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세요’라는 신종 덕담
  • 서명숙 (sms@sisapress.com)
  • 승인 2002.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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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연휴 때 이사를 했다. 워낙 오래된 아파트여서 도배와 칠을 다시 하는데, 일하러 온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부자 되세요”였다. 집을 중개한 분도 똑같은 인사말을 했다. 이사 관련 업체들에서는 이런 덕담을 하나 보다 하고 예사롭게 넘겼다.




연휴가 끝난 뒤 여기저기서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들 늘 주고받던 “복 많이 받으세요” 대신 “부자 되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내가 부자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월급쟁이 기자인 걸 뻔히 아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듣고서야, 그 말이 요즘 강력하게 전파되는 유행어임을 눈치챘다.



이번 호 커버 스토리 ‘나, 부자 됐어요’(54∼61쪽)가 소개하는 20인은 그런 대중의 소망을 실현한 신흥 부자들이다. 이들은 과거 부자들과 달리,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를 빠른 속도로 일구어냈다. 아버지를 잘 둔 상속 부자들과 달리, 시대를 잘 만나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한 이들이다. 이렇듯 부를 축적한 방식과 과정은 다르지만, 돈을 쓰는 방식에서는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쉬운 일이다.



이들처럼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작은 부자가 되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 이야기도 등장한다(‘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암웨이 사업자’ 44∼46쪽). 다단계 판매에 뛰어드는 이들 중에는 최근 물의를 빚은 교사는 물론 의사·회계사·기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도 많다. 취재 기자는 이들에게서 거의 종교 수준의 열정을 보았다고 전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정당하다. 탓할 일이 아니다. 아니, 부자가 되려는 열망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동력 아니던가. 그러나 돈이 종교가 되는 세상, 돈이 전부인 세상은 삭막하다. 아직도 내 귀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신종 덕담보다는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전통 덕담이 더 정겹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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