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늘리는 엉성한 검시제도
  • 대구·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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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시 권한 4분화해 전문성 없어…현장 검증에 법의학자 참여해야



<사건 1>:산골짜기 외딴집에서 50대 이 아무개씨가 온몸이 피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문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부서져 있었다. 자연사나 병사라고는 볼 수 없는 타살 흔적이 명백했다. 하지만 경찰은 병사로 처리했다.
<사건 2>:50대 중년 남자가 숨졌다. 가슴에는 칼이 꽃혀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던 검시관은 피해자의 옷에서 0.8cm의 각질을 발견했다. 정밀 검사 결과 각질에서 지문이 나왔다.


<사건 1>은 2001년 2월에 일어난 산골 소녀 영자양 아버지 피살 사건이다. 병사로 처리했던 경찰은 뒤늦게 수사에 나서 한달 후에 범인 양 아무개씨를 검거했다. 반면 <사건 2>는 미국 법의학자 노용면 박사가 직접 경험한 사례다. 지문 채취로 반나절 만에 범인이 검거되었다. 법의학이 범죄 해결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 발굴도 경찰은 반나절 만에 유골 4구를 발굴했다. 반면 법의학팀은 한 구를 발굴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개구리 소년 발굴 현장 사진을 받아본 헬렌 조 교수는 “발굴 현장에서 너무나 많은 정보를 손실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한국의 검시제도를 두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재 국내 검시제도는 권한이 4분화해 있다. 검시에 대한 법률상 책임은 검사가, 검시는 경찰관이, 시체 검안·부검은 의사가,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책임은 판사가 맡고 있다. 반면에 미국이나 영국은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법의관(medical examiner)·검시관(coroner) 제도를 두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법의관이나 검시관만이 사망진단서를 발급할수 있다(사인이 명확할 때는 일반 의사도 가능하다). 범죄가 발생하면 법의관이나 검시관이 자동으로 초기 수사부터 관여한다.


국내 법의학자들은 검시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의문사를 줄이는 지름길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경북대 법의학교실 채종민 교수는 “당장에 외국처럼 될 수는 없다. 의료법이나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서라도 법의학자가 직접 현장 검시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법의학 관련 인력 양성이 필수다. 그런데 현재 대학에 적을 둔 법의학 교수는 9명이 전부다. 게다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의학 전공자는 해마다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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