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농협, 중국산 마늘 가공해 국산 장아찌로 속여”
  • 전북 순창·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8.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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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身土不二’
농민 조합원들의 이익에 봉사해야 할 농촌 지역 단위 농협 가운데 값싼 수입 농산물을 국산으로 속여 판매하거나 직원들이 농산물 판매 대금을 유용하는 고질적인 비리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직원 인사권을 쥐고 있는 단위 농협 조합장이 직원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비리에 가담할 것을 강요하기도 하는 등 폐해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북 순창 지역에서 농협 직원으로 18년 동안 일한 안기환씨(44)가 <시사저널>에 밝힌 것이다. 그에 따르면 특히 전북 순창농협(조합장 김교근)은 94년 중국산 수입 마늘을 구입해 마늘장아찌로 가공한 뒤 순창 전통 마늘장아찌로 포장해 시중에 유통시킨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썩은 밤도 농협 물품으로 구입하라고 강요”

당시 순창농협 판매 업무를 맡았던 안기환씨는 “94년 4월께 전북 순창농협이 운영하고 있는 고추장·장아찌 가공 공장에 중국산 수입 냉동 깐마늘이 다량으로 쌓여 있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박상호 공장장으로부터, 김교근 조합장이 자신의 친구인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상인으로부터 중국산 마늘 2t을 구입해 1t 가량은 이 지역 순창고추장 제조업체에 싼값에 팔고 나머지 1t으로 마늘장아찌를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폭로했다.

이와 관련해 순창 읍내에서 ‘순창 왕실고추장’을 운영하는 김경순씨(68) 는 “3∼4년 전에 순창농협으로부터 1t 정도를 1㎏당 1천3백50원씩 싸게 샀다. 당시 마늘 시세가 비쌌는데 농협 직원이 운남농협에서 싸게 가져온 것이라고 해서 농협을 믿고 샀다”라고 밝혀 안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전북 순창농협은 현재 순창읍 가남리 농공단지에 있는 ‘순창 고추장 가공 공장’에서 순창 전통 고추장과 마늘장아찌, 도라지장아찌 등 절임류 7∼8가지를 가공·판매하고 있다.

순창농협이 가공해 판매하는 마늘장아찌는 모양이 좋은 깐마늘을 순창 고추장 옹기에서 6개월∼1년 이상 묵혀 선물 세트에 담아 1㎏당 1만1천∼1만2천 원에 팔리고 있으며, 마늘장아찌로만 94년에 5백77만여 원, 95년에 2백51만여 원 매출을 올린 바 있다.
만약 순창농협이 안씨의 주장대로 94년 중국산 마늘로 장아찌를 만들어 판매했다면 ‘신토불이’를 내세우며 국산 농산물 소비를 장려하고 있는 농협이 불법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해 유통시켰다는 점에서 소비자와 국민을 속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 때문인지 94년 중국산 마늘로 장아찌를 만들었다는 안기환씨의 폭로에 대해 순창농협측은 펄쩍 뛰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김교근 조합장(52·전북도의회 의원)은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순창 출신 상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산 마늘을 구매한 적은 없다. 농협에서 수입 농산물로 마늘장아찌를 만들어 판매했다면 농협이 문을 닫아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순창농협 김학수 전무 역시 “96년에 마늘 산지인 전남 무안 지역의 운남농협에서 마늘을 사들여 가공 공장과 ‘왕실고추장’ 등 인근 민속 고추장집에 판매한 적은 있으나 중국산 마늘을 사들인 적은 없다”라고 부인했다.

또 94년 당시 가공 공장 책임자였던 박상호 부장(52·순창농협 유등지소)과 임정희씨(순창전통고추장 제조 기능인) 역시 “94년과 95년에는 무안 운남농협에서 깐마늘을 구매해 장아찌용으로 가공했고, 다른 고추장 집에도 판매했다. 중국에서 수입한 깐마늘을 사용했다는 안씨의 주장은 억지소리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취재한 결과 94∼95년 순창농협이 무안 운남농협에서 마늘을 구매했다는 박상호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96년 이전에는 전북 순창농협과 거래 관계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기자에게 확인해 준 무안 운남농협 구매 담당 박원태씨는 “운남 지역은 장아찌용 마늘이 생산되지도 않고, 깐마늘 공장도 96년에야 준공되었다. 96년 4∼5월께 깐마늘 7t 가량을 순창농협에 공급한 적은 있으나 아주 싼 하등품이었고 마늘장아찌용으로는 부적당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순창농협 역시 94∼95년 무안 운남농협과 거래한 장부 내역을 기자에게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순창농협이 거짓말을 한 셈이다.

