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실세들의 겨울 감옥살이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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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의원·대통령 측근들의 ‘감옥에서 겨울나기’/ 1평 남짓 독거방에서 추위·수면 장애·회한과 전쟁
금배지가 떨어진 자리에 수감 번호가 붙었다. 4362번 정대철, 4382번 김영일, 4398번 박주선, 4367번 박주천, 3388번 이훈평, 4393번 박명환. 1월10일 오전 2시부터 비리 의원 6명이 연달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손길승 SK 회장도 수감 번호 4236번을 받았다. 서울구치소의 한 교도관은 “구치소가 이보다 더 화려한 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전두환·노태우 씨 등 전직 대통령과 김현철·김홍걸 씨 등 소통령이 거쳐 갔지만, 서울구치소가 문을 연 이래 국회의원 6명이 한꺼번에 구속된 적은 없었다. 가히 서울구치소에서 국회 상임위원회를 열 만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회의원 6명과 손길승 회장은 일반 수감자와 똑같은 입감 절차를 밟았다. 먼저 신분을 확인하고 목욕을 한 뒤 건강 진단을 받는다. 목욕은 사회에서 낀 묵은 때를 벗고 건강하게 새 생활을 하라는 통과 의례이다. 귀중품은 특별 영치품으로 영치한다. 본인이 확인하면 무인을 받아 봉인해 금고나 이중 잠금 장치가 된 캐비닛에 보관했다가 출소할 때 돌려준다.

손목 시계도 특별 영치품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손목 시계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수감자들이 시간을 정하고 외부와 연계해 도주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는 웃지 못할 걱정 때문이었다. 현재는 손목 시계 착용이 허용되는데, 단 조건이 있다. 외부에서 차고 온 손목 시계 대신 구치소에 마련된 손목 시계를 자비로 사야 한다. 수감자 옷으로는 옅은 갈색 미결수복이 지급된다. 기결수는 청색 겹옷이다. 자비로 구치소에 구비된 옷(이를 ‘자변의’라 한다)을 추가로 살 수도 있다.

국회의원 6명과 손길승 회장은 전부 독거방에 수감되었다. 서울구치소 보안과 관계자는 “별도 사동에 각각 수감했다”라고 말했다. 서울구치소에는 독거방과 혼거방이 있는데, 독거방은 1평 남짓이고, 혼거방은 2.17평이다. 혼거방에는 4∼5명이 수감된다. 구치소측은 죄명과 누범을 고려해 방을 배정한다. 국회의원처럼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 VIP급 수감자는 대부분 독거방에 수감된다.
국회의원 외에도 서울구치소에는 VIP급 수감자가 많다. 동교동 구파와 신파의 양대 산맥인 권노갑씨(1986번)와 박지원씨(1617번), 노무현 대통령의 왼팔 안희정씨(1704번), 대통령의 영원한 집사 최도술씨(1954번), 이회창 총재의 측근 중의 측근 서정우 변호사(2700번). 이들도 모두 독거방에 있다.

측근 비리 수사로 구속된 문병욱·강금원·김성래 씨는 영등포구치소 독거방에 수감되어 있다.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된 이들은 서울구치소 수감자들에 비해 고생이 갑절이다. 서울구치소에는 방마다 난방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만, 1965년에 문을 연 영등포구치소는 난방 시설이 없고 독거방도 0.78평이어서 서울구치소 독거방에 비해 작다.

