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터닦기 시작했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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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외교 총공세 개시…전문가들 ‘10·11월 성사’ 관측
‘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는 이를 북한의 ‘외교 총공세’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2002년에 그랬던 것처럼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주도한다는 점에서 ‘김의 전쟁’이라고 불릴 만하다.

지난 4월의 전격적인 베이징 방문으로 시작된 이 ‘2라운드 전쟁’이 이제 고이즈미 총리의 5·22 평양 방문으로 한 굽이를 돌아서게 되었다. 2002년 10월 핵 카드를 앞세운 미국의 일격으로 중단되었다. 그의 외교 게임이 1년여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2004년판 김의 전쟁의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그 전사(前史)라고 해야 할 2002년의 경우를 살펴보자. 2002년 7월의 7·1 조처와 북·러 정상회담, 8월의 신의주특구 개방, 9월의 북·일 정상회담. 그리고 10월의 켈리 특사 방북으로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김정일 위원장은 마지막 귀착지인 서울로 발걸음을 옮길 계획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외교 안보 분야의 핵심 고위 인사를 진원지로 하는 이 ‘김정일 서울 답방설’은 신빙성 있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한 대선 직후인 2002년 12월부터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마감 전인 2003년 2월 이전에 답방함으로써 김대통령과의 약속을 지키고 새 대통령과도 인사를 나눌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2004년에도 김위원장의 최종 목적지는 서울일 수밖에 없다. 이미 김위원장의 서울행 시기와 방법을 둘러싸고 국내외 한반도 정보통들 사이에 치열한 물밑 정보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외교 소식통들은 김위원장의 베이징 방문 직후부터 안테나의 감도를 한껏 높였다. 마침 남한의 4·15 총선에서 개혁과 진보를 앞세운 열리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자유의 몸이 될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올해 안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즉 ‘6월 말쯤으로 예상되는 제3차 6자 회담에서 북한이 핵문제에 대해 전향적 조처를 발표하는 것을 첫 출발점으로 한다. 더불어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국제 분위기를 호전시킨 뒤 남북 모두의 축제일인 8·15를 기해 서울행을 단행해 ‘민족적 이벤트’를 연출하려 할 것이다’라는 것이 최근까지 워싱턴 전문가들이 그려 온 시나리오다. 워싱턴의 정보 소식통은 “미국 정계의 유력 인물들이 8·15 답방설에 무게를 두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서울을 방문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에게 어떤 선물을 들고 올 것인가도 관심이다. 즉 현안인 핵 해법을 남북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려놓음으로써 노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을 핵문제와 연계해온 노대통령의 처지를 고려해 남북 정상이 서울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선언’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소 성급한 것 같은 ‘8·15 서울답방설’의 진앙지 역시 지난 4월 김위원장이 방문했던 베이징이다. 김위원장은 당시 중국 방문에서 “미국이 테러 지원국이라는 고깔을 벗겨주면 핵 사찰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라고 제안했다(<시사저널> 제759호 참조>). 이 제안이 지난 5월15일 폐막된 제3차 6자 회담 실무회담 기간에 북측 대표를 통해 ‘핵동결에 대한 검증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다시 반복됨으로써 앞으로 회담 전망을 밝게 했다.

김위원장이 당시 베이징에서 핵 사찰을 수용하는 대가로 테러 지원국 고깔을 벗겨달라고 제안했다는 대목은 바로 고이즈미 총리의 전격 방북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4월29일 미국 국무부는 북한을 또다시 테러 지원국 명단에 포함하면서 그 근거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새롭게 추가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북한의 외교 공세의 주 메뉴에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해법도 포함될 것이라는 얘기가 역시 나돌았다.

고이즈미 총리가 5월22일 평양을 방문해 제2차 북·일 정상회담을 갖기로 결단한 가장 큰 배경이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7월의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러 가지 국내 악재에 시달리는 그로서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만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북을 단순히 선거용이라고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2002년 9월17일 갑자기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던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주도면밀한 동북아 외교 게임에 대한 일본식 대응이었다.
2002년 4월 임동원 특사와의 면담에서 김위원장이 ‘남측에서 경의선 복구를 먼저 제안했으니 우리는 동해선 복구를 제안하겠다’고 한 발언은 그 외교 게임의 출발점이었다. 김위원장의 동해선 복구 발언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를 연결하고 싶어하는 러시아의 희망 사항을 대변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으로 러시아 세력이 동해선을 타고 한반도의 동해안으로 남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기도 했다. 한반도 동해안과 얼굴을 맞댄 일본으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은 얘기였다.

