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어업 분규 종착역은 어디?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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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협정 개정, 최대 외교 현안으로 떠올라… 일본 ‘직선 기선’ 관철할 다양한 전략 구사
제52회 광복절인 8월15일, 일본 시마네(島根) 현 하마다(浜田) 시 법원은 작지만 의미있는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지난 6월10일 직선 기선에 의한 ‘일본 영해 침범’ 혐의로 구속 기소된 대동호 선장 김순기씨(35) 사건에 대해 하세가와 야쓰히로(長谷川恭弘) 판사가 ‘공소권 없음’ 판결을 내리고 김선장을 석방한 것이다. 8월16일 서울 김포공항 2청사에 마중 나온 김선장의 가족과 수협중앙회 관계자들은 그 자리에서 환영 행사를 열었다.

한·일 어업협정 9월말까지 유효

이에 앞서 8월11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후지다(藤田明久) 부검사는 “김선장은 일본 영해에서 외국인은 조업할 수 없다는 ‘외국인 어업 규제법’을 어긴 것이 분명하다”라며 징역 6월에 벌금 1백20만엔을 구형했다. 그러나 하세가와 판사는 광복절 날 열린 선고 공판에서 “외국인 어업 규제법 위반 혐의로 김선장을 기소한 검찰의 공소 내용은 한·일 어업협정에 위배된다. 일본 헌법이 국제 조약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한·일 어업협정은 일본 국내법보다 우선해야 한다”라며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국제 조약이 국내법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관례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미 행정협정(SOFA)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속지주의(屬地主義)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 검찰과 법원이 국내법으로 다스린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지르면 한·미 행정협정에 따라 미군 당국이 범죄자를 인수해 미국법을 적용하게 된다. 이에 대해 한국의 조야는 불평등 조약이라고 비판하지만 한·미 행정협정이 한국 법보다 우선하다는 원칙은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일 어업협정 제1조에는 ‘(한·일 양국 중) 어느 한쪽이 직선 기선을 채택할 때는 상대국과 협의해 결정한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이 직선 기선제를 채택한 신영해법을 제정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이어 올해 1월1일 직선 기선의 좌표를 발표하고 직선 기선에 의한 영해를 선포했다. 지난해 7월 이후 일본은 신영해법 제정 사실을 여러 차례 우리 정부에 통고했다. 그러나 한·일 어업협정에 따라 우리 정부와 직선 기선 문제를 협의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일방적으로 신영해법을 선포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 어선을 잡아들인 것은 명백히 한·일 어업협정을 위반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김순기 선장이 무죄 석방됨으로써 한·일 어업 분규는 한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린 것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이는 후지다 부검사가 1심 판결이 나온 직후 히로시마(廣島) 고법에 항소장을 제출한 데서 확인된다. 국내의 해양·수산 전문가들 역시 “환호 작약할 때가 아니다. 한·일간 바다 분할 싸움은 이제부터다”라며 그리 밝지 않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유리한 판결을 가져다준 현행 한·일 어업협정은 오는 9월 말까지만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하세가와 판사의 판결은 9월 말까지만 유효한 셈이다. 10월 이후 현행 한·일 어업협정이 효력을 상실하면, 일본 법정은 신영해를 침범한 한국 어선에 대해 전부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일본은 10월 이후 확실히 보장되는 실리를 염두에 두고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일본, 독도 문제 빌미로 한국 압박

