지면, 그만큼 천적이 사라져 모기가 늘어나는 것이다. 모기 퇴치 전선에서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이처럼 ‘후방’이 무너지면 모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고려곤충연구소 김정환 소장은 모기 퇴치에 앞서 두 가지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모기와 어느 정도 타협할 것, 다른 하나는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 제안은 ‘모기라면 무조건 씨를 말리고 보자’는 기존 처방과는 다른 입장이다. 모기가 서식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유지해주는 일이 모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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