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면 법안에 재미 교포 비상
  • 워싱턴·金在日 특파원 ()
  • 승인 1995.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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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 돌의 ‘복지비 삭감안’ 파문…공화·민주 찬반 대립, 공화 강경파는 “더 줄이자”
미국 의회의 가을 회기가 9월 초 시작되면 사회 복지 정책을 대폭 수정하게 될 포괄적인 사회복지개혁안에 대한 상원의 처리가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다. 지난 8월 초 다수당인 공화당은 이 개혁안을 상원에서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봅 돌 공화당 원내총무는 돌연 이 법안의 상원 통과를 포기하고 여름 휴회에 들어갔다. 공화당은 상원 백 석 가운데 54석을 차지하고 있으나 필 그램 의원 등 공화당내 강경 보수파를 설득하는 데 실패해 이 법안의 통과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원은 지난 3월 깅리치 의장이 주도하여 주 정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영주권자의 수혜 자격을 사실상 박탈하며 미혼모의 수혜 자격을 제한하는 복지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봅 돌 총무는 3주 간의 여름 휴회가 끝나고 9월5일부터 시작되는 회기에 조정안을 들고 나와 상원 통과를 다시 시도할 것이 틀림없다. 한국 교포를 비롯한 이민자들은 이같은 내용을 법제화하는 데 강력하게 반발하며 미국 의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60쪽 상자 기사 참조) .

공화당은 현재 2천억달러에 가까운 연방 정부의 연간 재정 적자를 2002년까지 제로 수준으로 맞출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를 위해 돌 의원은 앞으로 7년에 걸쳐 복지 예산 6백50억달러를 절감한다는 목표로 야심찬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액수는 앞으로 7년간 어린이를 부양하는 가족에 대한 생계비 보조(AFDC), 저소득층 식비 보조(FOOD STAMP), 노인·장애자 등에 대한 수입 보조(SSI), 저소득층 자녀 영양 보충 프로그램에 배당할 예산의 10%에 해당한다.

이 개정안은 한마디로 복지 지원금 폐지, 또는 대폭 삭감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즉, 노인과 장애자 등에 대한 보조금을 이민자에게는 지급 중단하고, 다른 대상자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 식비 지원 등 현금 보조 프로그램과 직업 훈련 및 각종 어린이 복지 프로그램 예산을 일괄 지원금 형식으로 묶어 주 정부에 이양하고, 복지 수혜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할 뿐 아니라, 10대 미혼모는 가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충족시킬 때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 중에서 가장 큰 쟁점은, 연방 정부가 복지 예산을 일괄 교부금 형식으로 주 정부에 주어 주 정부로 하여금 중앙 정부의 지침과 통제에서 벗어나 재량권을 가지고 복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게끔 한 대목과, 10대 미혼모에 대한 별도의 복지 혜택을 금한 부분이다. 민주당은 한 목소리로 공화당안을 공격하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의 입학 전 프로그램에 관한 지출을 삭감하면서 가정의 가치에 대해 논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위선자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클린턴 대통령은 돌 의원의 안을 가장 강력하게 공격하는 선봉장이다. 그는 “공화당 극단 보수주의자들이 복지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비난하고, 특히 복지 정책을 주 정부에 위임하자는 돌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각 주에서 복지 수준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하는 경쟁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10대 미혼모에 대한 복지 혜택에 대해 “부모가 미성년이거나 미혼이기 때문에 그들의 자식에게 복지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한다.
필 그램의 강경 노선은 대권 도전용

클린턴 대통령과 돌 의원의 첨예한 대립으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복지개혁안에 관한 민주·공화 양당의 상반된 입장은 양당의 기본 노선에서 연유한다. 공화당은 원래 ‘작은 정부’기치를 내걸고 연방 정부의 권한을 주 정부와 주민에게 돌린다는 입장을 취해 왔고, 민주당은 소수 민족과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켜 왔다. 공화당은 기업가와 전문 직업인 등 중산층 이상을, 민주당은 소수 민족과 중산층 이하 가난한 사람들을 정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돌 의원의 안을 부분적으로 공격하고 있으나 특별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큰 방향에서는 견해를 같이한다. 클린턴 역시 현행 복지 제도가 기본적으로 잘못돼 있으므로 바꾸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는 현 복지제도가 실업자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찾게끔 동기를 부여하거나, 가정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못하고 있음을 잘 안다. 다만 그는 공화당 안대로 복지 정책에 관한 재량권을 주 정부에 위임할 경우 각 주가 중앙 정부로부터 받은 돈을 복지를 위해 쓰지 않고 더 급한 분야에 사용할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애초 돌 의원의 개정안은 8월 초 상원에서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노련한 전략가이자 협상가인 그 앞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필 그램 의원을 필두로 한 공화당내 보수 강경 세력이 한술 더 떠 ‘돌 의원의 안이 너무 약하다’며 더 강화한 내용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램 의원은 △이민자의 복지 수혜 자격을 더욱 광범위하고 강경하게 제한할 것 △복지 혜택을 받는 10대 미혼모가 또다시 출산할 경우 추가 지원을 제공하지 말 것 △수혜자가 일정 기간에 일자리를 잡도록 못 박으라고 제안했다.