하루 일과는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손수 방 청소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침구는 매트리스와 담요다. 담요는 3장까지 지급된다. 일반수들은 담요 3장으로도 한겨울을 나지만, 국회의원들처럼 호강하며 산 사람들은 바뀐 환경 탓으로 추위를 타기 마련이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본인이 자비로 담요를 더 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춥다고 힘들어 하면 이불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보온 물통을 지급해 안고 자게 한다. 침구 정리가 끝나면 방 뒤쪽에 화장실과 함께 있는 세면 시설에서 세면을 한다. 식사는 1식 3찬이다. 밥은 쌀과 보리가 8 대 2로 섞인 혼식이고, 국이 포함되면 반찬은 두 가지가 지급된다. 영치금으로 고추장이나 김·육포·소시지·훈제 닭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식사가 끝나면 출정이나 접견을 하고 오전에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접견은 보통 30분 안팎인데, 국회의원이나 변호사가 면회를 오면 장소 변경 접견을 한다.
국회의원 6명은 당분간 출정이 잦을 전망이다.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으로 불려가야 하고, 재판이 시작되면 재판정에 나가야 한다. 지난해 12월14일 수감된 안희정씨도 그랬다. 안씨는 1월 초까지 대검에 불려다녔고, 지난해 3월 기소된 나라종금 사건으로 법정에도 나가고 있다. 그는 이번에 기소된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도 받기 시작했다. 접견과 출정 외에 안씨는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친다’는 삼국지 대목처럼, 갇힌 그가 이인제 의원을 잡겠다고 벼른다는 옥중출마설이 한때 퍼졌다. 지난 1월6일 열린우리당 논산지구당 관계자들이 안씨를 면회한 뒤였다. 하지만 기자가 다시 확인한 결과 안희정씨는 옥중 출마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안씨의 한 지인은 “잘못된 소문이다. 옥중출마설은 안씨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겠지만, 그 방법이 옥중 출마는 아니라는 것이다. 안씨의 또 다른 측근은 많이 고민하고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대통령의 영원한 집사 최도술씨는 최근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의 측근 비리 발표에서 드러났듯이 그는 노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 ‘대통령이 지방자치선거 잔금을 선봉술에게 건네라고 했다’고 고백한 당사자가 바로 최도술씨다. 최씨의 수감 생활은 ‘나홀로형’이다. 부산의 최씨 집도 식구들이 잠적해 폐가나 다름없다고 한다. 최씨는 김영진 변호사와 접견하며 특검 수사에 대비하고 있다.

반면 강금원씨 수감 생활은 ‘의리의 돌쇠형’이다. 강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모든 혐의가 자신에게 있다고 진술해 검사를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다. 1월8일 첫 재판에서도 그는 “회사 대표인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 부하 직원들에게 잘못이 없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부인과 비서실장 외에는 외부인 접견을 일절 거절하고 있다. 사식이나 영양제를 넣어주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강금원씨에 대해 그의 부인은 “본인이 살아온 대로 그냥 혼자 견디겠다고 한다”라고 근황을 전했다.

서정우 변호사와 김성래씨는 수감 중에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실력 있는 법률가로 정평이 난 서변호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김성래씨 역시 이제는 스스로 변호사 수준이 되었다. 재판정에서 그녀는 직접 증인을 다그쳐 누가 피고인이고 누가 판사인지 헷갈리게 할 때가 많다. 김씨는 취침 시간 후에도 사건 기록을 꼼꼼히 보며 매번 재판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책을 읽고 공판을 준비하는 시간 외에 미결수들은 7∼8시간 정도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다. 독거방에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는데, 채널 선택권은 없다. 오후 5시면 구치소는 올스톱 상태에 들어간다. 수감자들의 이동이 중지되고 ‘폐방’ 점검이 시작된다. 이어 저녁 식사를 하고 밤 9시에 잠자리에 든다.
이미 구속된 권력층들은 적응이 되었겠지만, 이번에 수감된 국회의원 6명에게 닥친 첫 시련은 꺼지지 않는 전등불이다. 보안상 24시간 전등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신입 수감자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잠을 잔다.

이들 중 일부는 김홍업씨처럼 수감 생활을 견뎌내지 못할 수도 있다. 지난해 징역 2년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홍업씨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지난해 3월 형집행정지를 받았고, 3개월 단위로 계속 연장해 현재 집과 병원을 오간다. 홍업씨에 대해 특혜 시비가 일기도 하지만, 실제 ‘범털’ 가운데 일부는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서울구치소의 전직 교도관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 수 있겠지만, 1평 남짓한 공간에 갇힌 것만으로 충격을 받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일반 재소자 못지 않게 잘 적응해 교도관들 사이에 지금도 화제가 되는 권력자도 있었다. 1995년 5·18 사건으로 구속된 장세동씨다.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침상을 ‘각지게’ 정리하고 손수 방 청소를 하는 등 군대에서처럼 수감 생활을 해 교도관들을 놀라게 했다.

비리 의원, 대통령 측근, 재벌 회장 등 십오 척 담장 안에 갇힌 끈 떨어진 권력 실세들. 김홍업씨처럼 마음의 병을 얻을지, 아니면 장세동씨처럼 버텨낼지, 그들의 긴 겨울 나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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