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전통 무늬를 되살린다
  • 吳允鉉 기자 ()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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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양대전에서 천여 점 ‘새 빛’…현대화·고급화 절실
한국인의 나쁜 습성 가운데 무슨 일이든 빨리 처리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 이 습성의 밑바닥에는 우리 것을 폄하하고 경멸하는 ‘자학’이 깔려 있는데, 이런 성정 탓에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오던 우리의 ‘전통’을 쉽게 버리고 빠르게 잃어버렸다. 이는 특히 문화에서 두드러진다. 체할 듯이 급히 받아들인 ‘외제’로 말미암아 우리 전통 문화는 기억의 뒤안길에 처박혔다.

그러나 ‘문화의 기억력’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우리의 전통 문화를 새롭게 발굴하는 작업이 최근 들어 우리 주변에서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이다. 8월22일~9월30일 경복궁 안에 있는 전통공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문양대전’도 그러한 작업 중의 하나이다. 이 전시회에는 선사 시대에서 현대까지 우리의 전통 무늬 1천2백여 점이 실물과 사진·탁본으로 선보인다.
우주의 섭리 담은 전통 무늬

문양(무늬)은 크게 기하학적 무늬, 자연 무늬, 종교 및 신앙 관련 무늬, 동·식물 무늬, 길상 무늬로 나뉜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문양전에는 수십 가지 무늬 천여 점과 함께 연꽃·도깨비·구름·나비 무늬의 개별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전시해 각 시대의 미적 감각과 표현 능력을 비교해 볼 수 있게 했다. 또 국화 사군자 소나무 당초 학 연꽃 무늬를 새겨넣은 도자기·나전칠기·보자기 들을 전시해 우리 조상들이 생활 속에서 즐긴 오밀조밀한 조형 언어들을 만날 수 있게 했다.

무늬의 기원은 원시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인간에게는 본래부터 자기의 주변을 꾸미려는 장식 욕구와,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려고 하는 상징 본능이 있다. 그같은 심리는 결국 인간들로 하여금 바위·토기·목기·직물 따위에 무늬를 그려넣게 하였다. 인간은 그 작업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학자들은 그러한 인간 본능이 ‘예술’의 근원이라고 단정짓기도 한다.

전시회를 기획한 전통공예미술관 林永周 관장은 옛 무늬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무늬의 실체는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그것보다는 무늬가 나타내는 상징에 있다. 그러므로 오래된 유물들에 나타나는 여러 모양의 무늬는 그것이 아무리 단순하더라도 시대상과 우주의 섭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임관장의 지적처럼 무늬는 한 민족의 문화적 실체와 그 민족이 가진 가치와 감정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는 표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늬 안에서 그 무늬가 나타났던 시대의 신앙과 사회상을 읽어낼 수 있다. 우리 무늬에서 만나는 불교·유교·도교 풍의 세계는 우리 민족의 문화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근대화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통 무늬가 지닌 상징성은 우리의 생활 공간 여기저기에 그대로 이용되었다. 번개 무늬는 비를, 세모 무늬는 다산과 동물의 여성성을, 동그라미 무늬는 일월성신을, 소용돌이 무늬는 죽음이나 우주의 무한함을, 바위와 거북 무늬는 장수를, 포도는 자손의 번성을, 박쥐는 부귀를 뜻했다. 그것들을 대문이나 담벼락에 새겨 가정의 복락과 안녕을 기원했던 것이다. 또 생활 도구나 옷감·기물·공예·건축·회화 등에 그려넣어 보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그렇게 웅숭 깊은 상징을 담고 있는 우리의 전통 무늬를 보기란 쉽지 않다. 대신 우리 주위를 둘러싼 무늬는 단지 아름다움을 꾸미기 위해 생겨난 무미건조한 장식뿐이다.

길거리에 나서 보면, 사람이 무늬 안에 갇혀 있다 할 정도로 많은 무늬가 넘실거린다. 스트라이프(줄) 무늬, 체크 무늬, 도트(땡땡이) 무늬, 페이즐리(올챙이) 무늬, 플로랄(꽃) 무늬, 모양이 뒤죽박죽인 이름 없는 무늬…. 심지어 외국 배우 얼굴과 휘갈겨 쓴 영어 무늬까지 한국의 거리를 누빈다.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벽지 커튼 이불 장롱 장판을 장식한 것도 형태만을 보여주는 가치 없는 무늬뿐이다. 이런 무늬는 다른 각광 받는 ‘외제’처럼 물 건너 온 것들이고, 그저 상품을 더 꾸미고 가치 있게 보이게 하려고 개발된 포장일 뿐이다.
“한국 전통 무늬는 현대 무늬보다 더 강렬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전통 무늬는 영원히 ‘불귀의 객’이 되었는가. 그것을 현대 감각에 맞게 재창조해 낼 수는 없을까. 오랫동안 우리 전통 무늬를 현대화해 온 안상수 교수(홍익대·시각디자인)는 그 가능성을 밝게 내다본다. “우리의 전통 무늬는 현대의 무늬보다 더 대담하고 힘이 넘친다. 때문에 패션 업계나 생활 도구를 만드는 업계가 그것을 더 새롭고 현대적으로 재창조한다면 얼마든지 눈길을 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우리 마음 속에 뿌리 깊이 박힌 우리 문화에 대한 비하심을 버려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패션 디자이너 이신우씨 같은 경우에는 70년대 말부터 우리 무늬를 이용해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는 ‘무늬 전문가’이다. 그는 성공의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무늬처럼 잘 들어맞는 분야는 없다. 내가 우리 무늬를 써서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도 그것이 외국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씨가 우리 무늬를 있는 그대로 새겨넣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현대 무늬보다 더 세련되게 만드는 작업을 줄기차게 해왔기 때문에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몇해 전 파리컬렉션에 내놓은 의상에다 태양 안에 산다는 삼족오(三足烏) 무늬를 새겨넣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넥타이·스카프·의상에 고구려 벽화와 백제의 금제 관식을 새겨넣어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다만 아직 염료·접착 기술이 뒤떨어져 그것을 해결하는 일이 큰 문제로 남아 있다.

정부도 꾸준히 전통 무늬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디자인실을 만들어 우리의 무늬를 새로운 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옛 무늬들을 현대인의 감각에 맞는 디자인으로 개발해 넥타이·현대 의상·개량 한복·도자기·액세서리에 응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 상품들을 오는 11월에 열리는 우리 문화 상품 종합전시회에 선보일 예정이다.

구슬이 서말 있어도 꿰어야 보배이듯, 우리의 전통 무늬도 오래된 절간과 궁궐에만 처박아 두어서는 곤란하다. 전통 무늬가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해도 우리가 쓰지 않는다면 휴지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해 온 우리 전통 문화를 보듬어 그것을 새롭게 일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전통 무늬를 새롭게 부활시켜 상품화하는 일은 자랑스런 한국 무늬를 세계에 알리는 효과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고부가가치 상품을 세계 시장에 파는 성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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