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투명 인간’?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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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경력 미심쩍은 문일고 전 교장, 대통령 표창 수상
학교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귀신 얘기 중에는 ‘같이 어울려 놀던 옆자리 짝꿍이 알고 보니 학적부에 이름이 없더라’는 식의 유령 친구 괴담이 유명하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유령 선생 괴담’이 있다. 학교 인사 기록에는 분명히 이름이 있는데, 학생이나 동료 교사가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가공 인물’이 5년 동안 학교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바로 서울 문일고등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이 괴담의 주인공은 문일고등학교 전 교장이자 학교법인 문일학원 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김광태씨(54)다. 20년간 숨겨졌던 비밀이 폭로된 것은 김씨가 지난 11월8일 교육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다. 대통령 표창은 28년 이상 교직에 몸 담은 교원이 퇴임할 때 주는 상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김씨가 자격 요건을 갖추었고 학교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에 수상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김광태 전 교장은 1974년 2월 교직 생활을 시작해 2003년 2월 교장 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되어 있다.

재단 이사장의 장남…서류에만 이름 올라

하지만 김광태씨의 ‘28년 교직 생활’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다. 문일고가 교육청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 문일고 일반사회 과목 교사로 일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당시 문일고에 재직했던 동료 교사나 학생 가운데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같은 기간 문일고 교사로 재직했던 곽 아무개씨는 “김씨가 1995년에 문일고 교장으로 취임한 것은 확실하지만, 그 전에 평교사로 있었던 기억은 없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초반 문일고를 다녔다는 한 졸업생도 “김광태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님은 없었다. 다만 이사장(교장 겸임) 가족이 학교 앞 사택에 살고 아들이 드나든다는 소문만 전해들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당시 졸업 앨범에 김광태씨의 이름은 없었다.

김씨가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된 이면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서울시 교육청은 “수상 하기 위해서는 해당 학교 인사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일고측은 지난 8월13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김광태 전 교장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취재 결과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간사와 위원 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한다. 당시 문일고 인사위원회 회의록에는 정 아무개 교사와 이 아무개 교사의 추천 여부만 심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문일고가 교육청에 제출한 인사위원회 회의록에는 김광태 교장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투명인간 교사’ 사건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이 지난 8월 사립 학교 정부 포상 대상자 명단과 관련 서류를 조회하면서 밝혀낸 것이다. 최순영 의원은 “만약 경력을 조작한 것이라면 큰 문제다. 사립 학교의 인사권이 이사장에게 집중되어 있고 인사 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광태씨의 아버지 김영실씨는 문일고뿐만 아니라 안양대학교와 문일중학교를 거느린 문일학원의 이사장이며 안양대학교 전 총장이었다. 김광태씨의 동생인 김승태씨는 현 안양대학교 총장이다. 김광태 교장이 2003년 돌연 물러나게 된 배경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편, 현 문일고 교장은 “과거 일이라 내막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문일고 행정실 조식승 관리부장은 “김 전 교장은 1980년부터 1985년까지 교사로 분명히 재직했다. 월급도 수령했다”라고 말했다. 왜 졸업 앨범에 그의 사진이 없고, 그를 기억하는 졸업생과 동료 교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당장 이야기하기 곤란하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서울시 교육청 교원정책과 관계자는 “사립 학교의 경우 교원이 실제 근무하는지를 교육청이 파악하기는 힘들다. 일단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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