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은 자기 고집 꺾는 것”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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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인터뷰
2000년대 들어 문화예술계에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문화예술인들이 문화 행정의 중심에 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창동 전 문화부장관을 비롯해 현기영 문화예술진흥원장, 김명곤 국립극장장이 현장 문화행정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선임된 유인촌씨는 야당 출신 서울시장이 지목한 인물이어서 특히 관심을 모았다. 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유씨는 재단 건물의 높은 담을 헐고 창문의 쇠창살을 뜯어냈다. 계단과 복도는 발랄하게 만화적으로 꾸몄다. 안기부 부속 건물로 쓰이던 시절의 우울함은 말끔히 사라졌다. 문화 예술 지원 사업 공모 심사로 여념이 없는 그를 재단 집무실에서 만났다.

난마처럼 얽힌 서울시 문화행정의 짐을 떠안은 것 같다.

공무원들에게는 단순히 짐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복덩이다. 비판에 취약하기 때문에 공무원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화 예술 사업을 하는 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부담 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다리 밑에서 낳았건 고대광실에서 태어났건 이런 문화재단이 탄생했다는 것은 분명한 축복이다.

이명박 시장이 무엇을 주문했나?

문제가 생기지 않게 대충 처리하는 것보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끝장을 보라고 부탁했다.

이시장이나 서울시의 간섭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가?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시장은 서울문화재단의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책 기능을 비롯해 많은 기능이 서울시 문화국과 중복되어 있어서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 예산상의 독립도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이시장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이 있나?

문화인으로 보이고 싶다고 오페라나 발레 보러 다니는 척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한다고 문화인으로 봐주지 않는다. 그냥 ‘당신 스타일대로 해라. 문화도 100억, 2백억씩 불도저 식으로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문화 행정 측면에서 이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문화 예술 소양이 높은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가 한 일은 문화예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공간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청계천을 복원해 도심에 시내가 흐르게 한 것, 육교를 부수고 고가도로를 뜯어내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만든 것, 시청 앞에 광장을 만들고 분수대와 스케이트장을 설치해 사람을 모은 것은 모두 문화적인 일이다. 재단이 집중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전통 공연장을 만드는 일과 어린이 놀이터를 문화적으로 바꾸는 일, 책 읽는 도시로 만드는 일 등이다. 일본의 가부키 전용 극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전통 예술 전용 극장을 만드는 것은 우리 문화예술계의 숙제였다. 어린이 놀이터는 문화 생활의 출발점이고, 책읽기는 문화 활동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인적으로 가장 집중하는 사업은 무엇인가?

요즘 축제에 꽂혔다. 축제는 예술이 하지 못하는 더 큰 부분을 담당하는 것 같다. 여름에 한강 둔치에서 대규모 축제를 열어볼 생각이다. 한강 둔치는 엄청난 장소다. 불꽃만 쏘아도 몇 십만 명이 모이지 않는가. 모래사장도 만들어 여름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다.

현장 문화예술인이 문화 행정가로 변신할 때 어려움은 무엇인가?

자기 고집을 꺾는 일이다. 창작이 고집을 세우는 작업이라면, 행정은 고집을 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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