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폐인’ 고개 들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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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정옥의 새 드라마, 방영 초기부터 마니아 팬 형성
역시 인정옥! 새로 시작된 문화방송 수목 드라마 <아일랜드>에 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마니아 드라마를 만들어냈던 <다모> 폐인과 <네 멋대로 해라> 폐인이 <아일랜드>에서 만난 것이다. 고리는 주연 배우 김민준과 이나영, 그리고 작가 인정옥이다. 김민준은 <다모>에서 누이를 사랑한 역적 두목 장성백 역으로 여성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이나영은 작가 인정옥과 함께 ‘네 멋 신드롬’을 이끌었다.

지난 9월1일 첫 방영된 <아일랜드>는 9% 정도로 드라마치고는 몹시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최종회를 맞은 KBS <풀 하우스>와 맞물려 드라마가 시작된 탓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아일랜드>에 바치는 열혈 시청자들의 헌가는 시청률 수치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다. 문화방송의 시청자 게시판은 방영 2회 만에 시청자 소감과 20자평이 1만 건을 훌쩍 넘어섰다. 또 토요일 재방 시청률이 본방송 시청률보다 높은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드라마 <아일랜드>(연출 김진만)는 네 남녀의 관계가 주요 축이다. 가장 ‘센’ 설정은, 해외로 입양되었던 여성 이중아(이나영)를 둘러싸고 장치되어 있다. 입양된 가족의 오빠가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대원이어서 그 보복으로 온 가족이 눈앞에서 몰살당하고, 그들을 외면한 그녀는 충격과 죄책감으로 정신병을 얻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나머지 세 인물의 사연도 범상치 않다. 잘 나가던 아역 배우였으나 지금은 에로 배우가 되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소녀 가장 한시연(김민정), 여동생을 입양 보낸 충격 때문인지 재혼한 어머니에게 얹혀 날건달로 살아가지만 속마음 하나만은 따뜻한 양아치 이재복(김민준), 누군가를 보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보디가드 강국(현빈). 이들은 나오는 대로 말을 툭툭 내뱉지만, 한결같이 속마음은 따뜻해 모두 한 형제자매처럼 보일 정도이다.

‘컬트 드라마’ 넘어 인기까지 거머쥘까

이미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미래·경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빚어냈던 작가는, 주인공뿐 아니라 조연에도 정성을 기울여 한심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로 드라마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딸이 에로 배우를 하며 버는 돈으로 온 식구가 살아가는 시연의 가족이 대표적이다.

작가 인정옥은 마니아가 많다는 점에서 작가 노희경과 비교될 만하다. ‘잔잔하고 사려 깊은’이 노희경의 트레이드 마크라면, 인정옥은 ‘싸가지 없지만 속 깊은’이 특징이다. 그녀는 <여고괴담> 첫 편의 원작자였고, 문화방송 <테마 게임>의 작가로 활동했다. 2002년 <네 멋대로 해라>로 단번에 숱한 드라마 폐인들을 만들어냈다.

<아일랜드>는 ‘네 멋’에 없는 요소도 보강되어 있다. 색감 대비가 강한 간결한 영상과 귓전에 남는 음악 등이다. 드라마 제목에 걸맞는 이국적 음악은, 실은 인디밴드 ‘두번째 달’의 <서쪽 하늘에>다. 아이리시 휘슬과 백파이프의 일종인 일리언 파이프로 연주되어 드라마 분위기를 색다르게 이끈다.

걱정스러운 점도 없지는 않다. 이미 <다모>에서 주요 모티브였던 ‘친남매의 사랑’이라는 설정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 대표적이다. 입양된 여자 중아와, 여동생의 입양을 지켜본 오빠 재복은 심상치 않은 눈빛을 교환한다. 게다가 두 사람은 각기 연애를 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 파트너들까지 옆 사람에게 곁눈질을 한다. 에로 배우, 보디 가드, IRA, 해외 입양 등 온갖 센 코드에다 ‘파트너 스와핑’까지 가세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에서 불치병이라는 진부한 설정을 택하면서도 남다른 색깔을 뿜어냈던 작가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는 대단하다.

<아일랜드>가 마니아들의 숭배를 받는 컬트 드라마를 넘어서 인기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다모>와 <네 멋대로 해라>는 뜨거운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뜨는 드라마’의 지표인 시청률 30% 대로 진입한 적이 없다. <아일랜드>도 비슷한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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