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민심의, 민심 위한 언론 '깃발'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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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방송' 발기인 대회, '국민주방송' 재시동… 대안 매체 기대 커

사진설명 성황 : 2월1일 열린 시민방송 발기인 대회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2백여명이 참석했다.

언론 개혁이라는 말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요즘 '시민방송'의 신고식은 여러 모로 눈길을 끌었다. 지난 2월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민방송 설립 발기인 대회는,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언론에 대한 열망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준비위원장인 백낙청 교수(서울대 영문과·문학 평론가)는 "시민의 방송 참여가 위성 방송 시대 도래와 디지털 방송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졌다. 엄청난 기회 앞에 차라리 숙연해진다"라며, 단순한 비판이 아닌 대안 언론, 대안 문화를 이끌어가는 매체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발기인들도 의욕적이었다. 준비위원으로 이미 활동을 시작한 작가 황석영, 문학 평론가 도정일 교수, 이부영 전 전교조위원장, 이계경 여성신문사 사장, 표완수 전 iTV 대표와 주동황 광운대 교수 등은 물론, 직접 뛰지 못하지만 성원을 아끼지 않는 발기인 2백여 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방송인뿐 아니라 문단과 영화계, 시민운동 진영을 두루 망라한 것이 이채로웠다. 강원룡 목사는 "수십 년 동안 방송과 드잡이해 왔지만 별 소득이 없어서 이제는 신경을 끊고 건강이나 챙기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민방송 출범 소식을 듣고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라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사무국장 서해성씨는 "3백80명 남짓한 발기인과 접촉했는데 많은 이들이 시민의 채널이라는 것만으로도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가칭 '시민방송'은 위성 방송 사업자로 선정된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대표 강현두)이 직접 운영하는 시청자 채널이다. KDB는 선정 과정에서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채널', 시청자 채널인 '시민의 채널' 등 공익성이 강한 채널을 직접 운영하겠다고 밝혔고, KDB가 사업자로 선정됨에 따라 자동으로 시민 채널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파트너 격이던 '(사)국민 방송 실현을 위한 시민 모임'(대표 김상근)은 지난해 11월 시민방송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시민방송은 10월부터 방송을 시작한다는 KDB의 일정표에 따라 2월 중에 재단법인을 꾸리고 방송 본부장을 선임해 본격 채비에 들어간다.


시청자 접근 최대한 보장

사진설명 어떤 경쟁 : 백남청 위원장은 시민방송을 대안 매체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다짐했따.

시민방송은 시청자의 접근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엑서스 채널이다. 지금까지는 시민이 방송에 참여하는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 그리고 등 시청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 등이 전부였다. 주동황 교수(광운대·언론학)는 "해외에도 지상파 방송에 시청자 엑서스 프로그램을 갖추거나 일부 케이블 텔레비전에 공공 채널을 갖추는 예는 있었지만, 위성 방송과 같은 전국 방송에서 시청자 채널을 만든 예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 날 발기인 대회에는 김중배 국민주방송추진위원회(국민주방송) 위원장이 축사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국민주방송은 말하자면 잠재적 경쟁자 관계이다. 그는 "공공 채널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 시민의 목소리를 담는 데 함께 힘을 모으자"라며 출범을 축하했다. 국민주방송은 KDB의 직영 채널로 자동 설립되는 시민방송과 달리 구성 요건을 갖춘 뒤 채널 사업자로 참여할 계획이다. 보도에 주력하는 종합 채널을 표방하지만, 재원을 조달할 때나 제작 현장에서 시민방송측과 얼굴을 맞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사진설명 김중배 국민주방송추진위원장은 '잠재적 경쟁자'인 시민방송 신고식에서 축사를 했다.

국민주방송은 말 그대로 국민이 주주가 되는, 그래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의 언론을 만들자는 취지의 방송 개혁 운동에 젖줄을 대고 있다. 1996년 방송사 노조와 언론학자·시민단체가 연합해 출범시킨 방송개혁국민회의에서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이다. 모델은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 신문>이었다. 특히 AFKN 전파 반환을 앞두고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서 '자본금 5백억원. 공중파 채널 2번. 2000년 1월 전파 발사'를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전파 반환 논의가 물 건너가고 설상가상으로 경제 위기까지 터지면서 운동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소요 재원 규모도 운동의 현실성을 갉아먹었다. 방송개발원 최영묵 연구원에 따르면, 이후 주도 세력은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를 꾸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국민주방송을 주력 사업으로 채택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위성 방송에 참여하기 위해 재시동을 건 것이다. 국민주방송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국에 비해 비용이 훨씬 싼 데다가 대안 언론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이 큰 힘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시민방송과 마찬가지로 10월에 방송을 시작한다는 목표로 2월 말까지 방송위원회에 종합 채널 승인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설명 돈잔치 : 10월에는 본 방송을 시작하는 위성 방송에는 앞으로 5년간 2조4천억원이 투입된다.

출범이 기정 사실이 된 시민방송도, 맨 땅에 헤딩하듯 시작하는 국민주방송도 눈앞에 닥친 문제는 역시 '돈'이다. 시민방송이 사업자인 KDB측으로부터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해도 송출을 맡는 식의 하드 웨어 지원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국민주방송 백낙청 위원장은 "밝힐 수는 없지만 복안이 있다. 준비위원들은 돈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펼칠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라고 참석자들을 '안심'시켰다. 국민주방송은 시민방송보다 훨씬 환경이 열악하지만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국민주방송 관계자는 "지분 한도를 명확히 해 돈이 말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오는 10월 본 방송을 시작하는 위성 방송은 앞으로 5년간 2조4천억원을 투입해야 하는 대역사인데, 올해 74개 채널로 시작해 2005년이 되면 1백14개까지 가능하리라는 전망이다. 방송가에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해지면서, 시민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목청이 높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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