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수하르토, 민주주의 심장 쏘다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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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시민에 발포…탄압 더욱 거세질 듯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75)이 집권 3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4월 말 아내와 사별한 뒤 상심해 있던 그는, 7월 초에 건강이 악화되어 독일에 가서 진료까지 받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97년 총선과 98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의 강력한 도전에 부딪혀 휘청대고 있다.

1억9천만 인구가 수많은 섬에 흩어져 사는 다인종 국가 인도네시아를 이끌어 온 그는, 성공한 개발 독재자라는 평가에 어울리게 가난에 찌든 나라를 신흥 개발도상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30년 전 그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75달러에 불과했던 인도네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올해 천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그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에게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는 인물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49)이다.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을 지낸 수카르노의 맏딸인 그는,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국민 사이에서 광범한 지지를 얻고 있다. 반둥 대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그는, 83년 민주당에 입당해 자카르타 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후 93년 전당대회에서 수르야디 당수를 누르고 인도네시아민주당의 새 당수로 선출되었다.

이때만 해도 수하르토 정권은 메가와티를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하르토 정권에 대해 수르야디 전 당수가 강경한 편은 아니었지만, 메가와티가 좀더 온건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권을 장악한 뒤 메가와티는 집권 세력을 완전히 실망시켰다. 그는 관제 야당의 오랜 전통을 깨고 수하르토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를 비판하기 시작했으며,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빈민층·학생·지식인 들을 대상으로 지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

메가와티의 세력 확충은 집권 세력을 아연 긴장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집권 세력은 87년 총선에서 40석을 차지했던 민주당이 92년 총선에서 56석을 차지하자 긴장하고 있는 터였는데, 메가와티의 인기가 날로 치솟자 심한 위기감에 빠졌다. 메가와티 자신은 한번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지만, 98년 대선에서 그가 수하르토에게 최대 정적이 될 것이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 때문에 집권 골카르당과 군부는 은밀하게 메가와티 거세 작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28일 태국의 <네이션>지는 인도네시아군 고위 인사들이 3월24∼28일 메가와티를 축출하기 위한 비밀 공작회의를 개최했다고 보도해,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도 못되어 수하르토 정권의 메가와티 제거 작업이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집권 세력은 민주당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97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는 메가와티파와 반메가와티파가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이 점이 집권 세력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민주당이 내분에 휩싸이게 된 것은 내년 5월 총선에 누구를 내보내느냐는 것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 총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7월31일부터 8월 중순까지 미리 출마자 명단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누구를 공천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메가와티측과 비주류측이 첨예한 갈등을 빚었던 것이다. 메가와티측은 기존 정치인들을 제치고 신예 정치인들을 대거 발탁하려고 한 반면, 기득권 상실을 우려한 기존 당료들은 여기에 강력히 반발했다.

군·경 동원해 정적 메가와티 제거

지난 6월21일 수마트라 섬 서북쪽 메단 시에서 반메가와티파가 개최한 당대회는 수하르토 정권의 양해와 협조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무려 1천5백㎞나 떨어진 곳에서 개최된 회의는 당내 보수파인 파티마 아흐마드 당 중앙위원장이 주도했는데,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날 대회에 인도네시아군 총사령관인 페이잘 탄융 대장이 참석해 개막 연설을 했고, 행사 개최에 따른 비용을 정부가 지원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행사장에는 군과 경찰이 동원되어 야당의 행사 진행을 보호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이 날 대회에서는 또 메가와티 대신 수르야디가 새로운 당 총재로 선출되었다. 그는 93년 메가와티한테 당권을 빼앗긴 인물로서, 이번에 당내 비주류 인사와 여당의 협조를 얻어 당권을 되찾은 꼴이 되었다. 이로써 메가와티 제거 작업은 순조롭게 완료되었다.

비주류측은 이번 당대회가 민주당의 27개 지구당 가운데 21개 지구당의 지지를 받아 소집된 만큼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가와티측은 비주류측이 개최한 당대회를 ‘정부와 군부의 더러운 술수로 치러진 당 대회’라며 강력히 비난하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국민 홍보에도 적극 나섰다. 그리고 자카르타에 있는 당사에서 장기 농성에 돌입했다.
한 달 이상이나 농성이 계속되었지만, 수하르토 정부는 이에 대해 초연한 듯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7월25일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아세안(ASEAN) 외무장관 회담이 끝나고 미국·호주·유럽연합 등 21개국 외무장관들이 인도네시아를 떠난 지 이틀 만에 경찰 병력이 민주당 당사에 투입되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국제적인 비난을 줄이기 위해 치밀하게 날짜를 계산했던 것이다.

이 날 새벽 인도네시아 경찰의 민주당사 난입 사건은 수하르토의 30년 독재에 지칠 대로 지친 자카르타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5천여 시민이 이를 규탄하는 시위에 가담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사망자 2명, 부상자 26명, 체포 2백15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정확한 수치는 오리무중이다. 7월30일 국제사면위원회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인해 사망한 야당 정치인만도 7명이나 된다.

 
집권층 내부 변혁 없으면 민주화 요원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초강경 조처를 취했다. 30일에는 시위 가담자에 대해 현장에서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민주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노조 지도자가 자택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메가와티를 포함해 다수의 야당 정치인을 체포하기로 하고, 이들이 공산주의와 결부되어 있다고 몰아붙였다.

앞으로 인도네시아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98년 대선을 앞두고 수하르토가 7선에 도전할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전에는 수하르토가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한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현재 그의 결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로는 자식과 친인척들이 저지른 비리와 부정 축재가 꼽힌다. 수하르토의 6남매 자식들은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모두 인도네시아의 재벌이 되었다. 이 때문에 ‘도시바가 인도네시아 전체를 사들였다’는 원성이 자자한 상황이다. ‘도시바’란 수하르토 자식들의 머리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 수하르토 정권에 도전할 야당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의 변화는 집권층 내부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인도네시아 정치를 연구해온 신윤환 교수(서강대·정치학)는 “현재 집권 세력 내에서 최고의 권력 집단은 군부이다”라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수하르토는 지난 1∼2년간 군부에 대단히 공을 들여 왔으며, 군은 질서 유지를 최대 존립 목적으로 삼고 있다. 군부 내에서도 일부 장교들이 수하르토 정권의 족벌 체제에 반대하고 있지만, 사회의 질서 파괴에 대해서는 전혀 이견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군부 등 집권층 내부에서 동요를 일으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고, 메가와티 축출로 시작된 인도네시아 정국 불안은 평온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수하르토 정권의 탄압 강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럼 메가와티는 어떻게 되는가.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수하르토 정권이 그와 타협하지 않고 탄압을 가중하는 경우, 그는 장외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반대로 집권 세력이 타협적인 자세로 나올 경우 메가와티는 타협점을 찾고자 할 것이다. 군부와 부딪치는 것이 어떤 사태를 몰고올 것인지 그는 알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민주당 당권과 관련해 수르야디측과 타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집권 세력의 협상 카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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