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장사’ 총력전 펼치나
  • 워싱턴·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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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 취임식 행사 ‘돈잔치’ 구설…온라인 예매 40분 만에 절반 나가
내년 1월2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취임식 행사를 앞두고 요즘 워싱턴 정가에는 백악관의 ‘티켓 장사’가 대단한 화젯거리다. 현재 취임식 행사와 각종 축하 무도회를 개최하는 데 필요한 소요액은 최소 4천만 달러로 추산된다. 이 엄청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취임위원회측은 친공화계 기업가와 부유한 개인들을 상대로 모금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이라크 전후 치안 유지를 위해 13만8천명의 미군이 이라크에 배치되어 있는 준전시 상황에서 이런 허례허식이 과연 필요한가 하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부시 대통령의 2기 취임 행사는 1기 때보다 훨씬 초호화판이 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취임위원회가 지난 12월8일 기업 및 개인에게 공식 발송한 초청장 수천 장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5만 달러짜리 티켓이 포함된 ‘VIP 초청장’. 이 초청장의 주된 대상자는 친공화계 기업의 오너들인데 값이 이처럼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초청장에는 대통령·부통령 내외와 한 테이블에서 앉아 얼굴을 마주하며 오찬을 즐길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지는 티켓이 2장 들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취임식 전야인 1월19일 대통령과 부통령 내외가 참석하는 촛불 만찬 참석용 티켓도 20장이나 들어 있다. 기업주 처지에서 미국 최고 권력자와 악수하고 식사하며 얼굴을 익히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인 것이다. 미국의 민간 정치 감시 기구인 정치반응센터(CRP) 자료에 따르면, 굴지의 석유회사인 BP 아모코 사와 텍사코 사, 에너지 회사인 엔론 사 등을 포함해 최소 45개 기업의 오너가 4년 전 이런 표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가운데 엔론의 오너였던 케네스 레이는 부실 회계 경영으로 단죄를 받은 바 있다.

비록 25만 달러짜리만큼 최고의 진가를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10만 달러짜리 초청장도 인기가 대단하다. 이 초청장에는 취임식 전날 수도 워싱턴 시내의 세 곳에서 대통령·부통령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벌어질 촛불 만찬은 물론, 부시 대통령의 쌍둥이 딸이 주최하는 콘서트 등에 참석하는 특전이 주어진 여러 장의 티켓이 들어 있다. 25만 달러짜리 초청장과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대통령·부통령 내외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할 수 있는 티켓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무도회 입장권 프리미엄 붙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취임위원회측은 ‘모든 취임 행사 관련 유인물에 귀하 이름과 귀하의 협조 내용이 표시될 것’이라며 돈 많은 부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정치반응센터측에 따르면, 4년 전 부시 1기 취임 행사 때 10만 달러짜리 표를 구입한 알부자나 기업주는 최소 1백68명에 이르렀다.

물론 비싼 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취임식 당일 저녁에는 대형 축하 무도회가 모두 아홉 군데에서 열린다. 이 모임의 입장표는 장당 1백25 달러로, 관심 있는 일반 대중도 구입할 수 있다. 이런 무도회 표는 지난 11월 중순부터 판매가 시작되어 이미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인터넷 경매 전문 포털 사이트인 eBay에는 현재 취임식 당일 저녁 무도회 입장권 2장을 무려 1천5백50 달러, 8장은 6천1백 달러에 판다는 매물이 나와 있다. ‘프리미엄’이 엄청나게 붙은 것이다.

설마 이런 암표를 살 사람이 있을까 의아해 할지도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정가의 수십, 수백 배를 불러도 사겠다는 졸부들이 미국에는 얼마든지 있다. 무도회 9개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 주와 체니의 고향인 와이오밍 주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무도회로, 4년 전에도 가장 성황을 이룬 바 있다.

‘따뜻한 전시 대통령’ 이미지 제고 노려

또 하나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게 될 ‘최고 통수권자 무도회(Commander-in-Chief Ball)’도 눈길을 끈다. 이 무도회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에서 막 임무 교대를 하고 귀국한 장병들을 포함해 약 2천명이 참석할 예정인데, 일부에서는 이 무도회가 호사스런 축하 무도회에 쏠린 일반의 따가운 시선을 무마하는 동시에 ‘따뜻한 전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노린 다목적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취임식 당일말고도 취임식 전날 워싱턴 시내 곳곳에서 펼쳐지는 축하 무도회도 관심거리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텍사스 주 협회(Texas State Society)’가 시내 매리옷 워드먼 파크 호텔에서 주최하는 무도회로 티켓 가격이 장당 1천4백95 달러. 이처럼 비싼데도 지난 11월 중순 온라인으로 예매를 개시하자 40분 만에 절반이 나갔다. 이 무도회가 그토록 인기였던 까닭은 텍사스 주 출신인 부시 대통령의 참석이 100%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부시 대통령은 이런 축하 무도회에 기껏해야 몇분 정도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자리를 통해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준 데 대해 감사하는 인사 한두 마디를 건네는 것이다.

원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무도회는 1809년 제4대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의 부인인 돌리 여사가 4백 명을 초대해 조촐한 무도회를 개최한 것이 효시였다.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무도회 행사에 필요한 돈은 기업들의 후원과 티켓 판매를 통해 마련되었다. 이같은 무도회가 갈수록 호화판 일색으로 변하자 1977년 도덕성 회복을 강조하며 취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대폭 간소화했다. 하지만 1989년 현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H. 부시가 취임하면서 호사스런 무도회가 부활했으며, 2001년 그의 아들 W. 부시의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해 열린 각종 축하 무도회에는 무려 5만 명이나 몰려 초호화판이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떠들썩한 잔치 준비를 지켜보는 미국인 일반의 시선은 곱지 않다. 민간 정치부패감시기구인 ‘민주 21’의 프레드 워타이머 대표는 “대통령 취임식은 모든 시민을 위한 행사가 돼야 한다. 돈으로 얼마짜리 표를 사고 취임행사에 참석하느냐를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행태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일각의 비판에 대해 대통령취임위원회의 스티브 쉬미트 공보국장은 “취임 관련 행사는 전세계가 지켜보는 중요한 의식이지, 단순히 놀고 먹고 춤추는 행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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