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 송병준 땅에 몰려드는 사기꾼들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7.06.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병준 증손·토지 사기단 결탁 ‘땅찾기’ 소송 러시…수만 평 승소 판결 받아
지난호 <시사저널>은 매국노 송병준이 일제에 나라를 판 대가로 전국 각지에 조성한 토지들을 그 후손이 나서서 소송을 벌여 되찾는 과정에서, 한 변호사가 여기에 뛰어든 토지 사기단으로부터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 사건을 정밀 추적한 결과, 사망한 김영모 변호사가 맡았던 소송은 매국노 송병준 땅 찾기 과정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국 각지에서 송병준이 일제 때 조성한 땅을 찾기 위한 소송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토지 사기단이 주연을 맡고, 송병준의 증손자 송돈호씨가 조연을, 그리고 몇몇 사회단체가 특별 출연한 한판의 이권 드라마를 이루고 있다.

우선 한일병탄의 공로로 송병준이 일제로부터 은사 토지로 받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당시 고양군 덕은리 일대) 79만평에 달하는 땅이 토지 사기단의 주요 표적이다. 현재 이 토지는 대부분 국유지로 수용되어 서울시·건설부·국방부가 사용하거나 나대지로 남겨둔 상태이다. 토지 사기단은 바로 이 땅 가운데 상암동 482번지 일대 6만여 평을 찾기로 하고, 송돈호씨와 접촉한 뒤 소송에 들어갔다. 취재진이 입수한 이들의 소송 준비 서류를 보면 편법과 거액 이권 놀음으로 가득차 있다.

먼저 송돈호씨는 지난해 7월22일 이 토지를 임의 사회단체인 한국사회개발원에 기증한다고 기증서를 써주었다. 그 뒤 이 단체는 서울에 있는 한 종합건설회사와 이 땅에 대한 ‘조건부 매매 계약’을 체결한 뒤 4억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 노련한 토지 브로커들이 끼여들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서류상 상암동 송병준 명의의 토지 되찾기 소송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밝혀진 토지 브로커 양 아무개씨는 김영모 변호사가 의문사할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인물로 밝혀져, 현재 경찰로부터 용의자로 지목되어 있다

이들이 노리고 뛰어든 상암동 토지 6만여 평은 시가로 무려 3천6백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 토지를 승소 후 신속히 처분하기 위해 매매 조건을 공시지가(시가의 54%인 평당 3백30만원)로 한다는 계약서를 체결했다. 공시지가만으로도 약 2천억원에 이르는 거액 소송인 셈이다.

그러면 이들의 매국노 유산 찾기 작업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까.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송병준 명의로 남아 있는 상암동 땅 79만평을 최초로 찾아낸 토지 브로커 최 아무개씨를 만났다. 최씨는 95년 송병준의 증손자 송돈호씨로부터 위임장과 인감증명을 받은 뒤 7개월 동안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를 뒤진 끝에 송병준 명의의 상암동 땅 79만평에 대한 토지조사부를 찾아낸 사람이다.

송병준 땅 찾기에 뛰어든 사기꾼 백여 명

그는 이 땅을 둘러싸고 이권 잔치가 벌어진 배경에 대해 “우선 한 장애자단체에 찾아가 기증 동의서를 만들고 변호사를 선임했다. 송돈호씨가 직접 소송을 벌이면 땅이 대부분 상속세로 나가므로 단체를 끌어들인 것이다. 이때 시가가 천억원일 경우 3백억원은 송돈호씨에게 주고, 7백억원 중 4백억원은 기증받는 단체 몫으로, 나머지 3백억원은 나와 변호사 몫으로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서류를 다 만들어 놓으니까 송돈호씨는 내가 찾은 서류가 자기에게도 있다면서 다른 단체와 변호사에게 이 사건을 넘겨버렸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현재 진행되는 상암동 토지에 대한 소송은 자기가 찾아낸, 일제 때 작성된 토지조사부가 유출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에 따르면, 송돈호씨는 토지 브로커들에게 위임장을 써주고 그 대가로 수천만원~ 수억원대에 이르는 착수금을 받는다고 한다. 브로커들은 그 뒤 변호사를 선임하고, 토지 일부를 기증받을 단체로 하여금 송돈호씨를 상대로 ‘위장 소송’을 제기하도록 한다. 이 과정은 송돈호씨와 짜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체가 승소한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소송에 들어가는데, 이때는 송돈호씨가 소송 당사자로 나서는 대신 위장 기증받은 단체가 국가를 상대로 송병준의 땅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진행한다. 물론 승소 후에는 이면 계약에 따라 송돈호씨와 기증 단체, 토지 브로커가 3 대 4 대 3의 비율로 나누어 가지는 조건이다.

