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잇는 ‘뜨거운 핏줄’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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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입양 가족의 ‘생활의 발견’ 체험기/“기쁨·보람으로 새 삶”
서울 홍제동에 사는 전선익씨(44)와 아내 유복례씨(44)에게 2001년 9월5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다. 입양한 아들 종헌이가 집에 처음 온 날이기 때문이다.





1994년 12월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결혼한 전씨 부부는 불임으로 마음 고생을 했다. ‘아기 소식’이 없자 전씨 부부는 2000년 12월 시험관 아기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임신에 성공했다. 그러나 임신 초기에 치매로 와병하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유씨가 장례 때문에 무리하는 바람에 그만 유산하고 말았다. 전씨 부부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입양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 것이 이때쯤이다. 이들 부부는 반년 만에 입양을 결심했다.



2001년 7월 전씨 부부가 입양을 신청하자 한 달 뒤 종헌이가 집으로 왔다. 전씨 부부는 11월1일 종헌이의 백일 날에 시루떡을 해서 제일 먼저 입양기관에 가져다 주었다. 유씨는 “주변에 상담할 수 있는 입양 가정이 있었다면 더 빨리 결심했을 것이다. 입양기관이 너무 고마웠다”라고 말했다.



아들 선호 줄었지만, 장애아 입양은 꺼려



지난해 국내 입양된 아이는 1천7백70명이다. 남자 아이 7백43명, 여자 아이 1천27명이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았다. 입양 가정의 90%는 전씨처럼 불임 가정이었다. 1990년대 들면서 딸에 대한 입양 선호도와 아들에 대한 입양 선호도가 역전했다. 아들을 입양해 대를 잇겠다는 의식이 줄어든 탓이다. 1999년 11월 공개 입양을 지향하는 양부모들이 만든 자조 모임 한국입양홍보회(www.mpak.co.kr) 한연희 회장(45)은 “딸을 택하는 데는 양면성이 있다”라고 말한다.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원하는 풍조가 퇴색한 증거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딸은 시집을 가서 다른 집안 사람이 되기 때문에 (상속)부담이 없다는 성차별적 요소도 있다는 것이다.
장애아 국내 입양은 매우 드물다. 지난해 국내 입양된 장애아는 14명에 불과하다. 7백43명은 국외로 입양되었다.



성남에 사는 전순걸(40)·신주련(40) 부부는 장애아 아영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신주련씨의 수첩에는 병원 진료 예약 시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아영이가 물리 치료를 받는 날이다. 1997년 말 이 부부는 ‘IMF 고아’가 많다는 뉴스를 듣고 입양을 결심했다. 결혼 전부터 고아원 등에서 봉사 활동에 열심이었던 이들은 1998년 둘째 하영이를, 2000년 3월 셋째 아영이를 입양했다.






처음에는 아영이에게 장애가 있는 줄 몰랐다. 아영이는 집에 온 첫날부터 심상치 않았다. 밤새 자지러지듯 울어 며칠 동안 신씨는 잠 한숨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전씨 부부는 6개월 동안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2000년 10월24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아영이가 선천성 뇌기형으로 평생 언어 장애와 사지 마비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생 장애 판정이라니. 전씨 부부는 차에 앉아 어린 두 딸을 안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아영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영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친지들은 입양을 반대하고 나섰다. 친정 어머니는 곡기를 끊은 채 울면서 파양하라고 설득했다. “나쁘게 표현하면, 아영이는 한번 버려진 아이였다.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난 아이를 아프다고 우리가 포기하면 누가 아영이를 돌보겠는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전씨 부부는 주변 사람들의 끈질긴 파양 압력을 뿌리쳤다.
아영이를 입양하기로 완전히 결심하고 대전에 살던 전씨 부부는 치료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에 지난해 12월 성남으로 이사했다. 대전에서는 마땅히 치료할 병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직장도 옮겼다.



친지들의 반응도 눈에 띄게 변해갔다. 하영이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알고 집에 와서는 아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현관에서 돌아섰던 시어머니는 20여일 뒤 하영이 교육보험 증서를 보내왔다. 친정 어머니는 다달이 받던 용돈을 마다하고 오히려 매달 5만원씩을 꼬박꼬박 부쳐온다(정부는 장애 입양아에 한해서 올해부터 한달 양육비 50만원, 1년 의료비 1백2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입양은 100% 기쁨’이라며 입양을 권하는 신씨는 이제는 제법 머리를 가눈다고 ‘딸자랑’을 하며 아영이와 눈을 맞춘다. 아영이가 해맑게 웃는다. 방안이 다 환해진다.



