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매케인 돌풍’ 어디로 불까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
  • 승인 2000.02.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햄프셔 예비선거 승리 발판으로 ‘여론몰이’ 박차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의 든든한 후광, 6천8백만 달러에 이르는 넉넉한 선거 자금, 공화당 지도부의 전폭 지원, 거기에 초호화판 참모진의 아낌없는 지원 사격. 이쯤 되면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는 한마디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만한 필요 충분 조건을 다 갖춘 듯싶다. 실제로 그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이후 모든 여론조사는 자당 경쟁자는 물론 민주당 후보에 비해 그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고 점쳐 왔다. 적어도 이런 인식은 지난 2월1일 뉴햄프셔 주 예비 선거 직전까지도 널리 깔려 있었다.

그처럼 자신만만하던 부시 후보가 지금 잔뜩 울상이다. 온갖 기득권을 누리며 선거에 임한 부시가 모든 면에서 열세이던 존 매케인 후보에게 보기 좋게 나가떨어진 것이다. 매케인 49% 대 부시 31%라는 득표차 앞에서 매케인은 모처럼 활짝 웃었고, 승승장구하던 부시는 기세가 한풀 꺾였다.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매케인측이 그토록 목말라 하던 기부금이 하루 만에 백만 달러 넘게 걷혔고, 전국적으로 자원 봉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1만2천명을 넘어섰을 정도다.

부시 후보는 2월8일 델라웨어 주 예선에서 매케인을 더블 스코어(50% 대 25%) 차로 꺾음으로써 다소 위안을 얻기는 했다. 그러나 고작 대의원 12명을 뽑는 이곳에서 매케인이 아예 선거 운동조차 하지 않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부시가 델라웨어 주 승리를 두고 축하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부시는 대의원 37명이 걸려 있는 2월1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예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판이다. 종전 같으면 보수 아성이라 할 이곳은 부시가 안심할 지역이었지만, 현재의 판세는 꼭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 <타임> 최근호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 가운데 매케인 지지파가 44%인 반면 부시 지지파는 40%에 머물렀다. 이처럼 뉴햄프셔 예비 선거 후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부시 진영은 그동안 자제하던 매케인에 대한 인신 공격을 시작했고, 매케인측도 이에 뒤질세라 연일 부시 개인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깨끗한 정치 앞세운 선거 전략 주효

공화당 대통령 후보감으로 자타가 인정하던 부시 후보를 이처럼 궁지로 몰아넣은 매케인은 누구이며, 또 ‘매케인 돌풍’의 정체는 무엇인가. 63세인 매케인은 올해로 14년째 애리조나 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이자, 정가에서는 무엇보다 선거 자금 개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뉴햄프셔 주 예비 선거에서 압승이 확인되는 순간 그가 텔레비전 앞에서 꺼낸 첫마디도 워싱턴을 특정 이익 집단의 입김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즉 천문학적인 돈이 흥청망청 넘쳐나는 ‘돈선거’를 뿌리 뽑고, 정치인과 특정 이익 단체의 깊숙한 연결 고리를 과감히 도려내지 않고는 진정한 정치가 발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폐단을 고치기 위해 정치인들에 대한 무제한 기부액을 일컫는 ‘소프트 머니’를 근절하자는 것이 그의 핵심 메시지였다(62쪽 딸린 기사 참조).

‘깨끗한 정치’를 구호로 내세운 매케인의 선거 전략은 오랫동안 정치 냉소주의에 빠져온 유권자들을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뉴햄프셔 주 예비 선거에서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개혁파 공화당원은 물론 무당파라 할 자유주의파 유권자가 그의 이런 공약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매케인은 개혁 선봉주의자라는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가 ‘매케인의 승리는 대통령 선거를 양당의 기득권층으로부터 일반 국민에게 되돌려준 것’이라고 평가한 것도 짚어볼 만한 대목이다.

