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중위 의문사 특조단 수사 문제점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9.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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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인권단체, 김 훈 중위 의문사 국방부 특별조사단에 깊은 불신
2월24일은 판문점 경비소대장 김 훈 중위가 의문사한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다. 국민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이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출범한 국방부 특별조사단(특조단·단장 양인목 중장)의 활동이 80일을 넘겼지만 아직까지 국방부측은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9일 청와대와 국방부장관 특명으로 설치된 특조단은 당초 국민에게 약속했던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 원칙을 사실상 거두어들인 채 그동안 군 수사요원들만으로 수사를 진행하다가 현재 사건을 종결하기 위한 마무리 순서를 밟고 있다.

특조단은 공식적으로는 이 사건에 대해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의 수사 진행 행태와 내부 기류를 들여다보면 일찌감치 1· 2차 수사팀이 내렸던 ‘자살’ 결론을 고수한 채 국민에게 의심을 덜 받을 방안을 찾기 위해 골몰해 왔음이 감지된다. 이같은 사실은 수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도 전인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국방부 일각에서 일부 언론에 자살 쪽으로 결론을 흘린 데서부터 드러났다. 1월 들어서는 유족을 수사 과정에 참여시키겠다던 약속을 슬그머니 거두어들이고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약속한 현장 총기 시험(지문 및 화약 반응)을 사실상 취소했다. 일부 언론을 상대로 한 수사 내용 흘리기도 계속했다.

물론 양인목 특조단장은 특조단 설치 이후 언론에 나온 ‘자살 방향’ 보도 내용에 대해 모두 ‘소설’ 또는 ‘추측 보도’라면서 언론 보도가 특조단 공식 입장과는 상관없음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취재한 결과 특조단 수뇌부가 1월부터 국회 국방위원들을 개별 방문해 뚜렷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김중위가 자살한 것 같다는 식으로 ‘설득 작업’을 펴고 다녔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곧 국민에게 약속했던 백지 상태에서의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가 빈말이었음을 반증한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민간 수사 전문가 등 자문위원 10여 명을 특조단에 파견했다가 1월15일 전격 철수하고 특조단 해체를 주장한 것도 바로 이같은 흐름 때문이었다. 김 훈 중위 의문사를 원점에서부터 재조사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천주교인권위원회는 현재 진행되는 특조단 수사가 ‘국민 기만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조단이 처음부터 자살로 결론을 굳혀 놓고 일부 언론을 상대로 자살설을 번갈아 흘리면서 여론을 호도해 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특조단이 어떤 수사 결론을 발표할지라도 국민에게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은 군 의문사 유족 전체가 특조단을 불신토록 만들고 있다. 당초 국방부장관은 특조단으로 하여금 김 훈 중위 의문사뿐 아니라 80년대 이후 군대에서 발생한 모든 의문사를 재조사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특조단은 지난 2월 초 ‘80년대 이후 발생한 군 의문사 사건을 접수한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를 거부하고 특조단 해체를 주장했다. 80년대 이후 발생한 군 의문사를 해결하라고 주장하며 국회 앞에서 1백20일째 농성하고 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회장 배은심)는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으로 볼 때 특조단을 더 이상 의문사 수사 주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아울러 유가협은 김 훈 중위 사건을 포함한 군 의문사 전체에 대해 공정한 재조사를 보장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조단을 탈퇴한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김 훈 중위 유족과 함께 김중위 의문사 진상 규명 작업을 따로 진행하고, 군 의문사 사건을 다룰 공정한 수사 기구를 구성하라고 촉구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2월9일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군 의문사 유족과 각 시민·인권 단체를 상대로 ‘군대내 의문사 사건 졸속 수사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인권위측은 특조단이 지금까지 벌여 온 김 훈 중위 사망과 관련한 수사가 얼마나 국민을 기만했는지를 설명하고, 최근 천주교인권위원회에 접수된 군 의문사 사건 74건을 처리하기 위한 공정한 수사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자 추모 않는 천주교, 김중위 추모 미사

천주교인권위원장인 김형태 변호사는 “특조단이 스스로 약속한 수사 절차의 정당성마저 보장하지 않는 태도를 보면서 그동안 인권위가 제기해온 타살 의혹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라면서, 이런 상태에서는 특조단이 어떤 결론을 발표하더라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권위측은 앞으로 국가 인권위원회가 발족하는 대로 김 훈 중위 사건을 포함한 군 의문사 사건 전체에 대한 재조사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천주교측은 김 훈 중위 사망 1주기인 2월24일 국방부 근처에 있는 서울 용산 삼각지 성당에서 김중위 추모 미사를 올렸다. 자살자에 대해서는 추모 미사를 금하는 천주교가 김중위 추모 미사를 강행하는 것은 사실상 특조단의 자살몰이 수사 과정과 결론을 전면 부인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파문이 클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함께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던 국회 국방위원회도 특조단 수사의 절차·과정·내용에 대해 전면적으로 문제를 삼겠다는 입장이다. 특조단은 수사 내용과 결과를 먼저 국회 국방위에 보고토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 김 훈 중위 사망 사건은 국정조사권 발동을 비롯한 정치권의 공방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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