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은 미래 사회 엿보는 窓
  • 손일락 (청주대 교수·호텔경영학) ()
  • 승인 1996.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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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 유행과 배꼽 노출은 우발적 사건이나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변동의 일부분인 동시에 변동의 성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이자, 미래를 향하여 열려 있는 작은 구멍이다.”
 
조마조마한 똥꼬치마에 이어 투명한 공개를 특징으로 하는 막무가내의 배꼽티가 대유행이다. 치마끈을 명치 끝에서부터 단단히 비끌어매는 완고한 빗장 패션을 고수하던 한국의 여성들이 놀랍게도 너도나도 배꼽 경연에 나선 것이다. <배꼽티를 입은 문화>라는 기묘한 책이 베스트 셀러로 떴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더니, 배꼽에 구멍을 뚫는 배꼽찌, 배꼽에 액세서리를 매다는 황당한 배꼽고리 패션이 상륙할 조짐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가정 주부들이 대담한 배꼽티 차림으로 텔레비전에 출연해 괴이한 춤을 췄다더라’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한 인기 여가수는 선정적인 배꼽티를 벗으라고 요구하자 차라리 출연을 포기하겠다며 폭탄 선언을 했다더라’등 별의별 흉흉한 소문이 도는가 했더니, 마침내 경상남도에서는 탱크탑·브라탑·홀더네크탑·미드리프 등으로 불리는 배꼽티를 20세기를 마무리하는 대표적 유행이라고 규정하고 타임 캡슐에 실어 미래로 띄우기로 했다는 획기적 소식이 꼬리를 잇는다.

‘세로 배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유

배꼽티 유행을 은근히 반기는 사람들은 비단 하릴없는‘가자미’ 남성들뿐만은 아니다. 똥꼬치마·배꼽티가 유행해 정작 짭짤한 재미를 본 것은 성형외과 의사들이다. 볼록한 개구리 배꼽이나 좌우로 삐딱한 좌익 배꼽·우익 배꼽, 펑퍼짐한 참외 배꼽을 예쁘게 고치려는 여성들로 병원이 문전 성시를 이루기 때문이다. 배꼽 수선(성형) 비용은 대략 7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쌍꺼풀에, 예쁜이에, 롱다리에, 마침내 배꼽마저 개량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세상! 따지고 보면 외모 중시 사회, 외모 중시 시대가 빚어내는 희극적 풍경화지만, 세계 유수의 기관·단체가 한결같이 성형외과 의사를 미래 사회 최고의 유망 직업으로 꼽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 여성이 가장 선망하는 배꼽은 도대체 어떤 배꼽일까.

사회생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예민한 관찰에 따르면, 고전 누드화에 등장하는 여성의 배꼽은 동그란 배꼽이 92%, 세로로 갸름한 배꼽이 8%이다. 그런데 현대 누드와 핀업 사진에서 드러난 여성의 배꼽은 동그란 배꼽이 54%, 세로로 갸름한 배꼽이 46%로, 모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연히 입에 담기 민망한 곳’을 형용·모방한 세로 배꼽이 무려 여섯 배나 증가해 비상한 관심을 끈다.

현대 여성들이 이처럼 세로 배꼽을 열망하고, 또 세로 배꼽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까닭에 대해서는 ‘인간은 동물의 왕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적 동물로, 인간의 온몸은 철저히 성적 신호기로 진화되어 왔다’라고 설명하는 일군의 사회생물학자들 주장이 설득력이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배꼽티 훔쳐보는 남성은 악성 관음증 환자?

최근 마이크로 미니 스커트와 브래지어 패션이 유행하는 현상을 둘러싸고 사회학자나 문화 비평가들의 논의도 자뭇 활발하다. 다짜고짜 세기말적 현상이나 종말론적 현상이라고 규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오기 패션을 중심으로 숨막히게 전개되는 남녀 간의 눈동자 숨바꼭질을 중증의 노출증 및 악성 관음증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를 쓴 주강현 선생은 ‘우리 시대는 바야흐로 ‘배꼽문화’라고 이름 붙여도 될 만큼 배꼽 자체가 하나의 화두로 등장하였다’라고 엄숙히 선언하고, 자유 연상 기법으로 백여년 전 전라도 땅을 휩쓴 동학혁명을 떠올리며 혁명·혁세같이 엄청난 개념에 연결한다. 시 스루 패션(see through fashion)이 유행하는 것과 함께 환하게 공개된 배꼽을 단서로 ‘선운사 마애불의 구멍에서 동학농민군들이 새로운 세상을 엿보았다면, 오늘의 우리들은 열린 구멍을 통하여 또 다른 세상의 문을 들여다보고 있다’라고 설명하는 선생의 발상은 지극히 독창적이고 흥미롭다.

언제부터인가 거리마다 화면마다 각양각색의 배꼽들이 춤춘다. 배꼽티 유행과 배꼽 노출은 절대로 우발적 사건이나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사회 변동의 일부분인 동시에 변동의 성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이자, 미래를 향하여 열려 있는 작은 구멍이다. 시 스루 패션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접근의 대강을 살펴보는 일이 결코 가치 없는 일이나 무망한 일이 아니라는 믿음은 이러한 기본 인식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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