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3.12.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인의 전통 얼굴과 어디가 닮았고 어떻게 다른가
사이버 세상에서 제2의 자아를 나타내는 ‘아바타’라는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네티즌들은 돈을 들여 아바타를 꾸미고 자기 분신처럼 이용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아바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실제 얼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아바타 대신 자기 얼굴을 내밀고 짝을 구하는가 하면, 얼굴을 걸고 메신저로 접속하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내건 얼굴은 그냥 얼굴이 아니다. ‘캠발’(웹 카메라에 잘 찍히기 위해 적절히 조작하는 것)이라는 ‘사이버 화장’을 거친 얼굴이다. 웹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15° 각도로 틀어 45° 위를 바라보면서 입을 작게 모아 입술을 도톰하게 만들고 눈을 깜찍하게 뜨면서 ‘캠발’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것쯤은 이제 ‘인터넷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네티즌들은 인터넷 여기저기에 흩뿌려 놓는다. 흩뿌려진 사진에 네티즌들이 관심을 나타내 어느 날 갑자기 ‘얼짱’에 등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에게 얼짱은 ‘부와 명예’를 뜻한다. 얼짱에 뽑히는 것이 미스코리아에 뽑히는 것보다 연예계에 데뷔할 기회가 더 많고 성공할 확률도 더 높기 때문이다. 얼짱 출신인 박한별과 임수정은 벌써 스크린의 스타로 등극했다. 얼짱의 꿈을 좇아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뿌려놓은 얼굴 사진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대표적인 얼짱 인터넷 카페에는 수십만 회원이 가입해 있고, 2천여 얼짱 카페가 난립했다.

얼짱 카페에 올라오는 얼굴 사진은 대부분 비슷하다. 귀엽고 깜찍한 그 얼굴들은 세상의 어려움이란 모르겠다는 듯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모두가 깜찍한 미소만 짓고 있는 신세대의 얼굴 문화, 과연 얼짱은 우리의 전통적인 얼굴 문화와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를까?
일단 미소라는 면에서 얼짱 문화는 우리의 전통적인 얼굴 문화와 닮았다. 고대 얼굴 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불상이다. 어느 민족이든 신의 얼굴을 형상화할 때 얼굴에 대한 가치관이 투영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삼국 시대까지 우리의 불상은 모두 웃음 띤 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물론 다른 불상들도 대부분 웃음을 머금고 있다.

불상뿐만이 아니다. 경주 영묘사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얼굴무늬 수막새를 비롯해 많은 토용들이 웃는 형상을 하고 있다. 처용상을 비롯해 심지어 액운을 쫓는 무신도와 마을을 지키는 장승과 돌하루방의 얼굴에서도 미소를 찾을 수 있다. 하회별신굿놀이에 쓰이는 탈도 예외가 아니다. 선비탈과 이매탈, 중탈과 부네탈 모두 웃는 상이다.

우리의 얼굴 문화를 대표하는 미소는 고려 시대 이후 남성 중심 사회가 형성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여성보다 공적 생활을 하는 남성을 위주로 묘사하게 되면서, 웃는 얼굴보다 권위적인 얼굴이 일반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고려 시대로 들어서면 불상도 무뚝뚝한 인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진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우리의 얼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예이다. 주로 누구를 그리고, 어떻게 그리느냐를 살피면 그 시대의 가치관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한중일 초상화대전 ‘위대한 얼굴’>(2003년 12월23일부터)을 보면 조선 시대 초상화의 일반적인 특성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임금을 그린 어진, 국가의 공신을 그린 공신상, 학식이 높은 노학자를 그린 기로도상(화첩으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가 좋았다), 사대부상, 여인상(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여성의 초상이 거의 그려지지 않았다), 승려상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 대니얼 맥릴은 <얼굴>에서 ‘얼굴은 권력의 아이콘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상을 얼굴에 투영한다’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 초상화의 대상이 되는 모델들은 대부분 영향력이 있거나 존경받는 사람으로 그 시대의 ‘스타’들이다. 이들을 그리는 방식을 살피면 그 시대 가치관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철저하게 사실주의에 입각해 그려졌다.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대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얼굴의 잔주름이나 흉터는 물론 기미, 주근깨, 천연두 자국이나 검버섯까지도 전부 그대로 그렸다. 그림을 보고 그 사람의 병력까지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그려졌다.

정확히 그리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긴 것은 대상의 심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성리학이 고도로 발달했던 조선 사회에서는 내면의 수양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초상화에서는 한 인물의 가장 고귀한 순간을 담으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조선 시대 초상화는 한·중·일 초상화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인정받는다.
조선 성리학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초상화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이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졌던 조선 사회에서는 자신을 그리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자화상을 남긴 화가는 문인화가였던 윤두서와 강세황뿐이다. 마치 자신과 대결하려는 듯한 표정으로 팽팽한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윤두서의 자화상은, 내면을 드러내는 조선 초상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조선의 초상화에 비해 청의 초상화는 다소 장식적이며 자기 과시적이다. 15° 각도의 옆 얼굴을 그린 조선의 초상화와 달리 주로 정면상을 그린 청의 초상화는 대상을 부각하기 위해 과장을 많이 했다. 조선의 초상화가 얼굴 이외의 부분을 간략하게 그린 데 반해 청의 초상화는 배경을 최대한 화려하게 그렸다. 부귀를 나타내는 코와 광대뼈를 과장되게 표현하는가 하면, 실제 벼슬보다 높은 품계의 관복을 그려 넣기도 했다.

일본 막부 시대 초상화 역시 조선의 초상화와 다르다. 완전 군장을 한 쇼군과 다이묘를 주로 그린 일본의 초상화는 어깨선을 과장하여 무인적 기상을 나타내는 데 비중을 두었다. 대신 애완견이나 완상물을 초상화에 넣어서 전체적인 이미지가 경직되는 것을 막았다. 일본 초상화는 무사 초상보다 중국 화풍의 영향을 받은 승려 초상에서 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이지 않는 내면보다 보이는 외면에 더 신경을 쓰는 최근의 얼짱 사진 찍기 문화는 우리의 초상화 전통보다는 청나라의 초상화 전통에 가깝다. 특히 스타 따라잡기에 열중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과장하는 이들의 행태는, 초상화를 왜곡해 신분 상승을 맛보았던 청나라의 전통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얼짱 신드롬이 번진 이후 얼짱 문화는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1기 얼짱에 이어 2기 얼짱이 뽑혔고 ‘초딩 얼짱’ ‘아기 얼짱’ ‘스포츠 얼짱’ 등 장르 세분화가 나타나고 있다. 얼짱 카페 주인이 자기 사이트에서 뽑힌 얼짱들과 함께 연예 기획사를 차리겠다고 나설 정도다.

초기에 얼짱들이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스타와 달리 자기 팬들과 상호 교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주문형 스타’이면서 팬들이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바꾸어가는 ‘맞춤형 스타’로서 얼짱은 ‘대안 스타’의 기능을 가졌다. 얼짱 문화는 팬덤 현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얼굴 사진 한 번으로 스타가 되겠다는 신세대들의 ‘로또 근성’은 얼짱 문화를 빠르게 변질시켰다. 매니저들이 기획사의 신인 연기자를 얼짱 카페에 등록시켜 억지 얼짱으로 키우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얼짱 카페를 차리고 얼짱을 뽑아 자신들이 뽑은 얼짱이 대표 얼짱이라고 우긴다. 무분별한 얼짱 문화에 대항해 ‘안티 얼짱’이 생길 만큼 얼짱 문화는 혼탁해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