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 코리아
  •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
  • 승인 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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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며, 이를 위해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우리의 최대 과제이다. 이에 비하면 국내 정치 권력의 향방은 그야말로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런데도 정치 세력들은
내년, 2005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일제에 사실상 국권을 빼앗긴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 기본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지금은 앞으로 수십 년간 한민족이 나아갈 진로를 고민할 때이다. 과연 한민족은 당당하고 자주적인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북아 중심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의 해답은 1차적으로 한국의 정치 주도 세력에게 있다. 과연 이들은 앞으로 수십 년간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할 비전, 그리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을 통합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대북송금 특검 수용에서 최근의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의 행적을 되돌아보자. 새만금개발 강행이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행정기술상의 미숙 때문이라고 너그럽게 보아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 2만 달러’라는 구호 앞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개발독재 시대에나 나옴직한 구호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남북 관계, 대외 관계에서의 무원칙과 줏대 없음이다. 출범 직후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일 때만 해도 ‘나름으로 사정이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아니었다면 나는 포로수용소에 있었을 것’ 등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언행은 대선 전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이후 이라크 추가 파병이나 신기남 열린우리당 당의장의 방미에서 드러난 현 집권 세력의 대미 인식과 자세는 분명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 것이었다.

레토릭 상의 반미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 더 정확하게는 양국간 힘의 현저한 불균형에 따른 한국 정부의 불리한 협상 지위를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 우리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지켜내야 한다.

필자는 북한의 순조로운 국제 사회 진입(물론 핵포기를 포함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민족의 자주성과 주도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군사력에 의해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동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놓고 공격적 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일본·중국 등의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우리가 믿을 것은 민족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비전과 일관된 노선, 그리고 치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대외 정책에서는 이것 중 어느 하나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대선 전과 후의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 발언은 말할 것도 없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자주 국방 운운하는 현정부를 바라보는 미국의 속내는 어떨까. 아마 한국은 ‘웃기는 나라’ ‘못 믿을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정치 기술자들이 지배하는 한국의 비애

적어도 김대중 정부 때는 이렇지 않았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민족의 활로를 뚫기 위한 순서를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경제협력 동시 추진’ 등이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외 전략은 지난 정부 때보다 몇 발짝 퇴보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외 전략이다. 한민족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며, 이를 위해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최대 과제이다. 이에 비하면 국내 정치 권력의 향방은 그야말로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런데도 정치 세력들은 국내 정치 권력 유지, 또는 탈환에만 골몰해 있다. 별로 시급하지도 않은 행정수도 이전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여당이나, 표 계산하느라 반대 당론조차 내지 못하는 한나라당 모두 ‘국내 정치의 포로’가 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당시의 기대와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최근 이헌재 경제 부총리는 “(현정부의 중추 세력인) 386세대가 정치 투쟁 하느라 경제를 제대로 못 배웠다”라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 투쟁 하면서 표 모으는 기술만 배웠지, 역사를 보는 안목은 키우지 못한 것 같다.

정치 기술자들이 지배하는 한국호,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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