김위원장은 그 해 7월 아예 작정이라도 한 듯 러시아 극동의 전략 거점인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에 대한 압박 강도를 한층 높인 것이다. 결국 한 달 뒤 고이즈미 총리는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내의 대북 정보 소식통은 지난 5월4일부터 7일까지 평양에서 있었던 제14차 남북 장관급회담의 ‘미스터리’와 남북 및 북·일 관계의 복잡한 함수 관계를 흥미롭게 해석했다. 지난번 남북 장관급회담의 특징은 한마디로 북한 대표의 세대 교체였다. 그동안 남북 대화 자리에 권 민이라는 명함을 들고 등장했던 북한의 참사급 40대 대화일꾼이 권호웅이라는 또 다른 명함을 들고 대표로 등장했다. 어느 모로 보나 격이 떨어지는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이같은 처사가 남측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였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장관급회담 같은 공식 대화 채널보다는 비공식 창구로 무게 중심을 옮기자는 신호라는 것이다.

당시 회담이 장성급회담 개최를 둘러싸고 뜻밖에 결렬 위기까지 갔던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된다. 북한은 장성급회담을 앞으로 비공식 채널이 가동될 경우 거기서 다룰 주요 메뉴의 하나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쪽이 장관급회담이라는 공식 채널에서 그것을 내놓으라고 고집하자 북한 내부에서 혼선이 빚어졌다는 얘기이다. 즉 이번에 내주면 앞으로 비공식 채널에서 뭘 가지고 흥정하느냐에서부터, 남쪽이 혹시 앞으로도 공식 채널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오판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그럼 왜 이 시기에 북한이 채널 교체를 시도한 것일까. 그것은 이제 비로소 남쪽과 흉금을 터놓고 해야 할 얘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남북 정상회담이다. 서울의 대북 정보 소식통은 “지금 평양의 분위기는 6·15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선을 가동하기 시작했던 2000년 2월과 비슷하다”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정보기관인 내각조사실의 정세 분석가들 역시 이 장관급회담의 미스터리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즉 그들 역시 평양이 서울을 향해 본격 행동을 개시하려 한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는 얘기다. 물론 일본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행에 회의적인 견해도 많았다. 따라서 평양행 결단에는 고이즈미 총리의 독특한 개성과 ‘정치적 타산’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이즈미의 ‘5·22 평양행’은 어떤 파란을 일으킬까. 당연히 4·15 총선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으로 고조된 남한의 민심이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으로 다시 고양될 가능성이 높다. 남한 보수파들 역시 일본 보수 강경의 원조인 고이즈미의 거듭된 방북 앞에서는 할말을 잃게 될 것이다.

김위원장의 스타일대로라면 그 여세를 몰아 8·15에 서울행을 감행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국내외 북한 관측통 중 다수는 이보다 늦추어질 것으로 본다. 미국 대선 직전인 올해 10월 또는 대선 직후인 11월이 실제로는 유력하다는 것이다. 재일동포 북한전문가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미국 대선 판도에서 민주당 켈리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면 김위원장이 대선 전인 10월 서울행을 단행할 수 있다. 켈리를 돕는다는 의미가 있다. 반면 부시가 유력할 경우 대선 직후인 11월에 결행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방파제로 삼으려 할 것이다.”

10월설, 또는 11월설을 뒷받침하는 다른 근거 및 정보 들도 존재한다. 그 중에는 북한 실무진이 원래 8·15 답방을 검토했다가 특정일에 맞출 경우 김위원장의 신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신변 안전 때문에 서울이 아닌 개성과 금강산을 방문할 것이 유력하다는 정보도 있다. 국내의 대북 소식통은 “아직 서울은 위험하다고 본다. 그래서 개성과 금강산 그리고 제주도 얘기도 나온다. 또한 중국의 역할 여하에 따라서는 베이징도 고려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베이징설은 김위원장이 지난번 방중 때 장쩌민 군사위 주석과 만났을 때 “과거 카터 대통령이 캠프데이비드 협상을 주재했던 것처럼 중국도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 중국이 테러 지원국 고깔을 벗기는 데 역할을 하면 베이징도 가능하다”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10월설, 11월설의 또 다른 근거로 6자 회담과의 관련성이 거론된다. 즉 6자 회담의 메인 게임이 6월의 3차가 아니라 10월께로 예상되는 4차 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 직전이 되어야 부시 정부가 핵 문제에 대한 복안을 꺼내놓을 것이고, 따라서 그 추이를 보아 가면서 남북 양측이 정상회담이라는 빅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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