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막사발 ‘화려한 귀향’
  • 경남 하동·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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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길 성씨 부녀 하동에서 첫 가마 열어…일본 전시도 예정


'조선 막사발’이 마침내 고향의 품에 안겼다. 지난해 8월, 4백년 만에 조선 막사발을 복원한 도예가 길 성씨(58)와 그의 딸 기정씨가 충북 단양에 있던 가마를 떠나 경남 하동에 새로운 가마(길성도예)를 만들고, 지난 6월23일 오전 11시 첫 가마를 열었다.


조선 막사발은 일본에서 이도다완(井戶茶豌)으로 불린다. 외국 도자기 가운데 유일하게 국보로 등록된 ‘기자에몬이도’ 다완이 바로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조선 막사발이다. 일본 다인들에게 기자에몬이도는 살아 생전 한번 참배하는 것이 꿈일 정도로 신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지난 4백년 동안 막사발은 그 누구에게도 재현을 허락하지 않았다(<시사저널> 제 620호 참조).


일본 다도 최고 권위자가 극찬


길씨는 서서히 식어가는 가마를 어루만지며 “하동은 이제 차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찻사발의 고향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하동으로 가마를 옮긴 까닭은 다름아닌 흙(태토) 때문이다. 오직 한 가지 흙만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흙이 바로 새 가마터 근처에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열다섯 번을 구우며 막사발에 대한 모든 비밀을 밝혔다”라고 말했다.


이 날 오전 11시 하동 가마가 열렸다. 3백 여 점 가운데 10여 점이 상품(上品)이었다. 길 성씨는 “첫 가마 치고 너무 잘 나왔다”라며 흡족해 했다. 이 날 하동 길성도예에는 차와 다기 전문가인 성우 스님(불교텔레비전 대표, 파계사 주지), 통도사 성보박물관장이며 문화재전문위원인 범하 스님, <조선의 막사발 천년의 비밀>을 펴낸 차완 비평가 정동주씨(소설가), 월간 <다도> 대표 강법선씨, 이도다완 전문가 최복철씨(가야 대표) 등이 찾아와 하동 가마에서 나온 첫 작품들을 감상했다.




경사는 또 있었다. 최복철씨가 일본에서 ‘귀한 선물’을 가져온 것이다. 길 성씨 부녀는 지난 1월15일, 일본 다도의 종가 오모테센케(表千家) 종장인 히사다 소야(久田宗也) 씨를 찾아 복원한 막사발들을 선보였다. 소야씨는 그 자리에서 “이건 대단한 일이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마를 처음 여는 날, 최복철씨가 일본에서 소야 종장이 명명한 길씨 부녀의 작품을 가져온 것이다. 길씨의 작품에는 ‘무심’ ‘백운’ ‘일일신’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정동주씨는 “소야 종장은 일본을 움직이는 정신적 지주이므로 가장 확실한 감정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길 성씨 부녀의 작품들은 지난 5월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공식 전시됐다. 통도사는 길성도예의 찻사발로 금강계단 헌다식도 거행했는데, 앞으로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지난 6월에는 대구 원미화랑에서 일반 관객과 만났다. 오는 9월에는 서울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정동주씨는 “일본 이도다완 전문가들이 내년 봄부터 일본 주요 도시를 돌며 순회전을 갖자고 제의했다”라고 말했다.


정동주씨는 길성도예가 복원한 조선 막사발을 ‘하동 지장(地藏) 다완’이라고 명명하려고 한다. 지장에는 ‘흙의 미래가 곧 인류의 미래’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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