이런 개혁적 이미지말고도 그는 자신의 베트남전쟁 참전과 포로 경험을 한껏 부각하며 유권자를 파고들고 있다. 해군사관학교 출신 조종사로 참전해 1967년 월맹 공습 중 격추되어 무려 5년 반이나 포로 생활을 했다는 점, 특히 포로로 붙잡혀 있으면서도 끝까지 ‘군인의 양심’을 지키며 포로 석방 흥정을 거부했다는 점을 내세워, 자신이야말로 애국심이 충만한 ‘준비된 리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매케인의 이런 전략이 개혁 성향 유권자에게는 호소력이 있을지 몰라도 정작 대통령 후보 지명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화당 기득권층에는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미 공화당 지도부는 상·하원 가릴 것 없이 그를 ‘왕따’ 취급하고 있다. 주원인은 그가 1996년 이래 줄기차게 외쳐온 선거 자금 개혁 운동이다. 공화당의 전통적인 돈줄 구실을 해온 소프트 머니를 차단하라고 외쳐온 그를 공화당 지도부가 감싸안을 이유는 전혀 없다. 때문에 매케인 열풍이 강하게 불면 불수록 공화당 지도부는 부시 진영에 설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뉴욕 타임스>의 분석이다.

공화당의 ‘이단아’인 매케인의 근본적인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개혁을 거부하는 당과 당 지도부에 상처를 입히고도 대통령 후보 지명권을 따낼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지금껏 공화당 역사를 통해 매케인처럼 당 지도부에 등을 돌린 후보가 후보 지명권을 따낸 선례가 없다. 또 일단 당 지도부의 낙점을 받은 사람은 설령 후보 경쟁 과정에서 실수하거나 지지율이 떨어져도 끝까지 지원을 받았다. 매케인의 최대 약점이라면 이처럼 당 차원의 지지 기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부시 후보는 50개 주지사 가운데 30명, 그리고 공화당 상원의원 55명 중 35명의 지지를 확약받은 상태다. 매케인은 또 낙태 문제에 관한 모호한 태도로 인해 기독교연합과 같은 보수 단체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특히 사회 현안에 대해 민주당과 입장 차이가 뚜렷한 공화당 내부에서는 요즘 들어 매케인의 자질론까지 들먹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테면 그는 국방비 증액과 연방 정부 역할 축소, 세금 감축과 같은 공화당의 전통적 노선에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부시 후보가 선거 공약으로 내건 4천8백30억 달러 감세안에 대해 매케인이 ‘과도한 감세가 사회보장제도를 해친다’는 민주당측 논리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화당 지도부가 그같은 자질론을 내세우며 매케인을 몰아붙이고 있지만 최근 <타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작 공화당 유권자 대다수는 매케인의 이런 태도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당 안팎에 적대 세력을 많이 가진 매케인이 기댈 곳은 개혁 성향인 공화당 유권자와 무당파 유권자의 지지, 나아가 정파가 다른 민주당원들의 ‘반란표’다. 따라서 ‘유권자 혁명’을 일으켜 공화당 기득권층의 두터운 벽을 허문다는 것이 매케인의 속셈이기도 하다.


3월7일 ‘슈퍼 화요일’이 고비

일단 뉴햄프셔에서 불기 시작한 매케인 돌풍은 여기저기서 회오리치고 있다. 2월7일 <워싱턴 포스트>와 ABC 방송이 미국 성인 1천13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11월 선거에서 부시보다는 매케인이 민주당 후보와 경선할 때 승산이 더 클 것으로 나왔다. <타임> 최근호 보도에 따르면, 2월 현재 부시는 전국 지지율 54%로 매케인의 28%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의 선거 자금 개혁 의지와 관련해 매케인은 49% 지지를 얻어 34%를 얻는 데 그친 부시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공화당 대통령 후보 자리에 부시가 오를지 아니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매케인이 오를지는 오는 3월7일에 최종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최대 대의원 수를 가진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해 뉴욕·매사추세츠 등 11개 주에서 동시에 예비 선거가 치러진다고 해서 ‘슈퍼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이 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공화당 후보 지명에 충분한 대의원을 확보하게 된다. 현재 매케인 후보 진영은 캘리포니아·뉴욕·코네티컷·메인 주를 제외한 나머지 7개 주에서 공화당원이 아닌 일반 무당파 유권자들도 자유로이 예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크게 고무되어 있다. 뉴햄프셔 주 무당파 유권자들이 개혁을 내세운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듯이, 이들 7개 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재연될 경우 부시를 누르고 후보 지명권을 따낼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과연 뉴햄프셔의 매케인 돌풍이 부시 후보를 침몰시킬 태풍으로 변할지 두고볼 일이다.

