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에게 왕따 당한 교도소와 장애인 병원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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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행복재활의원, 전문의 못 구해 문 닫아…
전국 교도소 의무과장도 '공석'
의약 분업 뒤 의사들의 개업이 잇따르는데 정작 의료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에는 의사가 부족하다. 광주시 동구 학동에 자리 잡은 장애인 재활 치료 전문 의료기관인 행복재활의원은 두 달째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지난 8월31일 폐원했다. 광주교도소는 귀찮게 하는 재소자가 많다는 이유로 의사들이 근무를 꺼리는 바람에 5개월 동안이나 '의료 공백'을 겪었다. 전국 각지 교도소마다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실정이다.




광주 유일의 장애인 재활 전문 병원인 행복재활의원이 폐원한 것은 장애인들의 분노를 샀다. 사회복지법인 동산보육회(이사장 정숙현)가 운영하는 행복재활의원은 11년 동안 아홉 번이나 원장이 바뀔 정도로 의사 기근에 시달렸다. 일반 병원보다 급료가 낮은 데다 기독교공동체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어서 종교가 다른 의사들이 기피한 탓이다.


하루 평균 50명 안팎의 재가 장애인이 다녀가는 이 병원은, 물리 치료와 심리·언어 치료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통합 치료 체제를 갖추고 있다. 보장구 제작실까지 운영해 장애인들에게는 내집같이 편안한 의료기관이다.


그러나 행복재활의원의 11년 '행복'은 올해 여름부터 여지없이 깨지기 시작했다. 1년 2개월 동안 원장을 맡았던 재활전문의 윤 아무개씨가 6월 말 다른 직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병원측이 후임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오겠다는 재활의학 전문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복재활의원 정윤영 원장은 "급여가 연봉 6천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의사협회 신문에 월급도 조정이 가능하다는 광고를 내고 전국의 병원을 다 알아봤지만 문의 전화가 없었다. 병원 폐원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재활의학 전문의로부터 왜 병원 폐원을 의사 탓으로 돌리느냐는 항의 전화만 받았다"라고 말했다.


병원이 문을 닫게 되자 20명이나 되는 간호사와 재활치료사들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장애인으로 가득했던 진료실·치료실과 보호장구들은 주인을 잃고 방치되어 있다.




물리치료사 염성일씨(33)는 "전국의 의대 재활의학과에서 의사가 배출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처럼 꼭 필요한 곳에서는 의사를 모셔오기 힘들다. 장애인들로서는 그만큼 싸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셈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행복재활의원을 이용해온 환자들이 일반 개인 병원을 찾을 경우 1.5∼2배 더 비싼 진료비를 물어야 한다. 장애인을 둔 가족으로서는 의료비에다 교통비까지 이중 부담을 지게 되는 셈이다.


폐원 뒤에도 다시 문을 열기만을 바라며 다른 곳에 취직하지 않고 있다는 심리치료사 조은아씨(32)는 "많은 직원들이 병원이 문을 다시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 5∼6년 넘도록 꾸준히 돌보면서 친숙해진 환자가 대부분이어서 다른 병원에서는 적절한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광주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병원을 열어 달라는 장애인 가족들의 요청들이 빗발치고 있다. '장애인을 둔 엄마'라고 밝힌 조순덕씨는 지난 9월4일 '시장에 바란다'라는 게시판에 '저희 아이들은 하루 한시가 급합니다. 지금 당장 치료를 못 받으면 처지고 맙니다. 하루바삐 재활병원을 열 수 있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절박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전남 장성에서 광주를 오가며 지체장애아 김유림양(4)을 간호하는 40대 어머니는 "개인병원에 다니려면 진료비도 비싸지만 아이를 업고 운동 치료 따로, 심리 치료 따로 받기 위해 일일이 옮겨 다녀야 한다. 어려운 형편인 아이들을 위해 하루빨리 재활의원이 다시 문을 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사 출신 재소자에게 환자 맡기기도




교도소들도 의사를 구하느라 백방으로 뛰어다니기는 마찬가지이다. 광주교도소(소장 김주환)는 5개월 동안 의사 없이 버텨 오다 결국 자원자 한 사람을 어렵게 구해 지난 9월6일 공채 면접 시험을 치렀다.


광주교도소의 의사 정원은 의무과장과 의무관 2명. 그러나 의무관은 지난해 광주소년원(고룡직업전문학교) 의무과장으로, 의무과장은 올해 3월 소년분류심사원 의무과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3천명에 이르는 재소자들이 아프지 않기만을 비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광주교도소측은 평일에는 광주소년분류심사원과 광주소년원의 의사를 불러 급한 불을 껐지만, 이들이 퇴근하고 없는 주말과 야간에는 의사 출신인 재소자에게 재소자를 병원에 보내야 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맡겼다. 영화에 나오는 포로수용소를 방불케 했던 것이다.


교도소 의무과장은 국가공무원 4급 서기관으로 일반 공무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되고, 국가공무원 결격 사유가 없다면 바로 채용될 수 있다. 그런데도 의사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교도소 근무를 기피하는 이유가 있다. 불만을 가진 재소자들이 꾀병을 일삼거나 심지어 '제대로 처방해 주지 않으면 직무 유기다'라며 협박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시달리기 때문에 의사가 일할 수 있는 직장 가운데 '3D 업종'으로 꼽힌다.


의사 기근은 교도소마다 공통 현상이다. 현재 전국 7개 교도소 의무과장 자리가 비어 있다. 재소자들의 의료 전문 교도소인 진주교도소조차 내과 과장 자리가 6개월째 공석이고, 마산교도소도 의무과장 자리가 두 달 넘게 비어 있다. 마산교도소 관계자는 "의무과장 월급이 시 보건소장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누가 오겠느냐. 개업하면 환자 1명당 2만원을 벌 수 있다는데 겨우 월급 3백만원 받는 의무과장은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공중보건의를 일선 교도소에 배치하는 방법을 모색하지만, 이 또한 일반 시·군에 위치한 교도소에 해당할 뿐 특별시나 광역시와는 무관하다. 현행 법은 의사를 비교적 구하기 쉬운 대도시에는 공중보건의를 배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사들은 자꾸 몸값을 올리고 싶어하고, 그럴수록 약자들의 진료권은 점점 보호받기 힘들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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