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삼이도 한몫 한 리샤오룽의 부활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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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터넷으로 컴백…‘예술 무술’에 신세대 매료
"말 달리자!”는 울부짖음과 무대 위를 방방 뛰어다니는 매너로 청중의 혼을 쏙 빼놓는 인디 밴드 크라잉 넛. 이들의 라이브 공연을 보러 갔던 소녀가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다.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유일한 증거는 사진 한 장. 사진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전설적 무술 배우 리샤오룽(李小龍)이다.
오는 1월26일 서울·부산에서 동시 개봉될 인디 영화 <이소룡을 찾아랏!>(감독 강 론)의 도입부이다. 과연 소녀를 죽인 범인은 리샤오룽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감독은 난데없이 29년 전 사망한 은막의 스타를 서울 한복판으로 끌고 왔을까.



이 영화뿐만이 아니다. 리샤오룽이 살아나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영화 제작사 신씨네는 리샤오룽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영화 <드래곤 워리어>(가제) 제작에 착수해, 이를 2003년께 개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샤오룽의 유족으로부터 초상권 등을 사들이는 데만 4년이나 걸렸다는 것이 이 회사 대표 신 철씨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5천만 달러(약 6백50억원)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영화 제작비의 펀딩은 이미 70∼80% 가량 이루어진 상태이다.


시중에는 리샤오룽 캐릭터를 응용한 열쇠 고리·티셔츠·액션 피겨(인형의 일종) 등이 최근 들어 부쩍 눈에 띈다. 심지어 리샤오룽이 <사망유희>에서 입고 나온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신세대도 있다. 일명 ‘리샤오룽 츄리닝’이라고 불리는 이 옷은 지난해 동대문 쇼핑몰의 최고 인기 품목이기도 했다. 지난해 3월 회원들의 요구에 따라 이 옷을 처음 출시했다는 (주)굿투굿의 이세규 차장은 “상하의가 붙어 있어 입고 벗기가 불편한 데다 남성의 그 부위(?)가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입기 민망할 것 같은 옷이 5천 장 넘게 팔려 나가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리샤오룽은 떠오르는 인기 스타이다. 리샤오룽 마니아라고 자처하는 박상준씨가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부활 이소룡>. 리샤오룽의 화려한 무예 동작을 거의 사실 그대로 재현한 이 작품은, 젊은 남성 네티즌 집단으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최근 1, 2년 사이 팬클럽도 급증하는 추세이다. 리샤오룽의 영화 포스터나 음악 파일·동영상 등을 모아놓은 팬클럽을 위시해 ‘리샤오룽식 몸 만들기’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 리샤오룽이 창시한 절권도(截拳道)를 수련하는 모임 등 종류도 가지가지이다. ‘리샤오룽 대백과사전’(nunchaku74.com)을 운영하는 박광수씨(28)는, 팬클럽의 저변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이처럼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리샤오룽이 부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리샤오룽 자체가 지니고 있는 불멸의 스타성을 꼽을 수 있다. 서른두 살에 요절한 리샤오룽이 생전에 남긴 영화는 겨우 다섯 편. 그러나 이들 영화에서 그는 눈부시게 빠르고 강한 액션, 입신(入神)의 경지로 휘두르는 쌍절곤, “아뵤” “끼욧” 하며 소름 끼치게 내지르는 괴조음(怪鳥音) 따위를 선보이며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그만의 권위를 구축했다.

일부 신세대에게는 ‘엽기 취미’의 일종


리샤오룽의 카리스마는 지금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 철씨의 말이다. 구미에서도 최근 <와호장룡> 류의 영화가 인기를 끌고 청룽·리롄제가 할리우드 입성에 성공하면서 이들의 마스터 격이라 할 수 있는 리샤오룽에게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박광수씨는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이 리샤오룽의 카리스마라고 말한다. 리샤오룽을 갓 알게 된 초보자들은 ‘남성적 힘의 원형’으로 그를 추앙하며 흉내 내곤 한다. 그러나 파고들면 들수록 리샤오룽의 무술 세계는 단순히 강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팬클럽 회원인 권오정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리샤오룽은 무술을 육체적 미학과 예술로 승화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물론 개중에는 다른 이유로 리샤오룽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신세대에게 리샤오룽 흉내 내기는 ‘엽기 취미’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이를테면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노주현의 아들로 출연하는 영삼이는 리샤오룽의 노란 트레이닝복을 유행시킨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가 멋있었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일부 신세대는 완력도 없으면서 리샤오룽식 발차기나 어설프게 뻥뻥 해대는 ‘무식한 양아치’ 영삼이에 매료되었고, 그의 패션을 따라잡기 바빴다.