‘돈 선거와의 전쟁’ 5년
매케인, 1996년부터 선거 자금 개혁 위해 동분서주


예나 지금이나 미국 연방 의회 선거는 한마디로 ‘돈잔치’다. 따라서 초선 의원이건 다선 의원이건 간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그 불문율이란, 선거에서 이기려면 충분한 자금이 필요하며, 그러려면 후원회 격인 정치행동위원회(PAC)를 조직해 모금에 나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법에 구애되지 않는 무제한의 기부액인 ‘소프트 머니’를 확보해야 한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하원 의원 선거에 평균 6억원, 6년마다 열리는 상원 의원 선거에 평균 20억원씩 쏟아부어야 하는 냉엄한 현실을 생각하면, 그 방법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민주당 톰 대실 하원 원내총무가 지난해 2월 후원회를 조직해 80만 달러를 모금한 것이나,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이 지난해 상반기 무려 1백50만 달러를 모금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후원회를 조직해 무제한으로 소프트 머니를 모금하고 있는 상·하원 의원은 줄잡아 3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오랫동안 워싱턴 정가를 물들여온 소프트 머니의 폐단을 뜯어고치자며 벌써 몇 년째 선거 자금 개혁 운동을 주도해온 사람이 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다. 그는 1998년 민주당 소속 러셀 페인골드 의원과 함께 소프트 머니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선거개혁법안을 발의했다가 모두 부결당했다. 이 법안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이 지지를 표명하고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이 모두 강력한 지지 논조를 폈지만, 결국 ‘돈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의원 대다수가 정파를 가릴 것 없이 부결표를 던진 것이다. 당시 매케인 상원의원은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천번이고 만번이고 발의하겠다’고 부르짖기도 했다.

그 다짐대로 매케인 의원은 지난해에도 원래 법안을 다소 손질해 수정안을 내놓았다. 원래 법안은 텔레비전을 통해 상대방 후보를 비난하려고 만드는 ‘이슈 광고’를 금지하도록 했지만, 수정안은 이 부분을 뺀 채 소프트 머니 금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전체 상원 의원 100명 가운데 법안 통과에 필요한 60명의 지지를 얻지 못해 부결된 것이다. 매케인은 어차피 이런 법안이 통과되려면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만큼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소프트 머니 5억2천5백만 달러에 이를 듯

매케인이 선거자금개혁 법안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는 1996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민주당이 보여준 갖가지 추태 때문이었다. 앨 고어 부통령이 로스앤젤레스의 한 불교사원에서 불법 모금운동을 했는가 하면,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응접실에서 거물 로비스트들을 초청해 다과를 베푼 뒤 거액의 선거 자금을 모금한 일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즉각 민주당 파인골드 의원과 손잡고 부정 선거의 원천이라 할 소프트 머니를 규제할 법을 입안하게 된 것이다.

미국 선거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민주 양당에 흘러들 소프트 머니의 규모는 줄잡아 5억2천5백만 달러에 이른다. 이는 1996년 대선 때 2억6천2백만 달러의 두 배를 웃돈다. 물론 이런 소프트 머니 기부자들은 각종 로비단체를 비롯한 특정 이익 세력이다. 지난 2월1일 뉴햄프셔 예비 선거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를 무려 18% 차이로 누른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그의 첫마디는 ‘워싱턴을 특정 이해 집단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정치 냉소주의에 빠진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는 것이다.

뉴햄프셔에서 거둔 대성공은 매케인의 메시지가 공화·민주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은 무당파 유권자와 정치 개혁을 바라는 양당 유권자들 모두에게 주효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문제는 선거 개혁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많은 유권자를 사로잡고도 막상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권을 따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부 비판자들은 매케인이 근래 부쩍 선거 자금 개혁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부시 후보에 비해 소프트 머니 모금액이 훨씬 뒤지는 데 따른 반발심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별로 설득력은 없다. 매케인은 대선 경쟁에 뛰어들기 전인 1996년부터 선거 자금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