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해설가 표정훈씨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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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링크 식으로 책 읽어주는 남자/
'베스트 북' 고집하는 독서 길라잡이


책읽기가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책 읽어주는 남자' 표정훈씨(32)의 존재에 이물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방송 매체마다 책 관련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는 것을 보면 대중은 지금 이런 존재를 원하는 모양이다.




애초에 그가 독자 앞에 직접 나설 생각은 아니었다. '하이퍼링크식' 책 읽기 습관만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껏 번역가와 출판 기획자의 영역에 머물렀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습관이란 다음과 같다. 대학 노트에 독서를 마친 책 제목·출판사 따위 서지(書誌) 사항을 적고 그 옆에 '표정훈식' 참고 도서 목록을 만든다. 여기에는 동일한 저자나 연관된 주제의 책이 총망라된다.


이것이 20년 가까이 쌓이니 자산이 되었다. 목록에 적은 책을 다 읽지 못해도 웬만한 지식의 흐름은 손에 잡혔다. 어느 날 그는 인터넷이라는 신종 매체에서 자기만의 정보 규합 방식이 익숙하게 통용되는 것을 발견했다. '어라, 이것 봐라?' 그는 신바람이 나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표정훈의 책 읽기'. 그것은 인터넷 공간에 옮겨 놓은 그의 독서 노트였다.


홈페이지가 애서가 사이에 알음알음 인기를 끌면서 대중 매체 또한 그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KBS 텔레비전 〈TV, 책을 말하다〉의 자문위원이며, 라디오 〈이주향의 책마을 산책〉에 고정 출연한다.


그는 '꼭꼭 씹어 떠먹여 주는' 류의 친절한 해설가는 아니다. 베스트 셀러나 화제의 책에도 관심이 없다. '셀러'와 '화제'보다는'베스트'와 '책', 그러니까 '베스트 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소개한다(www.kungree.com). 출판계 동향을 맛깔나게 전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는 오직 책 그 자체만을 말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의 해설은 재미나다. 독자들은 골목길 주차 전쟁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이끌어내는 그의 하이퍼링크식 책 읽기에서, 시공을 넘나드는 지적 자유를 맛본다. '디지털 태풍이 아무리 거세도 지식의 원천은 책'이라는 믿음이 이 사회에 통용되는 한 표씨와 같은 '지식 선별자'의 몸값은 점점 치솟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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