따라서 94∼95년 순창농협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중국산 마늘을 구매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기환씨는 이와 관련해 “당시 순창농협의 구매·판매 장부를 조사하면 순창농협의 수입 마늘 구매 상황을 밝혀낼 수 있다. 순창농협이 과거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조합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안씨는 또 “순창농협 조합장과 전무 등은 당시 판매계 직원이던 내게 썩은 밤 4t과 품질이 낮아 찹쌀로 판매할 수조차 없는 4백만원 상당의 찹쌀 을 농협 물품으로 구매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순창농협이 수입 마늘로 장아찌를 만들어 팔았다는 의혹에 대해 순창 지역 주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순창 장터에서 만난 한 주민은 “농협이 그럴 리가 없다. 만약 중국산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국산 장아찌로 팔았다면 순창고추장의 명성이 뭐가 되겠느냐” 라며 손사래를 쳤다.

조합장의 직권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때 자신이 몸 담았던 순창농협의 비리를 폭로한 안기환씨는 96년 순창 복흥농협에서 해직된 뒤부터 지금까지 직장이 없다.

96년 순창군 복흥면 복흥농협에 근무할 때 사료 판매·관리 책임 업무를 맡았던 안씨는 당시 유연주 조합장(현 순창성가정식품 대표이사)이 안씨에게 사료 판매 대금 5백여 만원을 횡령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워 경찰에 고발하는 통에 18년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순창 복흥농협은 사료 담당을 맡은 뒤 재고 조사를 벌여 부족한 사료 대금에 대한 원인 규명을 요구하던 안기환씨를 96년 9월 업무상 공금 횡령으로 고소한 뒤 유연주 조합장 직권으로 대기 발령을 명했고, 일사천리로 이사회를 열어 안씨를 농협에서 몰아냈다.

농협 조합장 횡포 막을 제도 장치 절실

복흥농협은 인근 정읍시에서 발생한 교통 사고 때문에 사고 처리에 열중하던 농협 이사가 해고를 결정하는 인사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한 것처럼 기록하는 등 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했고, 이사들의 인장을 도용하는 등 무리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안씨를 해고했다. 안씨에게는 인사위원회에 참석해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정작 뒤에 사료 판매 대금을 유용한 것으로 밝혀진 정병기씨(당시 사료 운반 트럭 운전기사)는 퇴직금까지 챙겨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안씨는 결국 지난한 법정 투쟁 끝에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지난 2월 대법원에서까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 결백이 입증되었다. 현재 순창 복흥농협(조합장 김성근)은 안씨의 복직을 거부한 채 ‘할 테면 법으로 하라’는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환씨는 “18년 동안 농협 직원으로 성실하게 일했다. 그러나 비리에 가담하지 않은 직원들은 조합장이나 전무의 눈 밖에 나 불이익을 받는 게 지금 농협의 현실이다. 조합장과 전무. 농협 직원들의 배를 채우는 농협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라고 못박았다.

안씨는 특히 93년 농협법이 개정되면서 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갖게 된 농협 조합장들이 직권을 남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고, 인사권을 쥔 조합장의 직권 남용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씨에 따르면, 현행 농협법에 조합장이 직권으로 농협 직원에 대해 대기 발령을 명할 수 있어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비리에 가담하거나 조합장과 전무를 위해 충성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의 농협 합병 장려 정책에 따라 합병된 농협 조합장의 경우 원래 임기 4년에다 2년의 임기를 더 보장받기 때문에 조합 내부에서 조합장이나 전무를 견제할 장치가 부실해진다고 지적했다.

“농협의 업무를 견제·감독해야 할 감사를 회계·재무 제표 하나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조합원들이 주인이 되는 농협이 되려면 조합원들이 농협 사업을 지속적으로 감시·견제할 수 있는 시민 단체가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 안기환씨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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