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는 한국식 민주화 투쟁 불가능"
  • 金鎭華 편집위원 ()
  • 승인 1999.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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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미얀마 주재 UNDP 대표 김윤열씨 인터뷰
88년 아웅산 수지 여사가 총선에서 승리하자, 미얀마 국민들은 그가 실로 오랜만에 군사 통치의 막을 내리고 국민들에게 자유 민주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 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총선 결과를 ‘없었던 일’로 하고, 36년째 군부 통치를 계속하고 있다. 집요한 국제 사회의 경제 봉쇄에도 아랑곳없이 나라 문을 걸어 잠근 채 ‘나의 길을 가련다’를 택한 군사 정부의 속셈은 무엇일까? 과연 군부 통치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군부를 움직이는 실세는 누구인가?

미얀마 주재 유엔개발계획(UNDP) 대표로 근무한 뒤 최근 귀국한 김윤열(金贇悅) 유엔개발계획 고문을 만나 미얀마 군부의 내부 사정을 들어 보았다.

미얀마 군사 정부는 아웅산 수지 여사가 영국에서 치러진 남편 마이클 아리스 교수의 임종과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것조차 방해해 국제 사회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군사 정부는 왜 비난을 무릅쓰면서 비인도적인 처사를 했는가?

한때 수지 여사를 해외에 강제 축출하는 것까지 논의되었던 점으로 보아 그의 출국을 막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나, 일단 출국하면 다시 귀국할 수 없다는 것은 수지 여사나 군사 정부 모두 알고 있던 터였다. 군부는 오랫동안 국제 사회로부터 규탄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비판에 거의 무감각하다. 비판하건 말건 군부는 절대로 수지 여사가 다시 귀국하여 ‘말썽 피우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군사 정부가 선거에서 승리한 수지 여사는 물론 야당의 정치 참여마저 거부하는 것은 명분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군부도 명분 없는 억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구미식 민주주의가 미얀마 현실에 맞지 않으므로 국민의 수준이 높아질 때까지 군부가 계속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에 차 있는 것 같다. 마치 불교의 ‘만트라’(주문)를 반복해 외우듯이 신념을 반복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소수 민족의 무장 봉기와 마약 밀매 등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군부 통치가 불가피하다는 확실한 소신을 갖고 있다. 군사 정권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에는 1백35개 소수 민족이 국토를 둘러싸고 있다. 실제로 군사 정부는 카렌족과 샨족의 반란을 잠재웠고, 마약왕 쿤사를 투항시키는 등 치안 확보에 성공했다. 경제 개발에 대한 열의도 대단하고 상당한 실적도 올렸다. 군부는 언젠가 ‘적당한 시기’에 계엄을 해제하고 자유 민주선거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상 처음으로 헌법 제정 작업에 착수한 지도 오래다. 그러나 적당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딜레마이다.
과거 36년간 미얀마를 통치해 온 군사 정부의 핵심 정체는 지금도 베일에 가려 있다. 과연 누가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인가?

국가 통치 핵심체는 군부에 설치된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위원 22명 정도인데, 모두 장성이다. 대다수가 지방군 사령관이기도 하다. 그 중 3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 인물은 탄 슈에 장군이다. 유일한 5성 장군으로 국가평화발전위원회 의장·국가 수반·국무총리·3군 총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배후 조종에 전념하는 듯하고, 특수 행사 외에는 표면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실권과는 거리가 먼 인상을 준다. 그 다음이 몽 웨이 대장으로 국가평화발전위원회 부의장이다. 정규 사관학교 출신으로 그가 군을 장악하고 있다. 무장 소수 민족 소탕전의 베테랑답게 야당과 타협을 거부하는 극우 보수 민족주의자이다. 그는 필요하다면 수지 여사를 비롯한 야당 지도자들을 모두 비행기에 태워 국외로 추방할 수도 있다고 극언할 정도로 강경파라는 평판을 듣는 쇄국주의자이다. 세번째 인물은 킨 뉼트 중장이다. 실질적인 최고 실력자로 정보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청렴 강직하고, 사무실에서 밤샘하며 쭈그리고 잘 정도로 일에 열심이다. 온건파로 간주되나, 부패 장성들을 거침없이 숙청하는 엄격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현재 킨 뉼트와 몽 웨이 간의 권력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킨 뉼트는 비교적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편이며, 외부 세계에서도 대화 가능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군의 대부 격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네윈 원수의 후광을 업고 몽 웨이를 견제하고 있다. 그러나 킨 뉼트의 약점은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양곤 대학 출신 장성이어서 병력 동원 능력이 몽 웨이에 비해 약하다는 점이다. 국가평화발전위원회 구성원의 신원과 조직은 대외 비밀 사항으로 국가 수반인 탄 슈에조차 신문에 사진이 실리지 않고, 신임장을 제출하는 외국 사절 외에는 외부인을 만나지 않는다. 80대 중반이 된 병약한 네윈이 사망할 경우 권력 투쟁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킨 뉼트 장군과 수지 여사를 모두 만나 보았는데,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킨 뉼트 장군을 그의 검소한 사무실에서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작은 키에 깡마른 몸집인 킨 뉼트는 눈동자가 살아 있어 의지가 강한 인상을 준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대화가 통하는 인물로, 진실로 국가를 재건해 보겠다는 애국심 어린 충정을 가진 인물로 느껴졌다. 얼핏 박정희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인물이었다. 수지 여사에 대해 정부는 관제 데모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인신 공격을 하고 있다. 남편이 외국인이고 두 아들이 외국에서 교육받고 있으며, 외세에 의존하는 사대주의자라는 등 유치한 공격이 거의 매일 보도된다. 양곤 시 대학로 2층집에 살고 있는 수지 여사는 조용한 말투에 작고 연약한 체구, 깔끔한 용모에 용기와 자신감을 가진 대담한 여성이다. 외국인과의 접촉도 제한되어 있으나, 여기서 밝힐 수 없는 비밀 경로를 통해 외국과 접촉하고 있다. 그에 대한 국제적인 지원이 그의 기(氣)를 북돋아 주는 것 같다.

