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상] 테러의 그늘에서 '시' 부활하다
  • 이문재 편집위원 (moon@e-sisa.co.kr)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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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명시 함께 읽으며 '테러 후유증' 치유
대다수 한국 문인이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리고 있을 때, 미국의 '선량한' 중산층들은 오래된 시집을 뒤적이고 있었다. 지난 9월11일 아침,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습 공격을 받은 미국 사회는 테러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외침을 당해보지 않았던 미국 중산층은 세계무역센터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정신적 공황이었다. 맨해튼을 뒤덮은 검은 먼지 구름 속에서 미국인들은 한 줄의 언어를 찾고 있었다.




사태를 파악한다는 것은 사태를 언어화한다는 것이다. 미국 시민들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1792∼1822)와 사회성 짙은 시를 쓴 영국 출신 미국 시인 오든(1907∼1973)의 시를 다시 읽으며 납득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태를 언어화했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 10월1일자에 따르면,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직후 뉴욕 시민들은 상점 유리창이며 버스 정류장, 워싱턴 광장, 브루클린 등 도시 곳곳에 시를 써 붙여놓고 죽음을 애도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누가 시의 시대는 갔다고 하는가


테러의 잔해더미에서 부활한 시는 e메일을 통해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이러스였다. 네티즌들은 셸리의 〈오지만디아스〉와 오든의 〈1939년 9월1일〉을 지인들에게 띄웠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한 네티즌은, 만일 세계무역센터가 다시 세워진다면 셸리의 시 〈오지만디아스〉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새겨 넣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니,/위대한 자여, 내 업적을 둘러보고 절망하라'.


'말할 수 없는 죽음의 냄새가/구월의 밤을 공격했다'는 구절이 나오는 오든의 시 〈1939년 9월1일〉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직후에 쓰인 것인데, 마치 이번 테러 사건을 예언하고 쓴 것처럼 보인다. MSN 웹진 〈슬레이트〉에 〈오든이 말하는 빈 라덴〉이라는 글을 쓴 에릭 매킨리는, 놀랍게도 오든의 시가 9·11 테러 사건과 부합한다고 지적한다. 오든의 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마천루들은/그 최고의 높이로/인류의 힘을 선언한다'라고 이어진다.


셸리와 오든뿐만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부터 예이츠는 물론 199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일랜드 시인 세이머스 히니 등 현역 시인들의 시들도 널리 읽히고 있다. 미국의 계관시인 빌리 콜린스는 〈뉴욕 타임스〉에서 '그동안 다른 매체들이 시를 얼마나 무시하고 능멸했는가.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소설이나 영화, 발레가 아니라 시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핀스키도 같은 견해다. 시에는 읽는 이의 호흡과 목소리에서 나오는 친밀성이 있다는 것이다. 핀스키는, 스펙터클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절실한 것은, 차가운 시각이 아니라 따뜻한 청각(시를 읽는 인간의 목소리)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시와 더불어 미증유의 충격을 극복하는 미국 시민들을 지켜 보는 한국 문학은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1970∼1980년대, 현실과 치열하게 맞서 그 위력을 과시했던 한국 시는 세기 말과 세기 초를 통과하며 현실 대응력을 상실한 채 부유하고 있다. 거개의 시가 독자들이 갖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저급 문화라고 손가락질해 왔던 할리우드 문화의 본거지에서 시가 살아나고 있다는 뉴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시는 죽었다'고 떠들어온 한국 문학은 물론이고 '학생과 국민'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교수)들이 그 답변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당신은 유명한 배 이름을 몇이나 댈 수 있는가. 아마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 호나 그 신대륙에 최초의 이주자들을 실어 나른 메이플라워 호, 그리고 갈라파고스 섬으로 향하던 다윈의 비글 호 정도가 고작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듀어런스 호는? 대개는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듀어런스 호는 이른바 세계사를 바꾼 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배는 남극 대륙 횡단에 나선 영국 탐험대를 태웠지만 남극해의 유빙(遊氷)에 갇혀 결국 부서지고 말았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실패한 배였다. 하지만 그 실패는 여느 성공 못지 않게 사람들의 기림을 받고 있다. 인듀어런스 호에 승선했던 탐험대장 어니스트 섀클턴과 대원 27명이 무려 18개월의 악전고투 끝에 전원 생환했기 때문이다.


<인듀어런스>(뜨인돌 펴냄)는 그 18개월의 생생한 기록이다. 남극 대륙 횡단의 부푼 꿈을 안고 출항할 때부터 조난당한 대원들이 칠레 군함에 구조되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하게 되살린 이 책은, ‘낙관적 인내’로 ‘참혹한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생존 드라마를 보여 준다. 특히, 배가 침몰하자 남극 대륙 횡단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미련없이 포기하고 오로지 대원들의 무사 귀환에만 전력을 기울이는 섀클턴의 모습은 실패한 탐험가의 성공한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못 영웅적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인듀어런스>의 진정한 주인공은 섀클턴을 포함한 대원 모두이다. 그들은 남극해의 거대한 유빙 위에서, 혹은 척박한 무인도의 옹색한 해변가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악천후를 견디며 노숙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식량 부족 때문에 썰매를 끌던 개들과 애완용 고양이를 사살하지만, 그리고 먹을거리라고는 ‘펭귄 수프’와 ‘물개 스테이크’ 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얼음판에서 축구를 한다. 코골이가 심한 대원을 텐트 밖으로 옮겨놓는 장난도 친다.


이 모든 과정을 사진작가로서 탐험에 동행한 프랭크 헐리가 ‘작품’으로 남겨놓았다는 점은 더욱 경이롭다. 망망대해에 버려진 채 기약 없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그는 아름다운 남극의 모습, 끔찍하게 파괴된 배, 섀클턴과 대원들의 영웅적 사투를 카메라에 담았다. 살아 있는 한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은 ‘생존의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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