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한국 건축 100년의 상처와 풍경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9.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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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 100년전>, 희귀 자료 3백50여점 전시…문제 반성하고 과제 설정하는 자리
개항 이후 100년간 지은 건축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건축인들이 ‘건축 문화의 해’를 기념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연 것이다.

‘99 한국 건축 문화의 해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정철)와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 전시회의 이름은 <한국 건축 100년전>. 지난 8월31일 시작하여 10월28일까지 열리게 될 이 전시회는 오는 11월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열릴 ‘99 한국 건축 문화 엑스포’와 함께, 올해 마련된 건축계 최대의 행사이다.

건축학계와 건축인들은 이번 행사를 위해 꼬박 3년 동안 준비했다. 한국 건축 100년사를 총정리하고, 21세기 건축 문화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숱한 토론과 토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전시회에 얼굴을 내민 작품은 총 3백50여 점. 김정동 교수(목원대), 김영준(시간여행 대표)·김기억(전 철도박물관장) 씨 등 일부 건축 관련 인사들은 각종 설계 도면·지도·건축 도서·기록 사진 등 애지중지하던 희귀 자료들을 내놓았다(82쪽 딸린 기사 참조).

조직위원회는 전시회를 시작하기 전에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이번 행사를 통해 △새 시대가 요구하는 미래 건축 문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세계 건축의 흐름에서 한국 건축의 진정한 좌표를 설정하며 △건축이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의 한 갈래라는 점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아직 속단하기 어렵지만 주최측의 이같은 목표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대체로 달성될 듯하다.

20~30년대 건축, 타율적 근대화의 역사 간직

시민들은 옛 조선총독부(1926년 완공)를 비롯해 20∼30년대에 지어진 관청 청사·공공 건물·철도 역사(驛舍)·은행·학교·교회당 등 각종 건축물의 빛 바랜 기록 사진을 통해, 일제가 이 땅에서 자행한 수탈의 역사와 타율적 근대화의 상처를 반추할 수 있다. 물론 전시된 ‘작품’ 가운데에는 경성역(서울역·1925년)을 비롯해 오늘날에도 그 기능을 멈추지 않고 도도하게 명맥을 이어온 건축물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다른 데 있다. 전시회는 그 숱한 타율적 근대화의 흔적과 증거를 한자리에 모아 자칫 멸실(滅失)되기 쉬운 ‘실패한 역사’의 아픈 경험을 돌이켜보게 한다. 반면 우정국과 독립문, 이화학당·배재학당을 비롯한 학교 건물, 비록 일본인이 건축했지만 민족 운동의 본산이 되었던 천도교 중앙교당(수운회관) 등은‘자생적 근대화’를 이루려는 이 시기 한국인의 눈물 겨운 노력을 보여준다.

집중과 대조의 파괴력. 그것은 건축인에게는 물론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일반 시민에게 이번 전시회가 베풀어 주는 미덕이다.

전화의 잿더미에서 경제 건설의 나팔을 불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개발 시대의 기념비’들은 또한 어떤가. 정인하 교수(한양대)는 ‘한국 현대 건축, 1955년부터 현재까지’라는 글에서, 이 기간에 일어난 다양한 건축 현상을‘새로운 건축의 이념형을 찾아서’라고 함축했다. 준공 당시 국내 최고를 자랑했던 3·1빌딩(김중업), 전후 최초로 지어진 국가 차원의 기념 건축인 자유센터(김수근·1963년), 설계될 무렵 한국 기술로서는 실현키 어려운 80m짜리 대형 철골돔을 채택해 화제가 되었던 장충체육관(김정수)이 그렇고, 공간 사옥(1971년)·세종문화회관(엄덕문)·제주대학 본관·주한 프랑스대사관은 모두 ‘새로운 이념형을 찾기 위한 노력’의 증거였던 셈이다.
건축인들은 현대 건축의 경향을 크게 2개의 축으로 정리했다. 하나는 장소성·공간·구축성 따위 건축인들이 상정했던‘건축적 가치’이다. 현대 건축은 또한 시간적 흐름이라는 축에 따라 80년대를 분기점으로 하여 두 시기로 나뉜다. 건축인들은 이 2개의 축을 연결하여 현대 건축의 ‘새로운 이념형 찾기’ 노력을 △모더니티 추구 △정체성 모색과 지역성 탐구 △도시화에 따른 주거 변모 △건축 다원화라는 네 가지 주제로 압축했다. 다시 말해 건축인들은 한편으로는 서양의 근대 건축을 한국 토양에 알맞게 수용하는 작업을 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 팽창과 주거난에 따른 사회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엄청난 물량의 주택과 도시 공공 시설을 건설하는 데 부심했다.

예술의전당과 독립기념관의 차이점

주로 권위 있는 단체가 수여한 건축상 수상작이 몰려 있는 제9 주제(건축 다원화) 전시관은 건축인들이 ‘새로운 이념형 찾기’에서 일군 성취를 보여준다. 6·3빌딩으로 더 잘 알려진 대한생명 본사, 삼성의료원, 종합무역투자정보연구센터 등은 합리성을 잘 구현한 건축물로 꼽힌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국제센터빌딩(서울 용산구 한강로), 88년 완공된 예술의전당, 꽃잎을 형상화한 이화여대박물관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로 지목된다. 아울러 올림픽역도경기장과 청주국제공항 등은 기술 미학의 ‘대표 주자’로, 공간 신사옥과 씨네플러스 등은 장소성을 잘 드러낸 건축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는 지난 50년간 건축인들의 이같은 정체성 찾기 노력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건축인들의 의지는 군사 정권에서 문화 주체의 요구에 의해 번번이 꺾였다. 이른바 ‘수용적 지역주의’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로 설명되는 일련의 흐름은 바로 이같은 군사 정권 시대 건축 문화를 대변한다. 국기원(1974년)·경주박물관(1975년)으로부터 시작해, 5공화국 때 독립기념관으로 이어지는 건축물에서 시민들은 군사 정권의 우격다짐과 건축인들의 초라한 ‘수용’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다.

건축가들, 건축계의 한계·고민 직접 토로

건축인 스스로 인구 팽창에 따른 주거난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한동안 정부가 발주한 건물 설계가 연고에 따라 특정인에게 의뢰되는‘악습’이 생겨나기도 했다. 비록 전시장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대형 참사를 일으킨 삼풍백화점·성수대교는 바로 물량주의와 속도전이 판을 치던 시대에 건축계의 ‘슬픈 자화상’임을 일깨워준다. 또 몽학재·부암동주택·자명당 등 최근 지어진 개인 주택은 도시 주거 건축 면에서 이룬 건축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축인의 배려로부터 소외된 대다수 시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이번 전시회는 바로 이같은 경험 속에서 건축인 스스로가 지난 100년 간의 건축 문화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과제를 설정하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건축인은 80년 이후부터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건축계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른바 ‘해체 건축’이라는 새로운 사조에 대해서 스스로 의문을 제기한다. 즉 이같은 탈근대주의가 근대 건축의 철저한 비판에 따른 것이 아니라, 현대 서양의 이론적 성과만을 직수입해 이를 직선적으로 소개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김광현 교수(서울대)는 이에 대해 “한국 건축의 최대 과제는 근대 건축 그 자체를 되묻고, 그 잠재적 가능성을 자신의 처지에서 더 선명하게 부각하는 데 있다”라고 잘라 말한다.

한국 건축 100년전(展)은 이처럼 건축인들이 건축계의 한계와 고민을 일반 시민에게 직접 들려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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