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지내지 맙시다’ 주장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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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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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538호 36~39쪽 기사 ‘제사 지내지 맙시다’라는 타이틀에 공감한다. 나는 나이와 걸맞지 않게 보수적인 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제사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고, <시사저널> 기사를 통해 다시금 그것을 확인했다. 이하천씨의 말처럼 죽은 자는 산 자를, 강자는 약자를, 남자는 여자를 찍어 누르는 것이 바로 유교적 가부장제이다. 살아 계신 부모님조차도 모시기를 꺼리고 효도하지 못하면서, 죽은 후에 차리는 제사상이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중국인들은 한국의 미풍양속 대부분이 중국에서 건너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김경일 교수가 지적했듯이 우리나라에서 제례의 의미와 형식은 왜곡된 형태로 바뀌어온 듯하다. 잘못된 제사 풍속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제수품 구매도 가계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형식에 얽매인 제사를 없애고 살아 계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제수품을 장만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아름다움 사랑의 실천이 되지 않을까.

주은정 (서울 광진구 구의2동)


제사보다 부모님 생전에 잘 모셔야

나는 26년 살아오는 동안 한번도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우리집에서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러다 <시사저널>을 읽고 제사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통 문화 계승, 가족간 유대감, 친족간 우애 도모 같은 제사의 미덕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시대에 맞게 제사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만이라도 잘 해드리는 것이 요즘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효의 근본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여자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왜 명절 같은 때에 여자는 부엌에만 있고 남자는 안방에서 편히 쉬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당연시되는지 모르겠다.

한미연 (서울 은평구 갈현2동)


현상 위주로 다룬 기사에 아쉬움

537·538호 현장 르포 ‘음모론 업고 힘 얻는 JP, 충청권에 팽 바람이 분다’는 결론적으로 충청권 유권자들의 총선 민심 동향을 객관적으로 짚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제목만 보아도 우선 충청권에서 ‘팽 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만약 기자가 충청권에서의 세대 교체 문제를 초점으로 삼아 기사를 썼다면 이런 글이 나왔을까. 음모론의 허구가 만천하에 공개된 이 시점에서 음모론 현상을 위주로 다룬 점은 불만스러웠다.

김범찬 (대전광역시 서구 갈마동)


고려 사회의 장점, 현대에 되살렸으면

537·538호 ‘되살아오는 다원 사회 고려 왕조’를 관심 깊게 읽었다. 기사는 고려 왕조가 개혁적이고 주체성이 강한 왕조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계의 연구가 더 진전되어 우리 사회가 고려 왕조가 지니고 있는 장점들을 현대에 계승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현미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


눈 귀 닫아 버린 구단 이기주의

537호·538호 특별 취재 ‘구단의, 구단을 위한 KBO’ 기사를 보면서 이 나라의 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강자(구단) 앞에 약하고 약자(선수) 앞에 강한, 주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KBO는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생적 한계는 차치하고라도 비정상적인 구조와 제대로 된 경영 마인드 하나 없이 적자 경영 운운 하며 선수협에 대한 ‘시기 상조론’을 들먹거리는 각 구단의 충실한 종이 되어 버린 KBO는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KBO는 닫힌 눈과 귀를 열고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세가 어디로 흐르는지 하루빨리 깨닫기 바란다.

민승기 (경기도 안양시 비산3동)


축구 복권 사업이 특혜 되어서는 곤란

월드컵 대회랄지, 큰 경기가 있을 때면 나는 회사 동료들과 만원짜리 승부 맞히기 게임을 한다. 그것도 도박이라면 도박이다. 스포츠가 예측 불허라면 도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세계 모든 나라에서 스포츠와 도박은 연결되어 있다. 그런 ‘도박’ 중에서 체육 복권은 합법적이고 공공적 성격을 갖고 있다. 나는 일확 천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2002년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라면 축구 복권 사업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문제는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동시에 어느 특정한 기업에 큰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사업자 선정이 공정·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제539호 ‘축구 복권 사업 오프사이드 반칙?’ 기사는 다른 누구보다도 문화관광부 관료와 국회의원이 읽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김수진 (전남 순천시 저전동)
간도에 대한 주권 의식 고취할 사료 더 찾자

535호 ‘간도는 우리 땅’ 기사를 감명 깊게 읽었다. 이스라엘이 로마 제국에 멸망 당한 후 유태인들은 약 2천년 간 세계 각지를 떠돌며 유랑 생활을 하다 천신 만고 끝에 고토를 되찾아 그들의 국가를 건설했다. 2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옛 영토에 기어코 그들의 국가를 다시 건설한 저력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영토에 대한 강한 집착과 복귀 의지가 민족 개개인의 머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는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독도 문제와 더불어 간도 문제는 역사의 격랑을 거치는 동안 소유권이 희미해져 21세기에 들어서도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국제 소송에 앞서, 학계와 언론은 간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주권 의식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부 단체의 주장이 아닌, 여론의 힘이 실린 주장으로 승화해야 국제 판결에서도 당위성이 인정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영하 (전북 익산시 신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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