수지 여사에 대한 국민 지지도나, 야당과 학생들의 반정부 투쟁이 외부 세계에 알려진 것보다 미약하다는 보도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완전 통제된 사회에서 민의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88년 총선을 군부가 무효화한 이후, 야당인 민주연맹(NLD) 간부는 대부분 정부의 초대소(Guest House) 에 ‘초대’되어 감금된 상태이다. 야당은 분열되어 있고 지난 3년간 대학은 모두 휴교했으며, 학생과 젊은이 들의 데모는 원천 봉쇄되고 있다. 신문도 정부 기관지 1개뿐이다. 이런 상황이므로 이 나라에서 한국식 민주화 투쟁으로 군정을 종식시키기는 극히 어려울 것 같다. 국민들도 정부의 일방적 홍보에 오랫동안 세뇌되어서 그런지 점차 정치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수지 여사가 외국인 관광객에게 미얀마에 오지도 말고 원조를 하지도 말라고 호소한 것이 오히려 국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그렇지만 미얀마 주재 외교관들은 만약 오늘 선거가 치러진다면 수지 여사가 승리할 가능성을 50% 정도로 점치고 있다.

미얀마의 경제와 생활상은 어떤가?

30년 이상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았기 때문에 세금 개념이 없어 국가의 주요 수입원이 약하다. 약간의 보석류와 목재를 수출하고 있으나, 8년 전부터 봉쇄돼 경제가 아주 피폐해졌다. 1인당 국민소득이 백 달러 미만이다. 육군 중령 월급이 5백 챠트(1천5백원) 국장급 공무원 월급이 6천 챠트(2만2천원)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주택·전기·휘발유·쌀·식용유 등 생활 필수품을 국가가 무상 배급하기 때문에, 쌀·생선·잡곡을 주식으로 하루 세끼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경제 봉쇄 상태에서도 국민들은 주변 5개국 국경을 통해 밀무역을 하며 온갖 생필품을 조달하고 있다. 천성이 착하고 불심이 강한 미얀마 국민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큰 불평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얀마 군사 정권을 공공연히 반대해 왔고, 오는 6월 말에는 서울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촉구하는 아·태 민주지도자 회의에 공동의장 자격으로 참가해 연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의 미얀마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네덜란드·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 일부 서방 국가는 내정 불간섭 정책을 펴고 있다. 과거 한국 정부도 같은 정책이었다. 그러나 현정부는 미국·유럽연합(EU) 국가들에 동조함으로써 미얀마 정부와 아주 냉랭한 관계이다. ‘우리 형편을 누구보다도 피부로 잘 느끼는 한국이 왜 그러는가’라는 말을 군부 지도층으로부터 종종 들었다. 미얀마는 방대한 지하 자원과 인적 자원 등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종교적으로 배울 점이 많아, 앞으로 동남아의 강국이 될 가능성이 큰 나라이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도 중국의 동남아 팽창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중요한 나라이다. 한국도 장기적 국익 차원에서 아세안 국가들같이 실리 외교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미얀마를 떠나면서 내가 느낀 점이다.

아웅산 수지 여사도 이 회의의 초청자 명단에 있던데, 참석할 수 있다고 보는가?

참석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일 것이다.
군부와 야당 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고, 서방 세계와 군부와의 접촉도 두절된 상태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 아닌가. 군부 통치가 얼마나 더 계속될 것 같은가?

미얀마 군부는 매년 반복되는 유엔의 결의안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경제 봉쇄에 대해서도 구걸하는 식의 애원은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선 국민의 고생만이 가중될 뿐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실효성 없는 경제 봉쇄를 거두고, 다른 형태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경제 봉쇄는 이라크·쿠바·북한의 경우에서 보듯이 정권 전복으로 이어질 수 없다. 국제 사회가 민주 헌법 제정을 앞당길 것과 구체적인 민주화 일정 제시를 강력히 요구하고, 언론 자유와 야당 인정을 촉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 동시에 군부와 정기적으로 대화할 기회를 늘리며, 군부 체제 강화를 돕지 않는 선에서 인도주의적 원조를 폭넓게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바로 유엔개발계획이 군부와 서방측의 눈치를 보면서 농촌 빈곤층을 끈질기게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이유다. 유엔개발계획의 원조 형태는 특이한 면이 있다. 즉 미얀마 정부를 통하지 않고 직접 미얀마 국민에게 원조하는 것이다. 군부가 자신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원조하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특히 마이크로 크레디트 융자는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을 융자해 자립을 돕는 것으로, 이 돈을 상환 기간 내에 갚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미얀마 국민의 성실성을 증명하는 사례로, 유엔 기관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얼마 동안 군사 통치가 계속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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