리샤오룽의 비장미를 추종하는 마니아들은 이같은 ‘경박한 패러디’에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리샤오룽을 찾아랏!>을 만든 강 론 감독은 이들 사이에 색다른 소통의 가능성을 찾아냈다. 곧 신세대의 무국적 펑키 문화를 상징하는 크라잉 넛과 리샤오룽에게서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문화 유목민’의 이미지를 동시에 읽어낸 것이다.


홍콩 출신이면서 미국에서 자란 리샤오룽은 ‘동양인의 얼굴을 한 미국인’이자 할리우드에서 자기 이름을 내걸고 활동한 최초의 동양인이었다. 감독은 그를 통해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중심과 주변 사이의 간극을 헤쳐가야 하는 우리 세대의 정체성을 새롭게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조선 시대에 나서 선비로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발칙한’ 생각을 자주 한다. 물려받은 땅뙈기 넉넉하니 먹고 사는 일에 애면글면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다. 게다가, 하고많은 날 사랑방에 들어앉아 서책에 탐닉하다가, 지루해지면 시회(詩會)를 구실 삼아 친구들 불러모아 주연을 베풀고, 아니면 아예 종놈 앞세워 산천경개 유람이나 나서니 이 얼마나 근사한가.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정옥자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현암사 펴냄)에 소개된 옛 선비의 시간표를 보니, 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선비들의 일상도 꽤나 빡빡했던 것 같다. 새벽 2(여름)~4(겨울)시면 일어나 식전부터 아이들 글공부를 챙기는가 하면, 하인들 단속에 이런저런 장부 정리까지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독서도 한가한 취미 생활이 아니라 거의 도 닦는 일에 가깝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근본 이념에 따라 경경위사(經經緯史:경전을 씨줄로, 역사를 날줄로)를 원칙으로 삼되, 감성 훈련을 위해 ‘전공 필수’ 문·사·철과 ‘교양 필수’ 시·서·화도 익혀야 한다.


<…우리 선비>에 따르면 조선 선비는 ‘요즘의 왜소한 지식인들이 넘볼 수 없는 고차원의 삶’을 살다 간 이들이다. 목에 칼이 들어가도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서릿발 같은 기개, 일관된 지조와 종교적이라고 할 만한 엄숙주의, 그 속에 간직한 해학과 여유, 탁월한 자기 제어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조선의 선비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같은 선비 정신을 실천한 이 25명의 삶을 조명했다. 조광조·이 황·조 식·이 이·송시열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거유(巨儒)는 물론이고, 이 익·박지원·정약용 같은 실학자, 화가로 더 잘 알려진 정 선, 개화파에 맞서 위정척사를 주창한 이항로, 민씨 세도 정치의 중심 인물 민영익 등이 그들이다. 중인 출신 위항 시인 조희룡이나 한말 외교 책임자로 망국의 책임을 감당해야 했던 김윤식 등도 포함되어 눈길을 끈다.


조선 선비를 일종의 문화적 캐릭터로까지 부각하는 저자의 ‘선비 예찬’에 전적으로 수긍하지는 못해도, 청빈과 절제로 삶 자체를 이상화했던 조선 선비에게서 정신의 귀족을 발견하는 일은 반갑고 소중하다. ‘옛것을 본받는 법고는 때묻을 병폐가 있고 새로이 창조하는 창신은 상도에서 어그러지는 병폐가 있다. 법고하되 변화를 알고 창신하되 전거에 능해야 한다’고 한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야말로 현대의 독자들이 조선 선비를 대하는 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시각 자료를 수집하여 배치한 ‘편집의 공력’도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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