이런 방식의 송병준 땅 찾기는 현재 서울 상암동 외에 인천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서울 민사지방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이 소송은 이석형 변호사가 맡고 있다. 이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원고로 나선 사회단체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사건을 수임했는데, 송병준이 일제 때 사정(査正)받은 인천시 북구 산곡동 일대 2만3천여 평이다”라고 밝혔다. 처음에는 충북 충주에 있는 사회단체 숭덕원으로부터 위임받아 소송을 수행했지만, 나중에 송돈호씨가 그 일대 다른 지역 땅까지 찾도록 위임한 단체가 있어 규모가 늘어났다고 한다. 송돈호씨와 관계를 맺고 송병준 땅 찾기에 나선 단체들은 숭덕원 외에도 학교법인 원석학원, 학교법인 영진교육재단, 이차돈 원효 양성사 봉찬회 등 다양하다.

이들 단체는 이미 송돈호씨와 짜고 송씨를 피고로 하는 소송을 벌여 모두 승소한 뒤 국가를 상대로 하는 2차 소송에 들어가 있다. 이 과정에도 토지 브로커들이 끼여 있음은 물론이다. 토지 브로커의 이권 놀음과 관련해 이석형 변호사는 “우리는 사건을 브로커에게 직접 수임한 것이 아니어서 송돈호씨와 기증받은 단체, 토지 브로커들 사이의 이면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송병준 땅 찾기 놀음은 크고 작은 사회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사건을 수임한 김영모 변호사가 토지 브로커들과의 알력 끝에 의문의 죽임을 당했는가 하면 송병준 명의의 땅문서를 매개로 한 각종 사기극이 판치고 있다. 현재 송병준 땅 찾기에 뛰어든 토지 사기꾼은 약 백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서울에 있는 프레스센터 지하 커피숍과 코오롱빌딩 지하 다방을 주요 무대로 삼아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토지 사기단이 말썽을 빚는 것은, 송병준 땅 찾기 소송에 들 비용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승소 후 땅을 즉각 매각할 대상을 물색해 착수금을 받아낸 뒤 잠적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지난해에만 해도 ‘송병준 토지 사기단’ 6명이 이런 사기극을 일삼다 경찰에 구속되었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 특수수사과 양병만 주임은 “송병준 땅 찾기는 후손이 선조의 땅을 사회단체에 기증한다는 좋은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사한 결과 조직적인 사기극으로 밝혀졌다. 토지 사기단 중에서 노련한 팀이 친일파 땅 찾기에 뛰어드는데, 기증받는다는 사회단체 쪽에도 사기꾼이 끼여들어 불순한 동기와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토지 사기단과 송돈호씨는 상속세를 피하려고 자선단체에 기증 동의서를 써주되 이면 계약을 맺는데, 이 과정에는 보통 토지 브로커 10여 명이 개입한다고 한다. 그래서 친일파 후손의 땅 찾기는 ‘조직 사건’ 형태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송병준 사기극 전국으로 번질 것”

소송 기록들을 열람한 결과 송돈호씨는 이미 국가를 상대로 증조부 명의의 땅을 되찾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90년 8월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에 있는 임야 천여 평을 소송으로 되찾았는가 하면, 93년 12월에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일대 대지 천여 평에 대해서도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밖에 경기도 금화군 금란면 갈현리 산 22번지 외 11필지 임야 2백12만평 중 수만 평을 되찾았다는 것이 토지 브로커들의 전언이다.

김영모 변호사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앞으로 송돈호씨와 토지 브로커가 결탁한 이권 놀음이 더욱 큰 사회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변호사가 생전에 송병준 명의의 땅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모아두고 있었는데, 그가 사망한 직후 의문사 현장인 청주의 한 여관방에 토지 사기단이 들이닥쳐 이 서류를 훔쳐 달아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 금정경찰서 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김변호사 사망 현장에 정체 불명의 토지 사기단이 들이닥쳐 송병준 토지 자료를 챙겨서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에 이를 미끼로 한 사기극이 전국 각지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국가가 점유하고 있는 친일파의 매국 대가를 후손과 토지 사기단이 버젓이 되찾아 가도록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다. 광복 후에 매국노의 재산을 국유화해야 한다는 민족적 요구가 거셌지만 이승만 정부가 적산 몰수 대상에서 이 부분을 제외했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 묻힌 송병준의 땅은 오늘날에 와서도 후손과 사기단의 추악한 이권 놀음판으로 변했다.

그 배경에는 정부의 ‘직무 유기’도 작용하고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현재 송병준 명의의 땅은 대부분 국가 기관이 사용하거나 관리하지만, 그동안 등기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민법상 후손이 끼여들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용하 교수 (서울대·사회학)는 “송병준의 매국 대가에 대한 상속 허가는 설사 그 후손이 자선단체와 나눠 쓰겠다고 하더라도 선대의 매국 행위를 사회와 국가가 용인해 주는 꼴이다. 매국 대가를 국가가 환수해 민족 정기를 되찾아야 하지만, 관련 법이 없어 당장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해도 국가가 점유 중인 이완용·송병준 등 매국노 명의의 재산 실태를 파악해 등기 절차를 완료하는 등 이 문제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