입양기관에서는 아이가 3개월 지나면 ‘늙었다’고 말한다. 입양기관을 찾는 부모들이 태어난 지 3개월만 지나도 입양을 꺼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홀트아동복지회가 국내 입양을 알선한 어린이 6백17명 중에서 3개월 이상인 아이는 겨우 11명이었다.






양부모들은 특히 갓난아기 때부터 시설에서 자란 2∼3세 이상 ‘연장 어린이’는 입양하기를 꺼린다. 아이가 새 가정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영선씨(43) 가족은 연장아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최씨는 1999년 12월 ‘미혼모의 집’을 운영하는 수녀의 소개로 생후 1개월 된 대철이를 입양했다. ‘이쁜짓만 골라하는 아들’ 대철이를 키우면서 입양의 기쁨을 맛본 조씨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 2001년 2월 네살짜리 대현이를 입양했다. 대철이와 누나 사이에 7년 터울이 져서 대철이보다 나이 많은 아이를 데려오기로 마음을 굳혔다. 미숙아로 태어난 대현이는 해외 입양이 결정되었다가 뇌의 기형이 발견되어 입양이 취소된 채 중증 장애아 보호시설에서 자랐다.



초기 허니문 기간(입양아와 양부모가 만난 지 얼마 안되어 서로 탐색하는 기간)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연장아 입양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보호 시설에서 1년 이상 자란 아이는 애정 결핍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시설병’을 앓는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식탐’. 대현이는 처음 1년 동안은 음식이 많이 있어도 항상 여분을 주머니에 숨겼다. 처음에는 김칫국물에 말아 밥 두 공기를 게눈 감추듯 먹었다. “우리 부모 때나 김칫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지 우리 때도 그렇게 밥을 먹지는 않았는데…. 너무 안쓰러웠다.” 유치원에 들어간 대현이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항상 “다음에 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보호 시설에서 그곳에 다녀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마음 속 깊이 새겼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은 늘 낯선 사람을 만나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낯가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조금만 잘해주면 아무나 보고 “엄마” “아빠” 하며 달라붙는다. 대현이도 한동안 그랬다.



시설에서 생활했던 연장 어린이는 입양 후 ‘양부모가 정말 나를 받아줄까’ 하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에 문제 행동을 일으켜 양부모를 시험한다. 대현이도 입양 초기에는 말썽을 많이 피웠지만 1년 정도가 지나면서 식탐도 많이 사라지고 가정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조씨는 “대현이가 완전하게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비온 뒤 땅이 더 굳는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입양 가족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지원은 미미한 상태다. 현재 양자로 입적된 입양아들은 중고등학교 수업료를 면제받는 정도의 지원을 받고 있다. 오히려 양부모는 ‘입양 알선료’라는 명목으로 2백만원 정도를 입양기관에 지불해야 한다. 입양기관은 정부의 지원이 태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입양 알선료를 받아 인건비·양육비에 보탠다. 자칫 아이를 돈 주고 산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사회가 부담해야 할 입양 어린이 양육비 부담을 양부모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입양 수수료 문제라도 먼저 해결하기 위해 3년째 예산 신청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예산 편성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정의 보살핌이 필요한 요보호 어린이(버려진 아이, 미혼모의 자녀 등)는 1만2천명에 달했다. 전 해에 비해 1천5백명 정도 급증했다. 입양이 활성화하지 않는 한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보호 시설로 향해야 한다.





정부 지원 소극적…“수수료 부담이라도 덜어주면”



또 아직까지 국내 입양보다 국외 입양이 더 많다. 지난해 외국에 입양한 아이는 2천4백36명. 해외 입양에 관해 국제적 비난 여론이 일자 정부와 입양기관은 ‘숫자’를 조절하고 있다. 한 입양기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도 전 해보다 해외 입양을 줄이라고 지침을 내려 보낸다. 연말에는 수치 스트레스 때문에 해외 입양을 다음해로 늦추어 수치를 조절한다”라고 말했다. 미혼 부부 자녀만 해외 입양을 보내는 것도 일종의 조절책이다. 버려진 아이와 기혼 부부 자녀는 외국 입양을 가지 못한다.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회장은 “정부는 체면 때문에 해외 입양 숫자를 줄이는 것에만 신경 쓸 뿐이다. 외국에 어린이를 보내지 않으려면 실질적으로 국내 입양을 늘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회장은 “아이들은 가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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