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생존의 프로’였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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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인듀어런스>/남극 탐험 실패기
당신은 유명한 배 이름을 몇이나 댈 수 있는가. 아마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 호나 그 신대륙에 최초의 이주자들을 실어 나른 메이플라워 호, 그리고 갈라파고스 섬으로 향하던 다윈의 비글 호 정도가 고작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듀어런스 호는? 대개는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듀어런스 호는 이른바 세계사를 바꾼 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배는 남극 대륙 횡단에 나선 영국 탐험대를 태웠지만 남극해의 유빙(遊氷)에 갇혀 결국 부서지고 말았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실패한 배였다. 하지만 그 실패는 여느 성공 못지 않게 사람들의 기림을 받고 있다. 인듀어런스 호에 승선했던 탐험대장 어니스트 섀클턴과 대원 27명이 무려 18개월의 악전고투 끝에 전원 생환했기 때문이다.


<인듀어런스>(뜨인돌 펴냄)는 그 18개월의 생생한 기록이다. 남극 대륙 횡단의 부푼 꿈을 안고 출항할 때부터 조난당한 대원들이 칠레 군함에 구조되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하게 되살린 이 책은, ‘낙관적 인내’로 ‘참혹한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생존 드라마를 보여 준다. 특히, 배가 침몰하자 남극 대륙 횡단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미련없이 포기하고 오로지 대원들의 무사 귀환에만 전력을 기울이는 섀클턴의 모습은 실패한 탐험가의 성공한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못 영웅적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인듀어런스>의 진정한 주인공은 섀클턴을 포함한 대원 모두이다. 그들은 남극해의 거대한 유빙 위에서, 혹은 척박한 무인도의 옹색한 해변가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악천후를 견디며 노숙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식량 부족 때문에 썰매를 끌던 개들과 애완용 고양이를 사살하지만, 그리고 먹을거리라고는 ‘펭귄 수프’와 ‘물개 스테이크’ 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얼음판에서 축구를 한다. 코골이가 심한 대원을 텐트 밖으로 옮겨놓는 장난도 친다.


이 모든 과정을 사진작가로서 탐험에 동행한 프랭크 헐리가 ‘작품’으로 남겨놓았다는 점은 더욱 경이롭다. 망망대해에 버려진 채 기약 없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그는 아름다운 남극의 모습, 끔찍하게 파괴된 배, 섀클턴과 대원들의 영웅적 사투를 카메라에 담았다. 살아 있는 한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은 ‘생존의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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