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엘튼 존의 한계
  • 임진모(팝 칼럼니스트)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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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하는 고뇌와 거친 감정 점점 약해져… 차트 40위 진입은 26년째 계속
올해 마흔여덟 살인 노장 엘튼 존의 성공은 우리 대중음악계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에게는 그처럼 높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중견 가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온 그의 <라이온 킹> 사운드 트랙 앨범은 미국에서만 7백만장이 넘게 팔려나가 판매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나이 먹은 사람도 끼여드는 그 같은 팝시장의 다층성은 늘상 팝의 유행을 복사하기에 바쁜 우리가 진짜‘표절’해야 할 영·미 팝계의 건강함이 아닐 수 없다.

엘튼 존은 ‘영광의 생존자’이다. 정글 같은 팝계를 사반 세기에 걸쳐 롱런한 것만으로도 그는 위대하다. 그는 모든 싸움에서 이겼고. 지금도 비상을 거듭하고 있다. 가수 생활 25주년 기념 음반으로 포장된 그의 새 앨범 <메이드 인 잉글랜드(Made in England)>는 이 점에서 승리의 자축이기도 하다.

록과 이별하고 스탠다드 팝에 안착

엘튼 존은 지금까지 격전을 치러 오면서 몇 가지 귀중한 전리품도 얻었다. 그 하나가 ‘최장기 연속 톱 40 히트곡 생산’이라는 기록일 것이다. 그는 93년에 이미 엘비스 프레슬리의 벽을 넘어, 24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차트 40위 이상의 히트곡을 내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올해 신보에서 발표한 싱글 <믿음(Believe)> 또한 10위권에 진입해 그 햇수는 26년으로 불어났다. 아마도 이 기록을 깨기란 앞으로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같은 기록은 하나의 조건을 전제로 해야 했다. 매년 신곡 앨범을 내야만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해마다 마치 기계로 곡을 찍어내듯 신보 하나씩을 뚝딱 만들어냈다. 70년대 초반 전성기에는 1년에 3장을 쏟아낸 적도 있다. 이 왕성한 생산력을 아티스트의 성실성이라는 측면에서 극구 칭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뚜른 시각으로는 (음악 만들 능력을) ‘가진 자의 과소비’행각으로 비칠 소지도 다분하다. 그것은 또한 졸속 제작에 따른 질적 저하나 ‘완성도 부족’이 따르지 않겠느냐는 의혹을 부르게 된다.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로커’라 부른다. 과거에 그가 보인 광포한 피아노 연주나 기행은 분명 반란과 폭발을 특질로 하는 록의 전형적 제스처였다. 그러나 그는 실상 오래전 그러한 록의 ‘쇼크 미학’과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는 중산층의 격조와 결탁한 ‘스탠다드 팝’으로 색깔을 바꾸어 안전지대에 정착했다. <타임>은 얼마전 그의 새로운 전성기가 도래했음을 대대적으로 축하해 주면서도 “그에게는 실재하는 록스타의 고뇌와 거친 감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개인적 분노는 아직 펄펄 살아 있다. 영국 언론에 대한 분개는 유명하다(“그들은 협잡꾼들이며 지구의 깡패들이다”). 자신을 ‘문란한 성도착증 환자’로 내몰아 공적 ‘흥미의 대사(Ambassador of Fun)’로 앉힌 언론에 그 나이가 되도록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타이틀 곡은 바로 ‘난 그런 치사한 영국에서 만들어졌다’는 빈정거림이다. 하지만 이같은 분개가 록의 위대한 세대적 분노와 사회적 관점을 표출하지는 못한다. 그는 사반 세기 동안 그의 시각을 신변잡기로부터 해방시킨 적이 없었다.

그는 스탠다드 팝이라는 안락을 얻은 대신 록의 도전을 잃었다. 자신을 지키는 대신 많은 제3자를 놓쳤다. 중년과 어린이를 확보했을지라도 대중 음악의 주체인 청춘을 저버리고 있다. 엘튼 존의 음악과 그 성공은 실로 보수 반동기에 처한 이 시대 팝 음악의 현황을 알려주는 동시에 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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