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20세기의 신화> 출판한 김학철씨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6.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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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씨, 65년에 쓴 모택동 비판 소설 <20세기의 신화> 출판…“중국 돌아가면 어떤 사태 벌어질지…”
지난 12월12일, 밖에서는 12·12 군사 반란 사건을 반추하고 있었지만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연회장 안에서는 또 다른 ‘12·12’가 기념되고 있었다. 중국 길림성 연길 시에 사는 노혁명가이자 동포 작가인 김학철씨(81)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것이다. 탈고한 지 31년 9개월 만에 빛을 본 <20세기의 신화>(창작과비평사)에 대한 한국 문학계의 박수에는 여러 겹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55년 전인 41년 12월12일, 조선의용대 소속 김학철은 중국 하북성 원시현 호가장 전투에서 일본군에 포로가 되었다. 그후 나가사키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그 안에서 광복을 맞고 귀국한 것이었다. 김학철씨에게 지난 12월12일은, 항일 무장투쟁사를 돌아보는 날이면서, 50년대 말 중국을 뒤흔든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과 그 이후 10년 동안의 옥살이를 돌이키는 뜻깊은 날이었다. 새삼 ‘신화’를 반대한 날이었다.

창작과비평사 발행인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인 백낙청 교수(서울대·문학 평론가)는 축사에서 <20세기의 신화> 출판이 민족 문학의 부피를 확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 민족 문학은 지나치게 한반도 위주였다. 김학철 선생은 중국 국적 작가이지만, 우리의 불행한 역사가 반영된 선생의 삶과 작품은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 문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출판기념회에는 서울대 법대학장 시절부터 김학철씨와 교류해온 이수성 국무총리를 비롯해 강만길 교수(고려대·사학), 고 은 시인 등이 참석했다. 이총리는 “선생의 문학관과 삶에서 한 인간의 진정한 자부심과 민족과 사회에 대한 열정과 헌신, 그리고 역경을 헤치고 이룩한 성취를 보면서 감동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고 은씨는 벽초 홍명희 이래 살아 있는 우리 민족어를 계승하고 있다며 김학철씨의 문학 세계와 그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인민의 태양’에 반기

원고 상태의 소설 <20세기의 신화>는 50년대 후반 중국 전역을 뒤흔든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과 인민공사(사실상의 강제수용소)의 허울을 정면에서 뒤집은 소설이었다. 소설 후기에도 밝히듯이, 김학철씨는 모택동 1인 독재의 해악을 낱낱이 폭로하는 소설을 쓰기로 결단했으면서도 ‘깜냥 없는 속이 자꾸 후둘후둘 떨리기만 했다’. 당시 6억5천만 인민의 신이자 태양이던 모택동에게 반기를 드는 일은 자원해서 총살대에 서는 것과 다름없었다.

46년 북한으로 넘어가 <로동신문> 기자로 활약하다가 50년 숙청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한 그에게 모택동은 신이었다. ‘신의 아들’이 신화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은 대약진 운동과 인민공사의 여파가 굶주림과 정치적 압박으로 나타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부터였다. 작가는 1년 동안 ‘신들린 듯이 볼펜을 굴린’ 끝에 전·후편으로 구성된 1천3백50장짜리 장편을 완성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출판을 염두에 두고 전편을 일어로 옮길 즈음, 한밤중에 들이닥친 홍위병들에게 소설 원고가 발각되고 말았다. 65년 3월이었다.

<20세기의 신화>는 57년 중국 여기저기에 인민공사가 건설되던 대약진 시기를 배경으로 모택동 정권이 조작한 이른바 ‘우파분자’들의 고뇌 어린 삶을 통해 모택동 1인 독재의 실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당시 모택동 정권이 전개한 반우파 투쟁에서 우파 분자를 가려내는 기준이란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 식이었으니, 다음과 같았다.

막걸리집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고 하면 ‘사회주의 중국을 생지옥 남조선만도 못하게 추화(醜化)했으니까 부르주아 우파’요, 시(詩)에서 두만강 건너 고향이 그립다고 노래하면 그 사람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조국이 아니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극악한 민족주의 분자’라는 식이었다(소설에서 이같은 대목을 읽다 보면, 70~80년대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떠오른다).

모택동을 찬양하는 시를 비판했다가 인민공사에 들어간 <아리랑> 편집자 임일평과 자치주 작가협회 주석 심조광 등 반정부 지식인이 등장해 당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중국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이 소설은 ‘진시황+트로츠키+모택동, 모택동-반소 히스테리=굶주림’등 모택동을 비판하는 전단이 모택동 입상에 붙어 있는 장면에서 끝난다.
홍위병에 원고 발각돼 10년간 감옥살이

미발표 소설, 그러니까 몇몇 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읽어 보지 않은 ‘소설’은 문화대혁명기 중국을 뒤흔든 필화 사건으로 번졌다. 67~77년 10년 동안 만기 복역한 다음 출소했지만 이후 80년까지 3년 동안 복권되지 않았다. “만일 그때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 원고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김학철씨는 말했다.

<20세기의 신화> 원고는 중국 당국이 보기에 중요한 증거물이었다. 그래서 보관 상태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80년, 3차 공판 끝에 복권되었지만 당국은 7년이 지난 87년에야 원고를 돌려주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발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을 생각하면 힘이 솟지만, 사실 중국에 다시 돌아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야 하는 것이다. 30년 넘게 이 글을 발표하지 못한 데에는 내 책임도 있다”라고 김학철씨는 말했다.

김학철씨는 신화를 배척한다. 그는 항일 무장투쟁사가 과장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날 나는 방심하다가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 면목이 없다.” 김학철씨는 백전백승이나 대첩과 같은 신화에 반대한다. 모택동이나 김일성이 주창해온 지상 낙원도 그가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신화이다. “이같은 신화들이 정확하게 바로잡힐 때 번영한 사회가 가능하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김학철씨는 81년 예순여섯 나이에 글쓰기를 재개해 15년째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88년 국내에 소개된 장편 <해란강아 말하라>는 54년 작품이지만 소설 <격정시대>와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은 80년대 이후에 썼다. 요즘에는 정치성이 강한 칼럼, 즉 사회주의의 잘못된 부분, 백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모든 것들을 반대하는 글을 연변 지역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지난 12월8일 서울을 방문해 오는 12월24일 연길로 돌아가는 그는 최근 커다란 관심사로 떠오른 조선족 동포 사기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포들이 잘 살지 못한다고 너무 냉대하는 것 같다. 중국이나 일본의 해외 교포 정책이 얼마나 철저한가를 배웠으면 한다. 마약 밀반입·절도 등 조선족 동포의 잘못이 없지 않지만 우리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정책이 관대하고 합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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