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성 추문은 보수파 작품”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2.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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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브록 지음 <우익에 눈먼 미국>/언론도 가담한 정치 공작 실상 밝혀



'헤리티지 재단’ 하면 북한 핵 문제나 한반도 안보 문제, 또는 요즘 한창 삐걱거리는 한·미 관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권위 있는 기관’으로 통한다. 1977년부터 이 재단 회장을 맡아온 에드윈 퓰너는 한·미 관계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수교 훈장까지 받았다.


하지만 점잖고 권위 있는 겉모습과 달리, 이 재단이 속으로는 매우 부패해 있으며, 특히 미국내 우익 활동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일부 보수 정치인의 행태를 뺨칠 정도로 지저분한 일도 서슴지 않아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헌데 사정이 바뀔지도 모른다. 헤리티지 재단을 포함해 미국 내 우익 인사들의 계보와 이들의 행적,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 이래 이들이 합작한 각종 정치 공작과 스캔들의 흑막을 생생하게 폭로한 책이 최근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책 이름은 〈우익에게 눈 먼 미국〉(나무와숲). 지은이는 데이비드 브록이다. 지은이는 ‘어느 보수주의자의 고백’이라는 이 책의 부제가 일러주듯이, 한때 〈인사이트〉(〈워싱턴 타임스〉의 자회사) 〈아메리칸 스펙테이터〉 등 미국의 보수 언론에 몸 담고 민주당 또는 진보파의 약점을 수없이 공격하며 필명을 날리다가 등을 돌린 ‘전향한 좌파’이다. 그의 책은, 특정 사건은 물론 그에 연루된 인사나 기관의 이름을 실명으로 낱낱이 공개해, 지난해 미국에서 책이 나올 당시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앞서 말한 헤리티지 재단은 1980년대 미국 내 우익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타이완·일본 기업들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기부금을 뜯어 갔다. 또 같은 이유로 이 재단은 미국 우파들 사이에서조차 불신받는 과격파를 고용해 정치 공작에 앞장서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이 재단과 관계를 맺으며 심지어 ‘같은 편’인 레이건 정부의 군비 통제 협상까지 무산시키려고 해 미국 정계에서 ‘미친 개’ 소리를 들었던 데이비드 설리번, 그리고 깅그리치 의원 등 당시 연방 하원 우익 인사들의 상담역을 맡아 정치판을 조종한 마이클 필스버리가 대표적이다.





열렬한 우익 지지자였으며 그 자신이 유능한 활동가이기도 했던 브록이 우파와 결별하게 된 결정적인 구실은, 그 자신도 연루되어 있고 자신의 책에서도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정치권의 각종 스캔들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인 토머스 클래런스를 임명하는 과정에 불거진 ‘애니타 힐 사건’을 비롯해, ‘폴라 존스 사건’ ‘제니퍼 플라워즈 사건’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 등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각종 추문이 ‘한결같이 미국 우익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총력전의 결과’라는 것이다.


진보파에 불리한 쪽으로 증언 짜깁기


그는 이 과정에서 예컨대 애니타 힐 사건처럼, 취재원들의 증언과 인터뷰 내용을 교묘하게 왜곡하거나, 민주당이나 진보파에게 불리한 쪽의 증언만 짜깁기하는 수법으로 우파와 공조했다.


이같은 점에서 브록의 책은 미국 우익의 치부책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는 우익의 계보와 역사도 담겼다. 1950∼1960년대 ‘원조 보수’로 이름을 떨친 진 커크패트릭·어빙 크리스톨을 비롯해 최근 ‘인종 격리’를 옹호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트렌트 로트 공화당 의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익 인사들의 족보가 신상 명세·사진과 함께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정치 공작’을 즐기는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브룩의 책을 보면 미국 동료들의 현란한 수법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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