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영혼이 나를 부른 것 같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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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청년 박종철> 주인공 최동성군, 학교·본적·모습·문제의식 똑같아
지난 5월23일 MBC 이정표 프로듀서는 1987년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씨를 재조명할 드라마 주연을 맡을 학생을 찾아 서울대 캠퍼스를 뒤지고 있었다.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해 포기하려 할 즈음, 학생회관 장터에서 화채를 썰고 있는 학생이 보였다. 박종철과 쌍둥이처럼 닮은 얼굴에 안경을 쓰고 체격도 비슷했다. 6월24일 방영된 드라마 <순수청년 박종철>의 주인공은 이렇게 탄생했다.





“귀신 같은 거 안 믿는 편이었지만, 마치 종철형의 영혼이 부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주연을 맡은 최동성씨(사진·21·서울대 경제학부 2년)는 드라마에 출연하기까지의 인연을 신기해 한다. 좀처럼 가지 않던 장터 모임에 하필 그 날 참여한 것이라든지, 평소와 달리 수업을 놓쳐 그 자리에 끝까지 남았던 것도 그렇다. 선배 박종철씨의 본적지가 자신과 동까지 똑같은 것을 뒤늦게 알고서는 경악했다. 고향이 같아 사투리 연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사회를 보는 문제 의식도 박종철씨와 닮았다. 학생운동이 ‘천연기념물’ 취급되는 요즘이지만 최씨는 1학년 때 총학생회 선거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최씨가 지지한 단체는 학내에서 가장 ‘좌파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학생운동이 특별히 거창한 게 아니다. 단지 우리 사회가 좀더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한 몫을 보장해주길 바랄 뿐이다.” 실제 드라마에서도 박종철은 ‘투사’ 이미지보다 인간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드라마에 등장한 인물들의 오늘날 행보를 되짚어보면 흥미있는 요소가 많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지검 안상수 검사는 드라마에서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미화되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1996년부터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다. 드라마에서 박종철은 선배 박종운의 은신처를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으로 나온다. 박종운씨는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는데, 지금은 부천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이다. 교도소에 같이 수감되어 있던 고문 경찰관의 이야기를 듣고 진상을 폭로한 이부영씨는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다.


박종철씨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사건 이후 각종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시위에 앞장서다가, 1991년 강경대군 치사 사건 때 법정에서 정부의 과잉 진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는 지난 6월26일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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