그램 의원이 이같이 강경하게 나오는 까닭으로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 문제를 놓고 돌 의원에 대한 경쟁 심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아이오와 주 에임스에서 실시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 모의 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돌 의원과 공동 선두를 기록해 기세를 올린 바 있다. 일반적으로 돌 총무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레이스에서 단연 선두 주자로 인식돼 왔다. 돌 의원이 주도하는 복지개혁안 처리 문제는 민주·공화 양당의 치열한 ‘이념 전쟁’이라는 측면 이외에 공화당내 ‘대선 후보 경쟁’이라는 요인이 얽혀 있는 것이다.

복지 개혁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미국 연방 정부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도한 복지비 지출은 갈수록 연방 정부의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현재 연방 정부의 연간 재정 적자 가운데 사회 복지비 지출로 인한 적자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계속 복지 혜택에 기대어 살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등의 비판과 함께 현행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봅 돌, 수정안 마련해 강경·온건파 동시 공략

지난 9월 깅리치를 중심으로 한 신진 보수 세력은 전반적인 사회 개혁을 다룬 10개 조항(재정 적자 해소, 복지 제도 개혁, 정치 로비 제도 개혁,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지나친 환경 보호 배제, 상하 양원 의원 임기 제한 등)을 담은 이른바 ‘미국과의 계약’을 표방하기에 이르렀다. 두 달 뒤 공화당은 이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보수 혁명’으로 일컬어진 중간 선거에서 승리해 상·하 양원을 장악했다.

깅리치 의장이 주도하는 하원은 올해 1월부터 석 달 동안 10개 항 가운데 의원 임기 제한 조항만을 빼고 나머지 9개 항과 관련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6월 하원에 비해 보수적인 상원에 상정된 복지개혁안은 그동안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다 막판에 공화당의 자중지란 때문에 법안 처리에 제동이 걸렸다.

돌 총무는 현재 공화당 상원 의원 54명 가운데 36명의 지지만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의원이 한 사람도 동조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할 때 과반수인 51명의 지지를 얻으려면 15명을 더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최근 그는 강경 보수파와 온건파로부터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수정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램 의원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비시민권자에게 주는 지원을 삭감하자고 제안하고, 온건파를 달래기 위해서는 직장 여성의 아이들 보살피기와 더불어 각 주가 자체 재정으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지원 노력을 의무적으로 하게 한다는 내용을 수정안에 담을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거부권 행사할까

이 개혁안이 상원을 통과할지 여부는 돌 총무의 정치적 입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만약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그것 하나 상원에서 합의안을 이끌어 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이끌 수 있을 것인가’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9월에 개회하면 1주일 내에 복지개혁안을 처리하도록 하겠다. 만약 그동안 통과되지 않으면 복지개혁안을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의료보험제도, 저소득자에 대한 의료보장제도, 그리고 세금 삭감안과 함께 예산안에 연계해 ‘조정안’으로 처리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96년 회계 연도는 올 10월1일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내년 예산안은 9월 말까지 의회를 통과해야 한다.

이 개혁안이 상원을 통과하면 하원이 통과시킨 안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동일안이 나오면, 이를 다시 상·하 양원에서 통과시킨 뒤 클린턴 대통령에게 제출한다. 클린턴이 이 안에 서명할지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클린턴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상·하 양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지지로 다시 통과시키면 클린턴의 거부권은 묵살된다. 돌 의원의 수정안은 9월 회기 중에 상원을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 관측통들은 설령 이번에 복지개혁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머지않아 어떤 형태로든 통과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사회보장 제도가 파산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일각의 우려와 함께 지금의 제도에 허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쟁점인 복지개혁안이 어떤 모양새를 드러낼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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