현행 한·일 어업협정은 한국은 서·남해에 대해 직선 기선을 적용하고, 일본은 전해안에 통상 기선만 적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한국에 유리하다. 어업 관계자들은 “공동규제수역으로 규정된 공해상에서 채취가 금지된 고기를 잡는 등 불법 어로를 하는 경우는 한국 어선들이 일본 어선에 비해 더 많다”라고 솔직히 토로한다. 그러나 한·일 어업협정은 공동규제수역에서 불법 어로를 한 어선에 대해서는 그 어선이 속한 나라가 단속권을 행사한다는 기국주의(旗國主義)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수산 당국은 일본쪽 공동규제수역에서 불법 어로를 한 한국 어선들을 못본 척 눈감아 준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동해에서는 한국 쪽보다는 일본쪽 연안에서 고기잡이가 훨씬 더 잘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한국 어선들은 일본쪽 공동규제수역으로 몰려가 조업해 왔다. 일본으로서는 이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공동규제수역에서의 단속권은 그 바다와 가까이 있는 나라에서 행사하는 연안국주의(沿岸國主義)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은 배타적 경제 수역(EEZ) 선포와 함께 연안국주의를 채택했다. 유엔해양법협약이 발효된 후 일본은 가일층 한·일 어업협정을 연안국주의로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은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독도를 애용했다. 독도 일대의 바다를 ‘잠정 수역’으로 정해,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조업하자는 전략이다. 그동안 일본은 ‘독도는 일본의 영토이지만 울릉도와 가까이 있어 한국측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 들어가니, 독도 일대의 바다는 중간선을 긋지 않는 잠정 수역으로 삼아 두 나라가 공동 관리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독도의 ‘독’자나 잠정 수역의 ‘잠’자만 나와도 온 국민이 일본을 성토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민 정서를 무시할 수 없는 한국 정부로서는 독도 문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취급해 왔다. 그래서 정부는 일본에 한·일 어업협정을 개정하고 싶으면 먼저 한·일간 배타적 경제수역 중간선 문제부터 획정하자고 주장해 왔다. 독도 일대의 바다를 잠정 수역화하지 않고 중간선을 명확하게 그음으로써 독도가 한국 경제수역에 들어오는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한·일 어업협정 개정 요구를 묵살하는 좋은 구실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한·일 어업협정이 만료되는 9월 말까지만 내세울 수 있다.

“일본 공부해야 일본 이긴다”

일본이 새로 선포한 직선 기선 중에는 유엔해양법협약의 규정을 어긴 것이 있다(<시사저널> 제 404호 참조). 그러나 일부 국내 해양법 학자들은 일본이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댈 경우, 일본의 직선 기선은 유엔해양법협약을 어기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우리가 국제해양재판소에 일본이 그은 직선 기선의 불법성을 제소하면 재판 기간만 수십 년이 걸리는데, 꼭 이긴다는 보장 또한 없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패소하면 일본의 직선 기선은 합법성을 부여받게 되므로 함부로 제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로 한·일 어업협정 개정은 양국간 최대 외교 현안이 되고 있다. 김순기 선장 재판은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벌인 전초전인 셈이었다. 한국은 이 전초전에서는 이겼지만 본 시합에서 고전할 것이 뻔하다. 해양법 전문가와 외교 관계자 들은 결국 일본의 직선 기선을 인정하는 쪽으로 한·일어업협정이 개정되리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한국 어선들은 벌써부터 수협중앙회의 지도와 자율 규제로 일본 신영해를 침범하지 않고 있다. 한·일 어업협정이 개정되지 않은 지금도 한국 어선들이 일본의 신영해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재판에서 이겼다 한들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김순기 선장 사건이 던져준 교훈은 적지 않다. 첫째는, 한국도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선장은 바다장어를 잡으려다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나포되었다. 바다장어는 한국 서해안에도 서식하지만 어획량이 변변치 않다. 그렇다면 바다장어 치어를 키워서 방류함으로써 서해안 일대에 새로운 바다장어 어장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바다에 큰 그물을 치고 그 안에 고기를 기르는 ‘바다 목장’을 건설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우익 정치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을 때 분노하고, 일본 판사가 김선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할 때 갈채를 보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냄비처럼 쉬 끓었다가 쉬 식어버리는 감정적 접근으로는 치밀하게 덤벼드는 일본과의 협상에서 이기기 힘들다. 일본을 철저히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김선장 사건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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