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국가 맞나
  • 문정우 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01.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의 기본 임무는 헌법에 나와 있듯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책임지는 것이다. 만약 어떤 국가가 위험에 빠진 자기 국민을 외면한다면 그걸 국가라고 부르기는 힘들다는 뜻도 된다.

1953년 7월 유엔군과 북한이 종전협정을 체결했을 때 북에 억류되어 있던 한국군 포로는 5만~6만 명으로 추산된다. 우리 정부가 집계한 것이 아니라 민간인 전문가들이 이 자료 저 자료를 꿰어맞춰 추정한 수치이다. 대한민국이 국군 포로를 위해 한 일은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북한 당국의 발표와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국군 포로는 반 세기 동안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다. 전쟁이 막 끝난 뒤에는 폭발물 제거를 전담하다가 다수 희생되었고, 나중에는 지독한 감시 속에서 탄광 광부와 같은 험한 일만 하며 살았다. 북한 당국은 국군 포로를 제네바 협정에 따라 대접해야 하는 전쟁 포로가 아닌 ‘전범’으로 취급했고, 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6개월 동안 대한민국 장교와 사병 32만5천여 명이 베트남에서 싸웠다. 1994년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베트남전쟁 실종자는 8명뿐이며, 그 중 북한 망명자는 3명이다. 하지만 베트남에 억류되어 있다가 탈출한 국군 포로나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 통계 수치는 터무니없다. 북한을 넘나들며 15년 동안 위장 간첩으로 활약했던 조 아무개씨는 <시사저널> 기자에게 평양에 있을 때 족쇄를 차고 베트남에서 끌려온 국군 포로 다수를 목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베트남 하노이 정부는 한국군을 미군의 용병이라는 이유로 전쟁 포로 대우를 하지 않고 북한에 넘겨버렸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알고도 침묵했다.

국군 포로가 아니더라도 한이 맺힌 국민은 많다. 삼풍백화점·성수대교·씨랜드 참사 유족 가운데는 정부의 사후 처리 과정을 보며 넌덜머리를 내고 이민을 가버린 이도 적지 않다.

최근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에 휩쓸려 현지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희생되었다. 다른 나라가 시신을 수습할 전세기와 냉동차를 보내느라 바쁜 동안에 우리 여야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몸싸움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국인 가족은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사진).

대한민국은 국가 맞나.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