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앞둔 광주에 ‘조문 파동’
  • 광주·김경호 주재기자 ()
  • 승인 199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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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 윤기남씨 장례식 후 구속·소환 잇달아…공안당국·재야단체 사이 긴장 팽배
28년 간의 옥살이에도 불구하고 끝내 전향을 거부하다 위암으로 숨진 비전향 장기복역수 윤기남씨의 장례식을 둘러싸고 공안 당국과 광주 재야 세력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애국투사 고 윤기남 선생 통일민족장’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이 장례식 파문은, 민족 분단의 상처가 ‘현재 진행형’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25년 전남 해남군 현산면에서 태어나 70세로 세상을 떠난 윤기남씨에 대한 평가는, 그의 남다른 일생 때문에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48년 노동당 입당, 49년 전남 보성지구당 부책, 50년 전남도당 조직부 지도원 및 광주지구당책, 53년 전남도당 남부지구(장흥군 유치면) 수습책의 길을 걸어오면서 조계산과 모후산, 백운산, 지리산 일대에서 ‘공비 활동’을 한 윤기남씨는 53년 목포에 잠입하다 체포되어 이듬해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15년으로 감형돼 복역을 시작한 그는 68년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한 후 다시 71년에 ‘지하당 사건’으로 2년, 79년에는 ‘반공법 위반’으로 4년을 더 복역한 뒤에도 ‘사회안전법’에 묶여 청주감호소에서 89년 7월까지 수감 생활을 했다.

그는 다섯 번에 걸친 투옥으로 28년을 감방에서 보냈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다가 북한으로 송환된 이인모씨와 마찬가지로 끝내 전향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숨을 거둔 것이다.

‘고인의 동지’들이 주도…“재야단체 무관”

지난 2월26일 광주 조선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치러진 윤씨의 장례식은 일부 언론이 보도한 내용과 달리 광주 재야단체가 깊이 개입한 것이 아니라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고인의 동지’들이 주도했다. 따라서 한 중앙 일간지가 2월28일자 사설에서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 등 재야 단체와 그 지역 일부 학생들’이 장례를 치렀다고 지적한 대목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광주전남연합측은 “윤기남씨의 장례식과 관련해 어떠한 논의와 결정을 함께 한 바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장례식에 다녀왔다는 한 재야인사는 “너무도 초라한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조문객도 많지 않았다”고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러나 광주지검 공안부는 이 장례식과 관련해 3월12일 ‘옥중 동지’로서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은 기세문씨(60)를 전격 구속하고, 장례위원회 홍보위원장을 맡았던 이경률씨(35·광주전남연합 사무처장)를 3월13일 구속했다. 이씨를 구속한 사유는 장례식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이지만, 재야 쪽에서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던 재야 인사들에게 계속 소환장이 발부되고, 대한상이군경회를 비롯한 국가유공자 단체가 광주 재야단체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무실을 점거해 항의 농성을 벌이는 등 크고 작은 파문이 계속 일고 있다.

이같은 사태에 대해 5월을 앞두고 광주 재야의 힘을 꺾으려는 공안 당국의 의도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광주 재야 힘 꺾으려는 의도”

광주전남연합의 한 관계자는“금년 ‘5월 싸움’에는 광주의 명예가 달려 있다. 5·18 관련 책임자 처벌을 관철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오종렬 의장을 비롯해 이경률 사무처장, 최영신 선전국장, 박연주 교육국장 등 조직 내에서 역량 있는 인사들이 구속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개인 자격으로 장례식에 참석한 것을 매스컴이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하도록 유도한 것은 결국 광주 재야의 조직력을 약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장례식 파문이 5·18항쟁 15주년과 지방자치 선거 등 굵직한 현안을 눈앞에 두고 있는 광주 재야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5·18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 단계로 들어선 시점에서 또 한번의 5월을 맞는 광주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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