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눈총받는 일본의 ‘2+알파’
  • 도쿄/채명석 (cms@sisapress.com)
  • 승인 1999.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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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자유·공명, 3당 연립 정권 추진…우경화 재촉 가능성
자민당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재는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당수,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 대표와 회담을 갖고 8월 중에 자민당·자유당·공명당이 참가하는 3당 연립 정권을 발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만약 3당 연립이 성공한다면 거대 공동 여당이 탄생하게 된다.

자민당은 참의원에서의 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오부치 정권이 들어선 뒤 자유당의 오자와 당수를 설득해 ‘자·자 연립 정권’을 발족한 바 있다. 그러나 자유당(12석) 의석을 합해도 자민당(1백5석)은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이룰 수 없어 법안 통과 때마다 공명당(24석)에 협조를 애걸해야 했다.

자민당은 이같은 소수 여당의 비애를 떨치기 위해, 아예 공명당까지 합친 3당 연립 정권을 구성하자고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공명당도 자민당과 선거 협력이 가능해져 3당 연립 정권 참가가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자유당은 정책이 일치한다면 공명당이 자·자 연립 정권에 참가하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거대 공동 여당 탄생에 걸림돌이 있다면 선거 제도를 둘러싸고 현재 자유당과 공명당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당은 중의원 비례구에서 50 의석을 삭감하기로 자민당과 합의하고, 이번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처리해 달라고 자민당에게 요구했다. 반면 공명당은 중의원 선거구를 정원이 3명인 1백50개 선거구로 개편한다는 중선거구제 법안을 마련하고, 자유당의 비례구 삭감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자민당은 자유당과의 합의를 깰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명당의 주장을 거부할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다.여론 “자·자·공 연립은 권력 유지 위한 담합”

자민당의 지지 기반인 종교 단체들의 반발도 큰 걸림돌이다. 창가학회는 니치렌쇼슈(日蓮正宗)를 신봉하는 신도들 모임으로, 64년 공명당을 결성해 현재 중의원에서 52개 의석, 참의원에서 24개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창가학회와 경쟁 관계인 다른 종교 단체들이 자민당이 공명당과 연립을 구성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공명당이 창가학회를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어, 공명당의 위상이 올라간다는 것은 곧 창가학회의 입지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민당을 지지해온 종교 단체들은 자민당이 공명당과 연립 정권을 구성할 경우 자민당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여론도 3당 연립 정권 탄생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일본의 한 정치 평론가는 “이전에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병한 이른바 ‘보수 합동’은 공산주의 혁명에 대항한다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자·자·공 연립’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당간 담합이다. 공명당은 자신들의 연명책으로, 자유당은 연립 정권에 안주하기 위해, 자민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3당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라고 비판한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도 3당 연립 정권을 구성하려면 우선 중의원을 해산하고 민의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민주당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 당수는 “공명당이 내각에 들어가려면 국민의 심판을 다시 받아야 한다. 오부치 총리는 내각 총사직을 할지, 중의원을 해산할지 양자 택일하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반발은 거대 공동 정권이 탄생하기 전에 항상 나타나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할 수도 있다. 자민·자유·공명 3당은 적어도 8월 초에 기본 정책에 합의하고, 8월 중순께 3당 연립 정권을 정식 출범시킬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예상이다.

만약 예정대로 3당 연립 정권이 구성될 경우 일본에는 거대 공동 정권이 탄생하게 된다. 현재 자민당의 중의원 의석은 2백65석, 여기에 자유당의 39석과 공명당의 52석을 합치면 공동 정권의 의석은 재적 의석(5백 의석)의 3분의 2를 넘는 3백56석에 달한다.

참의원에서도 자민당의 1백5석에 자유당의 12석, 공명당의 24석을 합하면 과반수(1백26의석)를 15석 초과하는 1백41 의석에 이르게 된다.

거대 공동 정권이 탄생하면 오부치 정권의 발판은 더욱 굳어진다. 오는 9월 하순에 치러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오부치 총재의 재선은 이미 떼놓은 당상이다. 단명에 그칠 것이라던 당초 예상을 뒤엎고 오부치 정권은 장기화할 수도 있다.

반면 거대 공동 정권 탄생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부치 정권이 발족한 이후 중요한 법안들이 별다른 심의 없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공명당의 찬성으로 국회를 간단히 통과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미·일 방위협력지침 관련 법안, 통신방수(일명 도청) 법안, 헌법조사회 설치 법안, 국기·국가 법안 들을 들 수 있다.

일본 중의원은 지난 22일 국기·국가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메이지 시대에 도입된 히노마루(일장기)와 <기미가요>를 정식으로 일본의 국기·국가로 정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 심의에 소요된 시간은 1주일도 되지 않았다. 히노마루가 침략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기미가요>가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패전 뒤 54년간 국기와 국가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전광석화 같은 결정이다. 거대 공동 정권 탄생하면 우경화 가속화할 듯

지난 6일 간단히 중의원을 통과한 헌법조사회설치 법안도 마찬가지이다. 내년에 국회에 설치될 헌법조사회는 52년 전에 제정된 현행 평화헌법의 문제점을 조사해 5년 내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헌법조사회는 55년에 보수 합동으로 자민당이 탄생했을 때 국회에 설치하려다가 야당들의 반대로 내각에 설치되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헌법조사회 설치 법안이 반 세기 뒤 간단히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지금 개헌파들을 크게 고무하고 있다.

대표적 개헌파인 자민당의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정조회장은 즉각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도록 헌법 9조를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개헌에 적극적인 자유당도 헌법 개정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법 실시 절차를 정하는 법률을 제정하자고 나섰다.

일본의 헌법 개정은 국회가 3분의 2 찬성으로 발의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면 가능하다. 중의원 의석의 3분의 2를 넘는 거대 공동 정권이 탄생한다면 현행 국회에서도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공명당의 지지 기반인 창가학회는 초대 회장이 치안유지법 위반과 불경죄로 체포되어 옥사했기 때문에, 그동안 반체제적·반권력적 성향을 보여 왔다.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일 방위협력지침 관련 법안과 국기·국가 법안, 헌법조사회 설치 법안 등 일본의 우경화를 재촉하는 법안에 무조건 찬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 변절에 대해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고, 밖에서도 종교 단체를 모체로 하는 정당이 각종 법안 통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많은 우려가 쏠리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에 거대 공동 정권이 탄생하는 것은 결코 환영할 일이 못된다. 물론 오부치 정권이 절대적으로 안정된다는 점에서 한·일간 안보와 경제 협력이 더욱 증진될 수도 있다. 반면 ‘수의 힘’을 바탕으로 일본의 거대 공동 정권이 전후의 ‘족쇄’를 한꺼번에 풀려고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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