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길 잃어버린 서울 사람들
  • 설호정 언론인 ()
  • 승인 200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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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과 납골당은 서울시가 이제껏 했던 어떤 토목·건축 공사보다 백배 천배 깊이 생각해 땅을 찾고 공을 들여 짓고 다듬어야 할 시설이다. 시민의 '시위'를 잠재우고도 남을 만큼 훌륭한 '공원'을 만들기만 하겠다면 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가 새 화장장을 지으려던 계획이 주민들의 반발로 멈칫거리는 모양이다. 서초구 내곡동 청계산이 물망에 올랐으나 '천만 시민의 휴식처'를 화장터로 내줄 수 없다고 '궐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시가 아무리 '최첨단 시설로 환경 친화적인' 화장터가 될 것이라고 설득한들, '예술품과 조경'으로 '시민의 휴식처'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들 화장장이 제 동네에 들어서는 것을 흔쾌히 반길 주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죽음의 냄새가 제 삶 가까이에 상존하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이 어디 쉽게 있겠나.

그러나 현실을 둘러보면, 경기도 야산이 서울 사람들 묘지로 뒤덮이다 못해 충청도 땅마저 서울발 장례 행렬의 도착지가 된 지 오래이다. 그나마 비싼 땅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의 얘기이지, 살아서 집 걱정 하던 몸은 죽어서도 누울 자리 찾기가 나날이 고단해지고 있다. 그러니 화장하자는 소리가 저절로 나와 이른바 사회 저명 인사가 화장을 유언으로 남기는 것이 업적처럼 여겨지게까지 되었다. 목숨이 끊어졌을망정 사람인데, 그 육신의 체통을 고스란히 지켜 묻어주어 풍상 끝에 천천히 흙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은 산 사람이면 누구든 마찬가지이겠으나, 이 비좁은 한국 땅 하고도 특히 서울에서 살다 죽은 몸은 화장밖에는 대책이 없이 되었다는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벽제 화장장이 새로 지어진 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그만하면 괜찮더라'였다. 화장이 깨끗하기는 하더라고, 게다가 화장장이 멋쟁이고 납골당이 들어선 주변 경관이 꽤 쾌적해서 '서랍'에 뼈를 넣고 돌아오는 마음이 뜻밖에 가벼웠다고들 했다. 아마도 이런 소회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다음에야 아직은 '하는 수 없이' 하는 것이 화장이라는 한국인의 보편 정서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이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음을 반영한다 하겠다. 그렇건만 이제 화장장마저 만원이라니 이런 낭패가 어디에 있겠나. 벽제 화장장이 '넘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이 되었다면, 서울 사람은 죽어서 묻힐 곳도 없고 한 움큼 재로 돌아가는 일조차 옹색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서울시가 발등에 떨어진 새 화장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모를 일이다. 서울 강남의 똘똘한 주민들이 한없이 너절한 장례와 화장장 굴뚝에서 뭉클뭉클 치솟는 연기를 상상 속에 떠올리며 소스라쳐서 떨쳐일어난 것을 두고 '님비' 어쩌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도덕과는 가장 무관한 국가 기관이 느닷없이 군자연하며 국민이 사해동포주의자가 되지 않는다고 툴툴대는 것처럼 가소로운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오히려, 왜 그토록 꺼리는지, 현대 한국인의 죽음과 관계된 의제가 어느 길을 달려왔기에, 더 구체적으로 일러 장례식·매장·화장을 포괄하는 의식의 절차와 시설의 현실이 무엇인지 반성적으로 돌이켜보는 데에서 출발해야 해결할 길이 열릴 듯하다.


산 사람이 가보고 싶은 화장장·납골당 세워야


서울시가 이제껏 했던 어떤 토목·건축 공사보다, 길을 넓히고 여기저기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백배 천배 깊이 생각해 땅을 찾고 알뜰히 공을 들여 짓고 다듬어야 할 시설이 화장장이고 납골당이다. 누구든 들어서면 한나절은 거기 그냥 있고 싶을 만큼 존엄한 죽음의 처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아니 그보다 더 현실적으로는 서울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어하지 않는 처소가 되게 하기 위하여. 나아가 산 사람이 욕망으로 고달픈 단련을 받을 적에 한바퀴 돌아 나오기만 해도 머리가 서늘해지는 처소가 되게 하기 위하여.

돈 많은 나라의 공동 묘지 중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설계하고 만든 예술적인 공간이 많다고 들었다. 화장장을 포함하는 묘지 전체의 광활한 덩어리가 삶과 죽음을, 산 사람과 죽은 이를 평화롭게 아우르는 아름다운 거처라고 한다. 서울시가 말하는 '예술품'과 '조경'이 무엇을 의중에 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서울 시민의 '궐기'를 잠재우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진정 훌륭한 '공원'을 만들기만 하겠다면 터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산 죄를 죽어서도 면할 수 없게 해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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