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선박 추적극’의 비밀
  • 도쿄/채명석 (cms@sisapress.com)
  • 승인 1999.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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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일 방위협력 관련 법안 통과 위해 자위대 출동시킨 듯
영해를 침범한 괴선박 2척을 추적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3월24일 오전 0시50분께 자위대법 82조에 근거해 자위대 발족 사상 처음으로 ‘해상 경비 행동’을 발동했다. 연안 감시를 담당하는 해상보안청 순시선만으로는 고속으로 도주하는 괴선박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명령에 따라 해상자위대 소속 호위함 4척, P3C 초계기 15대, F15 전투기 2대가 출동해 도주하는 괴선박 2척을 향해 경고 사격과 폭탄 투하를 반복했다. 자위대원들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에서 실탄 사격과 폭탄 투하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지지 통신, ‘자위대 출동’ 사실 6시간 전에 보도

일본 정부가 괴선박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3월23일 오전 11시께이다. 그로부터 14시간 뒤에 자위대 발족 사상 처음으로 해상 경비 행동이 발동된 셈이 된다. 의사 결정이 더디다는 일본에서 어떻게 이렇듯 신속한 행동이 가능했을까.

지난 3월26일 <시사저널> 편집국에 일본인 독자로부터 팩스 한 통이 도착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괴선박 추적이 ‘미리 준비된 각본’에 의해서 진행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3월25일자 인터넷 게시판에 실린 글을 첨부했다. 이 글의 지적에 따르면, 일본의 지지(時事) 통신은 23일 저녁 6시49분 ‘사태를 중시한 정부는 총리 관저 내에 관저대책실을 설치하고, 24일 새벽 자위대법에 의거하여 해상 경비 행동을 발령. 해상자위대의 호위함이 지근 거리를 추적, 경고 사격을 실시했다’라는 뉴스 속보를 회원사에 보냈다. 지지 통신은 또 ‘순시선 2척이 위협 사격을 가하며 추적했으나, 24일 새벽 추적을 사실상 단념했다’라고 보도했다.

지지 통신의 뉴스 속보가 나온 23일 저녁 6시49분께는 일본 정부가 괴선박 추적 사실을 공표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데 어떻게 지지 통신은 6시간 뒤에 발표될 해상 경비 행동 발령 사실과 일본 정부가 다음날 새벽 괴선박 추적을 중단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인터넷 게시판의 글은 이같은 의문점을 지적하면서, 지지 통신의 뉴스 속보 기사가 일본 정부의 괴선박 추적극이 미리 쓴 각본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좋은 증거라고 주장했다.

<홋카이도 신분(北海道新聞)> 3월23일자 조간 기사도 똑같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신문은 괴선박이 발견되기 전날 인쇄한 조간 기사에서 ‘방위청은 잠수함이나 무장 스파이선이 영해를 침범하는 경우 자위대법 82조에 있는 해상 경비 행동을 발령하고 해상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의 공동 작전을 긴밀히 해 나가기로 결정했다’라고 보도했다.

<홋카이도 신분> 보도가 사실이라면 방위청은 괴선박 침입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같은 사태를 예상해 해상 경비 행동을 발령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해상보안청과의 공동 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말을 바꾸면 괴선박이 방위청이 면밀히 준비해 온 작전 계획을 실천할 둘도 없는 기회를 마련해 준 셈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해상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이 아무런 잡음 없이 공동 작전을 펼친 것도 사전 시나리오가 없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일본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해상자위대가 23일 오전 9시25분께 노도(能登) 반도 앞 해상에서 괴선박 2척을 발견하고 해상보안청에 통보해 준 것이 오전 11시께이다. 운수성 소속으로 연안 경비를 담당하는 해상보안청은 즉각 순시정 15척을 출동시켜 괴선박을 향해 배를 멈추라고 경고한 뒤 기관포로 위협 사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괴선박 2척이 갑자기 속도를 올리며 도주하고, 추적하던 순시정의 연료가 바닥이 나 24일 새벽 운수성 장관이 방위청 장관에게 해상자위대 출동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간지 <아에라>의 보도에 따르면, 해상보안청과 해상자위대는 앙숙이어서 공동 작전을 펼칠 사이가 아니었다. 두 부대가 각각 운수성과 방위청으로 소속이 다르다는 점도 있지만, 해상자위대는 본래 해상보안청의 소해(掃海) 부대가 떨어져 나와 생긴 부대이다. 따라서 사전 각본 없이는 공동 작전이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북한 공작선이 일본 영해를 제 집 안방 드나들듯이 수시로 넘나들었다는 것은 이미 25년 전부터 알려져 온 사실이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 내에 대외 공작을 담당하는 연락소가 6개 이상 있다. 그 중 대일 공작을 전담하는 연락소는 청진에 있다. 청진연락소에는 대일 특수 공작원이 3백명 가량 배치되어 있고, 10∼20명이 한 조가 되어 연간 50회 정도 일본 영해를 드나든다고 한다.

이를 감시하기 위해 육상자위대는 쓰시마·앗카나이에 연안 감시대를 배치했다. 또 항공자위대는 고마쓰 기지 등 27개소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고 있으며, 해상자위대는 아쓰기 기지 등에 P3C 초계기를 배치하고 있다. 주일미군은 미사와와 오키나와에 별도로 전파 탐지 부대를 두고 있다.
일본, 영해 침범 전부터 괴선박 움직임 파악

이렇게 보면 일본 방위청은 북한의 공작선이라고 단정한 괴선박이 일본 영해로 접근할 때부터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슈칸 아사히>는 ‘주일미군은 물론 방위청도 2월 하순부터 괴선박 2척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그 동향을 쫓고 있었다’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방위청은 서울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때를 이용해 북한이 방해 공작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사전 경계를 하고 있었다. 또 주일미군 초계기가 노도 반도 앞에서 이상한 전파를 발사하는 괴선박을 처음 발견한 것은 서울에서 정상 회담이 열리던 3월21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주일미군으로부터 귀띔을 받은 방위청은 괴선박이 행동을 개시하기를 기다리며 뜸을 들이다가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진 23일부터 추적을 개시한 셈이 된다. 공영 방송인 NHK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추적 장면을 밤새도록 중계한 것도 그같은 가능성을 크게 한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왜 이 시점을 이용해 괴선박 침입 사건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자위대까지 출동시킨 것일까.

일본 국회는 현재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 관련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심의의 최대 초점은 일본 주변에서 비상 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위대 출동을 국회의 사전 승인 사항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사후 승인 사항으로 할 것인가이다.

자민당은 이른바 ‘주변 사태’가 발생하면 국회를 소집할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에 우선 내각 결의로 자위대를 출동시키고 사후에 국회 승인을 얻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야당들은 자위대의 문민 통제 원칙에 따라 자위대 출동에 국회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자민당은 미·일 방위협력지침 관련 법안을 오부치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는 5월 이전에 국회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다. 그러나 사전·사후 승인 문제가 걸려 있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자위대 출동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바로 이런 점을 들어 일본 정부가 관련 법안을 조기에 통과시키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각본을 미리 작성해 두었다가 괴선박이 출현하자 지체없이 행동에 옮겼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외무성이 각본을 맡고 방위청은 그 각본에 따라 연출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관련 법안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 발사에 이어 또다시 일본 정부와 자민당에 ‘가미가제’식 바람을 몰아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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