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사냥’ 집어치워라
  • 김창남 (문화 평론가) ()
  • 승인 1997.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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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방송, 검찰과 경찰, 일부 지식인과 시민이 가세한 ‘만화 사냥’은 오히려 또 다른 ‘일진회’와 ‘빨간 마후라’를 끊임없이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요즘 만화를 둘러싼 이런 저런 일들을 보면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한편으로 만화는 지금 온갖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들떠 있다. 춘천 애니타운 축제, 서울 국제만화페스티벌, 애니맥스포 등 한꺼번에 대여섯 가지 만화 잔치가 열리면서 어린이와 청소년 들을 끌어모으느라 법석이다.

다른 한편으로 만화는 공안 정국을 방불케 하는 살풍경한 분위기 속에서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들고 있다. 대표적인 만화 작가가 소환되어 조사받는가 하면 대본소와 출판사까지 사정없이 들쑤셔진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폭력과 섹스로 가득찬 불량 만화가 청소년 범죄의 온상’이라고 외치면서 일방통행식 여론몰이에 나서고, 이런 분위기에서 백 없고 힘 없는 우리 만화가들은 시한부 절필을 선언하면서 힘겹게 저항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만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부풀려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범죄의 온상’으로 매도되는 가운데 한국 만화의 위상은 점점 초라하게 일그러지고 있는 것이다.

만화가 잡아들이면 청소년 문제 해결되나

‘만화 공안 정국’을 이끄는 단 하나의 논리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만화가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으니 만화를 때려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정서를 보호한다는 것은 검열을 정당화하는 가장 확고하고도 유일한 논리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는 심각한 함정이 있다. 이 주장의 밑바닥에는 ‘불량 만화만 없다면 우리 청소년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아무런 문제도 없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으며 ‘멀쩡한 청소년이 어떤 불량 만화의 문제 장면을 보게 됨으로써 일탈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청소년 폭력 문제는 사회 문제이고 이 나라의 황폐한 교육제도의 문제이며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문제이며 기회주의적이고 상업주의적인 언론의 문제이다. 청소년들은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 환경 속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병든 사회와 병든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덫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이 병들지 않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만화가 문제라고? 온갖 냄새 나는 부패와 비리,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접어둔 채 만화가 몇 사람 잡아들이고 폭력 만화 몇 쪽 자르면 청소년 문제가 해결된다고? 웃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만화를 독립 변수로 두고 청소년을 종속 변수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 자체가 청소년을 정당한 인격적 주체로 이해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청소년은 그저 ‘보호’되어야 하고 ‘훈육’되어야 하며 기성 사회의 틀 속에 ‘통합’되어야만 하는 존재이며, 어떠한 자율성도 판단력도 주체적 자기 표현 능력도 가지지 못한 존재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기성 체제와 언론의 시각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소년들은 변화하는 시대적·문화적 흐름 속에서 기성 세대와는 전혀 다른 욕구와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또 다른 주체이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는 분명 전과 다른 삶의 가치와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을 ‘훈육’하는 사회의 지배적 시스템은 여전히 완강하게 낡고 보수적인 틀을 고수하고 있다. 청소년의 주체적 욕구와 그를 둘러싼 객관적 시스템 사이의 모순과 갈등, 모든 청소년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한다.

낡은 시스템이 청소년 병들게 한다

그런데 왜 맨날 만화만 들볶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낡은 시스템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 시스템이 낡은 것이며 청소년을 병들게 하는 진정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낡은 시스템 위에서 권력과 안락을 계속 누리고, 그 모든 기득권을 위협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문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그럴듯한 희생양을 찾기 마련인데, 적당히 약하고 또 적당히 때 묻어 있는 만화야말로 그런 희생양으로 안성맞춤인 것이다.

청소년 문제를 핑계 삼아 만화가를 구속하고 만화를 때려 잡는 일들이 가져올 문제는 단지 한국 만화산업의 위축이나 창작 의지의 쇠퇴 정도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마녀 사냥이 결과적으로 청소년 문제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더 근본적인 치유를 끊임없이 유예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점에 있다. 그리고 신문과 방송, 검찰과 경찰, 문제를 잘못 보고 있는 일부 지식인과 시민 들까지 가세한 마녀 사냥이 오히려 또 다른 ‘일진회’와 ‘빨간 마후라’를 끊임없이 양산할 것이라는 점에 있다. 낡고 보수적인 시스템이 고수되고 그래서 저들의 알량한 기득권이 유지되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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